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편집장이 만난 사람들 | 정세랑 작가 인터뷰

지구 한편에 서서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를 꾸준히 들려주고 있는 한 소설가가 있다. 그는 2010년에 등단해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 『옥상에서 만나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시선으로부터,』 등의 작품을 내고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작가 정세랑이다. 소설가로서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대학신문』에서 지난달 정세랑 작가를 만나봤다. 

(사진 제공=정멜멜)
(사진 제공=정멜멜)

“나도 쓰고 싶다”

Q. 작품 활동은 언제부터 했나요.

A. 스물다섯, 스물여섯 살부터였을 거예요. 주변 평균보다는 조금 늦은 편이죠. 출판사에 취직하고 나서였어요. 전에도 학교에서 창작 수업 같은 걸 듣긴 했지만, 창작과 관련된 학과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창작은 거의 해보지 않았고요. 회사에서 문학 잡지나 청소년 잡지 등 여러 잡지를 만드는 일을 했었는데, 일을 하면서 현장감 있는 글들을 읽다 보니 “나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판사에서 일하기 전에도 동화책을 쓰고 싶어했지만 시도에 옮기지는 않았고, 취업하고 나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Q. 역사교육과와 국문과를 졸업하셨는데, 작품 활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궁금합니다. 

A. 생각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특히 역사교육과에서 배웠던 건, 정말로 일어난 일이랑 그것에 대한 기록 사이의 편차에 대한 것이에요. 역사에는 어쩔 수 없이 기록자의 시각이 들어가고, 생략되는 것들이 생기기도 하고, 덧붙는 것도 있고. 그래서 남은 것들을 현대의 사람들이 볼 때 그대로 볼 수 없단 걸 알게 되니까 그런 점을 픽션을 쓸 때도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 현실에서 약간 떨어진 어떤 것이 되는데, 그랬을 때 서술자가 기록자의 역할을 가지잖아요. 그래서 내가 서 있는 지점에 대해서 현실을 어디까지 반영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또 내가 무엇을 생략하고 있나, 혹은 덧붙이고 있나 이런 것들을 좀 더 깊이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또 국어국문학도 굉장히 재밌었는데, 이 전공의 경우는 한국의 문화사적인 것의 전반에 대한 연결 통로가 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여러 가지 접속점을 가지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옛날이야기도 좋아하는 편이에요. 어떤 설화적인 것, 한국적인 판타지를 좋아합니다. 두 전공 다 잘 맞고, 저의 작품에 영향도 많이 끼친 것 같아요.

 

정세랑 월드에 사는 사람들

Q.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심지어는 외계인까지 나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키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A.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작품 속에 있을 때 자연스럽고 의미도 생기는 것 같아요. 되도록 누구나 이입할 만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그런 이야기를 향해 가다 보면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다른 직업을 가졌고, 누군가는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거나 여러 가지 사연들을 안고 있게 되더라고요. 나이나 계층이나, 여러 가지 것들이 다 다채롭게 있는 모습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좀 유연하게, 꼭 내가 선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않고 벗어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돼야겠다는 다짐을 많이 해요. 누구나 조금씩은 약자고, 그런데 그 관계는 계속 변하기도 하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 지속적인 질문을 가진 편입니다. 

Q. 사람을 왜 좋아하시나요.

A. 가까이서 보면 그렇게 좋지 않죠. 인터넷에 악플러라던가,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는 범죄자라던가. 이런 사람들은 저도 좋아하지 않는데, 근데 멀리서 보면 인류가 아주 흥미로운 종인 것 같아요. 인류는 정말 하던 대로 안 하는 종이잖아요. 하던 대로 했으면 아직도 동굴에 살면서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고 있었겠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종이 아니고, 안 하던 걸 하는 종이라는 게 재밌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변화들이 기대보다 빨리 일어나요. 지난 세기의 소설들을 읽으면 웬만한 여성들이 파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다 모피가 있어야 했어요. 근데 백 년도 안 지났는데 요새는 그렇지 않잖아요. “으, 모피”, 이렇게 싫어하는 사회가 됐단 말이죠. 더 이상 패션 브랜드들이 모피를 생산하지 않겠다고 말하고요. 이렇게 백 년 만에 사람들의 생각이 변한다는 게, 굉장히 끔찍한 문제에 있어서도 훌쩍 변한다는 게 무척 고무적이라고 생각해서 사람들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Q. 많은 작품에서 환경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A. 환경주의자가 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환경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지금도 가족 여행을 가면 바닷가에서 부모님이 쓰레기를 많이 주우시거든요. 물건도 굉장히 아껴 쓰시고요. 완벽한 환경주의자라기보다는 환경에 관심을 계속 가지고 있고, 어릴 때부터 환경 관련된 책도 많이 사주시고, 같이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자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환경이 나빠지는 걸 격하게 느낀 세대라서 그런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들어요. 예전에 제주도에 가면 물속에 고기가 진짜 많았거든요. 어렸을 때 기억에 조그만 문어도 있고, 팔뚝만 한 귀여운 상어도 있고. 그런 기억이 분명히 나는데, 어른이 돼서 똑같은 해변에 돌아갔는데 물속에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상실감을 느꼈어요.

 

이상한 세상을 말하는 소설

Q. 소설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다면.

A. 아주 익숙한 이야기에 이색적인 주제를 넣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보건교사 안은영』은 학원 공포물이라는 장르가 오래 있었잖아요. 학교에서 뭐가 나온다, 동상이 밤에 움직인다. 이렇게 사람들이 늘 하는 이야기에, 사회에 아무렇지 않게 스며드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들을 휘저어 넣을 수 있었던 거죠. 『지구에서 한아뿐』은 늘 있는 판타지 로맨스인데 거기에 환경 이야기를 넣어봤던 것이고. 『시선으로부터,』는 가족 여행 이야기죠. 오래 있어온 여행 소설인데 거기에 생각해볼 만한 질문들을, 생각해볼 만한 지점들을 넣었던 거예요. 익숙한 그릇 안에 들어가는 질문만 약간 달라져도 늘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나기 때문에 ‘클리셰’를 활용하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는 편이에요. 클리셰가 굉장히 구태의연하게 쓰일 수도 있지만, 낯설지 않은 형태를 빌려옴으로써 전달력이 강해지는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마구 섞어서 쓰는 걸 좋아합니다. 

Q. 우리 사회에서 소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저는 소설이 굉장히 이상한데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점들을 좀 짚어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요새 제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색깔이 들어간 스티로폼이거든요. 과일을 감싸고 있거나 반찬 같은 것을 어울리는 색깔로 담기 위해 컬러를 넣은 스티로폼들이 많이 쓰이는데, 그중에 하나도 재활용이 되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믿을 수 없이 이상하지 않나요. 마트에 가면 가득 깔려있는데 전혀 재활용이 되지 않고 그냥 다 쓰레기가 되고. 근데 이 스티로폼에 색깔을 넣는 건 실제로 아무 기능이 없거든요. 그냥 과일의 색깔을 더 돋보이게 한다던가, 생선의 색깔을 더 돋보이게 한다던가. 정말 아무 기능이 없는데도 이렇게 많이 생산되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지는 주체도 없어요. 우리 근처에 늘 있지만 이상하다고 여기지 못하는 것들을 소설이나 다른 창작물들이 뚜렷하게 보이게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어도 의미가 있지만, 이야기 속에서 발견할 때 “진짜 왜 그렇지” “이렇게 기괴하게 비틀려있는데 왜 지나쳤지”라고 같이 말하면서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잖아요. 사실 소설은 아주 힘이 없기도 하면서, 동시에 또 확산력이 굉장히 강할 때도 있어요. 물론 어떤 의도를 갖고 쓴다는 게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성공할 때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어떤 의문을 같이 떠올려볼 수 있는 계기가 돼요. 그렇게 이상했던 순간들을, 부조리하거나 기괴한데 순순히 받아들여서 잘 알아채지 못했던 순간들을 잡아채는 것. 여러 가지 주제에서 그런 역할을 하면 좋지 않을까. 그런데 이건 소설뿐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이 하는 일이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에 대해 다시 물어보는 그런 행위들이 예술이기 때문에. 점점 더 우리 사회에서 그 같은 역할들이 중요해지지 않을까. 물론 저는 아무 의도 없고 아무 효용성 없는 소설도 매우 좋아합니다. (웃음)

 

행복한 소설가, 정세랑

Q. 요즘 어떤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계시나요. 

A. 추리소설이 너무 쓰고 싶어서 몇 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는데 시간을 내서 다음 작업으로 꼭 써보고 싶다 생각하고 있어요. 

Q.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작가님의 글을 읽는데, 그건 어떤 기분인가요. 

A. 긴 대화 속에 놓이는 것 같아서 즐거워요. 책은다른 매체보다 다소 느리지만 대신 굉장히 정교해질 수 있는 매체잖아요. 그래서 언제나 길고 다정하고 의미 있는 대화 속에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더라고요. 제가 몇 년 전에 써놓은 책을 어제 읽은 분도 계시잖아요. 그런데 그게 또 시간을 넘어서 다른 각도의 피드백이 될 때가 있거든요. 책이 나왔을 때 바로 읽으시는 분들과의 대화도 즐겁고, 또 몇 년 시간이 지나서 많은 것들이 변한 다음에 일어나는 대화도 즐거워서 아주아주 빠른 세상이지만, 여전히 이런 느린 대화도 의미가 있다는 그런 것을 매일매일 느껴요. 그래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웃음) 

Q. 소설가로서 가장 기쁠 때는 언제인가요.

A. 아, 책을 선물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책을 선물한다는 일이 꽤 어려운 일이잖아요. 받는 사람이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모르겠고, 취향에 맞을지 안 맞을지도 모르겠고요. 같이 읽고 같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작은 용기를 품고 하는 선물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늘 기쁜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조카에게 사줬다던가 아니면 어머님께 사드렸다던가, 이렇게 세대를 뛰어넘어서 다양한 분들께 책이 가닿고 있을 때 제일 뜻깊고 즐거운 것 같아요.

레이아웃: 이다경 부편집장 lid041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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