인터뷰 | 오픈리 레즈비언 김규진 씨 인터뷰

(사진 제공=김규진 작가)
(사진 제공=김규진 작가)

오늘(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오픈리’(Openly)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김규진 씨를 만났다. 김규진 씨는 아내와 함께 2019년 5월 뉴욕에서 혼인 신고를 하고, 지난해 5월 한국에서도 혼인 신고를 접수한 후 불수리 통보를 받았다. 이후 저서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집필하는 등 꾸준히 동성혼 법제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Q. 한국에서 오픈리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은 없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던 때보다 좋은 점은?

한국 사회는 이성애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숨 쉬는 모든 순간이 불편하다. 사회에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오픈리가 된지는 2년이 넘었고 회사에서는 더 일찍 커밍아웃했다. 직장을 선택할 때, 커밍아웃을 하고 편하게 근무할 수 있는지를 중시했다. 지금 직장도 한국에 있는 곳인 만큼 구성원들은 당연히 내가 이성애자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동성애자인 것을 밝혔을 때 동료들은 그 사실을 큰 이야깃거리로 부풀리지 않는다. “저는 여자 친구가 있어요”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그래요? 저는 남편이 있어요”라고 대답해 주는 분위기다. 

커밍아웃 전에는 내 정체성과 관련된 부분에서 항상 일관된 거짓말을 해야 했다. 커밍아웃한 뒤에는 그런 부담이 많이 사라졌고, 정체성을 드러낼 때 느끼는 두려움도 줄어들어 홀가분하다. 

Q. 한국에서 동성 간 혼인 신고로 구청 업무에 불편함을 줬다는 비판도 받았다.

한국 법에는 동성혼을 명확하게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 동성애자라고 해서 혼인 신고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거절당하더라도, 혼인을 원하는 동성애자가 있음을 가시화하는 데 의미가 있지 않나. 

혼인 신고 이후 이렇게 많은 비판이 쏟아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높은 확률로 혼인 신고가 수리되지 않을 것은 예상했으나, 민원 접수는 시민으로서 누릴 정당한 권리가 아닌가. 불편함은 사회적 변화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요소다. 올해 설 무렵 장애인 활동가들이 4호선에 승하차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진행했다. 단순 승하차만으로도 엄청난 시간이 걸려 열차 운행이 많이 지연됐는데, 이를 두고 민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하철 탑승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시스템이 문제지, 지하철에 오르는 행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어떤 행위가 ‘민폐’라고 말하기 전에 왜 민폐가 생길 수밖에 없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Q. 뉴욕에서 혼인 신고 후 2년이 지났다. 그간의 결혼 생활은 어땠나. 

결혼 생활은 단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좋다. 내가 선택한 가족이 집에서 나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무척 행복하다. 제도 앞에서 내가 소수자임을 깨닫고 무력해진 때도 있었다. 새벽에 아내가 캣 타워를 조립하다가 얼굴을 심하게 다쳐 함께 응급실에 갔다. 환자와 어떤 관계냐고 묻는 응급실 직원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고, 아픈 아내가 자매 관계라고 나 대신 답했다. 아내를 아내라고 부르지 못하는 클리셰와 같은 상황이 언젠간 오리라 예상했다. 아내와 나 모두 김 씨였기에 정말 다급한 경우에는 자매라 답하자고 이전에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눈앞에 닥치니 아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속이 상했다. 나중에 아내가 우는 나를 보고 밖에 나가 “사실 미국에서 결혼한 배우자 관계”라고 말하자 직원분이 기록했던 관계를 바꿔주셨다.

(사진 제공=김규진 작가)
(사진 제공=김규진 작가)

Q. 일반적인 한국 결혼식의 형태로 식을 진행했는데, 웨딩 업체의 반응은 어땠나.

해마다 결혼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웨딩 업체에 퀴어 웨딩은 블루 오션이다. 퀴어 웨딩이라 드레스를 두 벌 준비해주셔야 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업체가 환영했다. 실제로 어떤 식장에 퀴어 웨딩인데 괜찮냐고 물어봤을 때, 사장님이 대수롭지 않게 “다 같은 돈 아니에요?”라고 말씀하셨다. 사장님이 대단히 개방적이거나 배려심이 깊어서는 아니었고, 나를 그저 한 명의 소비자로 대하신 것이다. 그런 건조하고 당연한 답변이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Q. 여성가족부가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서 가족의 정의를 넓혀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하려는 방침을 내놨다.

동성혼 관계를 사실혼처럼 혼인에 준하는 단계로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서로에게 법적 보호자가 돼 수술 때 서로의 서명을 해주고, 자산을 합칠 수 있었으면 한다. 가족 개념의 확장은 사회 전반적으로 필요한 방침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유지된 ‘정상 가족’ 신화와 기존의 결혼 제도하에서 제자리걸음인 출생률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지표다. 여성가족부가 포괄적인 가족 개념을 제안하면 국회가 이와 관련된 입법을 추진해주면 좋겠다. 동성혼 법제화와 더불어 생활동반자법 역시 입법돼야 한다. 가족 개념이 지금보다 포괄적으로 적용되더라도 법적 다툼으로 번질 가능성이 큰 상속권이나 양육권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Q. 성소수자 혐오 근절을 위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소수자가 다수를 어떻게 움직일지 고민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우선 자신이 성소수자를 혐오할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은 종종 “나는 성소수자를 혐오하지는 않지만, 소수자들이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다”와 같은 말로 혐오에 이유를 붙여 정당화하곤 한다. 누군가는 이것이 혐오라고 명백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은 개인의 발언을 일일이 통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부당한 처우와 혐오를 인식하게 하고자 만들어진 법이다. 소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살아있어야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변화하는 미래도 볼 수 있다. 모두가 잘 살았으면 한다.

서울대 구성원에게 한마디를 부탁하는 기자에게 김규진 씨는 “혐오를 막는 제도는 마스크와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누군가를 혐오하는 순간도, 내가 누군가에게 혐오를 당하는 순간도 반드시 있다”라며 “마스크가 내 침이 상대방에게 튀는 것을, 그리고 상대방의 침이 내게 튀는 것을 막는 것처럼 혐오를 금지하는 제도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루빨리 관련된 제도가 갖춰져 모두가 더 인간답게 살아갈 사회가 오기를 희망해본다.

(사진 제공=김규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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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김규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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