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중대재해법을 파헤치다

지난 1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논란 속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노동자가 산업재해(산재)로 사망하거나 중대한 부상을 입은 경우, 그리고 해당 재해가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안전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아 발생한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에게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통과된 법안에 모호한 표현이 많아 시행령에 이목이 쏠린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이르면 이달 내 시행령을 공개하겠다고 밝히며 노동계와 경영계가 또다시 대립하고 있다. 『대학신문』은 중대재해법의 쟁점을 되짚고 산업 현장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노력이 필요한지 살펴봤다.

◇노동자의 죽음은 왜 반복되는가=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노동자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 수는 1994년부터 2016년까지 두 차례를 제외하고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작년 한 해 동안 882명이 산재로 숨졌다. 하루 평균 2.5명꼴이다. 

왜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산재로 쓰러지는 것일까. 박상인 교수(행정대학원)는 “근본적인 문제는 위험의 외주화”라며 “원청 업체가 안전 투자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 관리 책임을 하청 업체에 떠넘겨 소규모 하청 업체에서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산업계의 하도급 문화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산업 안전 제도와 행정이 미비하다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정진우 교수(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는 “산재 예방에 도움이 되는 정교한 법 규정이 없다”라며 “안전 관리를 위한 절차와 방법이 비현실적이고, 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사각지대가 많다”라고 강조했다.

그간 산재를 줄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故) 김용균 씨 사망 사고를 계기로 산업 안전 보건 법률을 정비할 필요성이 대두하자 지난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전면 개정됐다. 이에 따라 하도급 관계에서 원청의 안전 의무가 대폭 강화되고 보호 대상이 확대됐다. 그러나 개정 산안법의 처벌 수위만으로는 산재를 줄일 수 없다는 주장이 이어졌고, 결국 찬반 의견이 거세게 대립한 가운데 경영 책임자나 사업주의 형사 처벌 규정을 명문화한 중대재해법이 제정됐다.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의문들=어렵게 제정된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논란은 입법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정진우 교수는 “입법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 없이 졸속 심의가 이뤄지고 말았다”라며 “통과된 법률에 불명확하고 추상적인 부분이 많아 시행령 발표를 앞두고 논란이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그중에서도 기존 법률과 충돌하는 중복 입법이 될 수 있다는 논란이 거세다. 정진우 교수는 “산안법과 중대재해법의 내용은 큰 차이가 없다”라며 “산안법 개정을 통해 원청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것처럼 기존의 법률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비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 임우택 본부장은 “국내 산업 안전 보건 법규의 규제와 처벌 규정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현행 법률을 통해 산재에 책임이 있는 관리자를 형사 처벌할 수 있기에 별도의 입법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기존 법률과 별도로 중대재해법을 제정한 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소속 손익찬 변호사는 “산안법과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처벌 사례를 보면 책임의 엄중함에 비해 처벌 수위가 너무 낮다”라며 “기존 법으로 포섭할 수 있음에도 별도의 특별 조항을 둔 ‘민식이 법’이나 ‘윤창호 법’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중대 산재의 엄중함을 고려하면 무리 없는 입법이라는 해석이다.

근본적인 논란은 처벌 강화와 산재 감소의 인과 관계에서 나온다. 중대재해법 찬성론자들은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의 형사 처벌 규정을 통해 기업의 안전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박상인 교수는 “하청으로 위험을 외주화하는 경영 행태를 근절해야 한다”라며 “형사 처벌 가능성을 열어둬 하도급의 악순환을 끊고 원청이 안전 투자를 늘리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거세다. 정진우 교수는 “산재를 줄이려면 법률에 예방 절차를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라며 “무작정 처벌에만 치중한 중대재해법은 산재를 감소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대재해법의 예외 규정에 대한 문제도 남아있다. 산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3년의 유예 기간을 부여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한 조항이 포함됐다. 편법마저 우려된다. 박상인 교수는 “50인 이상 사업장이 편법으로 다수의 5인 이하 사업장을 만들어 법망을 회피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산재의 악순환을 끊으려면=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여러 문제가 지적되는 중대재해법 이외에 산재 예방을 위한 다른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산업 안전 제도를 점검하고 산업 현장에 안전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손익찬 변호사는 “산안법에 포괄적 의무 규정을 추가해야 한다”라며 “정부가 안전 규정을 하나하나 두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의 포괄적 의무를 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각 사업장의 현실에 맞는 안전 보건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며 노사정이 협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포괄적 의무보다는 개별 안전 규정을 두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정진우 교수는 “기업이 법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것이 산재 예방의 핵심”이라며 “모호하고 포괄적인 안전 의무가 아니라 실제로 준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제도적 노력과 문화적 노력의 병행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크다. 임우택 본부장은 “제도 정비 이후에는 경영 책임자와 중간 관리자, 현장 노동자들이 모두 안전 의식을 갖고 안전 문화를 배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중대 재해 조사나 재발 방지 대책 수립 과정에서 현장 노동자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필요도 있다. 손익찬 변호사는 “현장 안전과 관련된 문제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현장 노동자”라며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제도적으로 보장된 참여권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시행령 공개를 앞두고 노사의 입장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각 주체의 이해관계를 떠나 산재의 원인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현실성 있는 산재 예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노사정이 하루라도 빨리 합의에 도달해 더 이상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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