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법인 도입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논란, '부익부 빈익빈'의료정책 활성화?

경제자유구역(경제특구) 내 외국병원에서의 내국인 진료 허용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경제자유구역의지정및운영에관한법률」 개정안이 지난해 12월말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 법안에 따르면 경제특구 내에 설립되는 외국병원은 국민건강보험법상의 요양기관(병원, 의원 등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제외돼, 실질적으로 국민건강보험체계에서 벗어난다. 또 이들 외국병원은 영리법인의 형태로 개설될 수 있다.

현행법상 국내 병원은 영리법인화가 허용되지 않으며, 모든 병원은 공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의 요양기관으로 강제 지정돼 규정된 의료수가의 적용을 받는다(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진료, 입원 등의 가격을 의미하는 의료수가는 매년 의약계와 건강보험공단 대표의 합의로 책정되며, 공공성을 중시해 낮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다. 건강보험 요양기관이 아닌 경제특구 내 외국병원의 경우 이러한 의료수가 통제를 받지 않는다.


경제특구 내 외국병원 설립에 국내 의료계도 변화할 듯


법안 통과를 계기로 국내 의료부문에서 영리법인 도입과 당연지정제 폐지(민간보험 확대) 여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경제특구 내 외국병원 이용이 가능해질 경우, 진료비가 비싸더라도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원하는 일부 부유층은 특구 내 외국병원을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급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대형병원 이용환자 감소를 의미하므로 이들 국내병원 영리법인화와 당연지정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황은범씨(대한병원협회 기획조정실)는 “경제특구 밖에서도 의료법을 개정해 특구 내 외국병원들과 국내병원들에 동일한 경쟁 조건이 적용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경제특구 내에 국내 병원 설립을 허용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요구는 법안 통과 이전부터 의료계 일각에서 제기돼 온 ‘의료산업의 시장경쟁력 강화’ 논리와 흐름을 같이 한다. 박윤선씨(대한의사협회 전략기획팀)는 “의료시장 개방은 세계적 추세”라며 “국내병원들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영리법인 도입과 민간보험 확대는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리법인 도입으로 자금 출연자에 대한 이윤배당과 병원의 다양한 수익사업이 허용되고, 민간보험사와의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의료수가 통제가 사라져야 병원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러한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어 국내 의료시장은 수년 내에 큰 변화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재정경제부가 이 사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정부는 지난 8일(화) 열린 제1차 서비스산업 관계장관회의에서  영리법인을 단계적으로 허용하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의료기관과 의료설비에 대한 자본 투자를 유도해 의료산업을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정책을 통해 의료 영리법인 도입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가 가시화될 경우 국내 의료체계는 크게 동요할 것으로 보인다. 영리법인화로 이윤배당이 허용될 경우 병원 경영은 국민의 건강보다는 투자자들의 이익을 우선시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병원 경영자들은 이윤극대화를 위해 수익성 있는 진료 종목에 대한 투자를 우선시하고 정작 국민건강에 중요한 예방 차원의 진료는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는 건강보험 재정악화 초래


그리고 민간보험사와의 계약을 통해 의료수가 통제를 피하고 진료비를 높게 책정하려는 병원들은 건강보험체계로부터의 이탈 허용을 정부에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고급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비싼 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대형병원들이 주로 이탈을 시도할 것이며, 주 수요자는 진료비 지불 능력이 있는 부유층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보험노조 이원필 정책위원은 “민간보험과 계약을 맺은 고급병원을 주로 이용할 부유층은 높은 보험료를 납부하면서 건강보험에 남아있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건강보험 재정의 많은 비중을 부담하는 고소득층이 빠져나갈 경우 건강보험의 재정적 기반이 크게 약화된다”고 말했다. 민간보험 가입 능력이 없어 건강보험에 남을 상대적 저소득층은 건강보험의 기반이 약화될 경우 이전보다 질이 낮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영리추구를 기본목적으로 하는 민간보험사의 비윤리성도 제기될 수 있다. 민중의료연합 박주영 사무처장은 “민간보험사들은 환자의 병력과 소득수준을 따져서 계약 내용을 설정하는 등 환자를 ‘선택’하려 할 것”이라며 “노인과 장애인, 산재환자들은 불리한 계약조건을 감수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건강보험보장성 강화와 공공의료시설 확충부터


의료영리법인과 민간의료보험확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의료산업 경쟁력 강화 정책이 야기할 의료양극화 현상을 우려하며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건강보험보장성(진료비 중 건강보험의 지원 비중)을 높이고 공공의료부문을 우선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연대회의 유혜원 정책부장은 “정부는 10%수준인 공공의료 비중을 30%까지 올리겠다고 하지만 구체적이고 실효성있는 내용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며 “공공의료시설의 확충과 함께 예방 차원의 진료 강화, 보건소 등 1차 의료기관의 육성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칠레의 경우 공적의료보험 강제가입 폐지 이후 부유층의 대거 이탈로 공적의료보험 재정이 악화돼 서민들의 의료환경이 악화되기도 했다. 향후 정부의 관련 정책이 의료산업 경쟁력 강화와 공공성 확보를 동시에 이뤄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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