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ASMR 유튜버 하쁠리

 

출처: 유튜브 채널 ‘rappeler하쁠리’
출처: 유튜브 채널 ‘rappeler하쁠리’

세상에는 각기 다른 매력을 품은 다양한 소리가 존재한다. ‘ASMR’은 스테레오 마이크를 통해 가장 생생한 소리를 포착해 청취자에게 들려준다. ASMR이란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로, ‘자율 감각 쾌락반응’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일상 속에서 흔히 잠이 오기 직전의 나른하고 편안한, 그러나 한 단어로 집약해 표현하기에는 복잡한 기분을 뜻하기도 한다. 국내의 ASMR 콘텐츠는 꽤 대중화됐고, ASMR 청취는 하나의 취미로 자리 잡았다. 『대학신문』은 ASMR 콘텐츠 가 활성화되기 전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소리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담아내는 유튜버 하쁠리를 만났다.

 

소리를 담는 유튜버가 되기까지

하쁠리는 ASMR 유튜버가 되기 전에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치위생사였다. 그러나 반복되는 일과 예상과 달랐던 업무 환경에 지쳐 치위생사를 그만뒀다. 그는 “20대 때는 반복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잘못된 방향으로 진로를 정했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치위생사를 그만둔 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여러 가지 일에 도전했다고 한다. 철학에 관심이 생겨 철학과에 가겠다고 수능 공부를 하기도 하고, 공무원 국가고시 공부를 하기도 했다.

하쁠리는 ASMR을 접한 순간이 상당히 운명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여러 분야에 도전하면서도 어떤 진로를 선택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유튜브에서 음식 먹는 소리를 찾아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얻었던 그는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쩝쩝’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나오는 영상을 틀어놓곤 했다. 이런 영상을 시청하던 중, 그는 우연히 추천 영상에 뜬 ASMR 영상에 본능적으로 이끌렸다. 그는 “마치 어떤 사람과 첫눈에 반해 한 달 만에 초고속으로 결혼하듯, 복잡한 과정 없이 ASMR 유튜버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현재는 각양각색의 재료를 이용해 평소 생각해보지 못할 법한 소리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ASMR 유튜버 하쁠리로 살아간다. 그는 특별한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기발한 역할극을 자주 선보이는데, 치위생사로서의 경력 때문인지 특히 치과 관련 역할극이 실감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ASMR 유튜버로 살아가는 것이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하쁠리는 ASMR 유튜버로서 가장 힘든 점으로 소리에 예민해진다는 사실을 꼽았다. 소리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녹음하다 보니, 창밖으로 차가 지나가는 소리, 다른 집에서 흘러 들어오는 소리 등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낼 소리들이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런 통제할 수 없는 소리로 인해 “너무 고통스러워서 녹음하는 것 자체가 두려울 때가 있었다”라며 “세상의 모든 소리가 ASMR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편안함을 줄 확률이 높은 소리만 영상에 담고자 했던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고백했다. 하쁠리는 “이런 두려움이 영상에도 드러난 것 같다”라며 “우려를 표하는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며 내 스트레스가 시청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라고 밝혔다.

 

소리, 그리고 ASMR의 한계는 없음을

하쁠리는 ASMR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한계가 없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흔히 ASMR을 들을 때 느껴지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자극을 ‘팅글’(tingle)이라고 표현하는데, 하쁠리는 다양한 재료를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다루며 팅글을 유도한다. 그는 “누군가에게는 소음인 것이 ASMR을 유도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많은 사람이 ASMR 영상을 속삭이는 소리 혹은 잘 때 듣는 소리 정도로 생각하곤 하는데, 그 점이 속상하다”라며 “ASMR에 대한 좁은 인식을 바꾸는 것이 곧 나의 과제”라고 말했다. 동시에 하쁠리는 ASMR의 무한한 가능성은 소리의 다채로움에서 온다고 말한다. 그는 “자세히 보아야 예쁜 풀꽃처럼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라며 “평상시에는 거슬릴 수 있는 일상의 소리도 자세히 들으면 편안함을 줄 수 있다”라고 소리의 힘을 역설했다.

하쁠리는 반복되는 일상에 특별함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욕심이 다채로운 소리를 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단조로운 일상을 사는 시청자에게 색다른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새로운 물체를 찾고자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실리콘에 구멍을 내는 소리나 플로럴 폼*을 물에 적시는 소리, 핀셋으로 마이크를 건드리는 소리 등 새로운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하쁠리는 창의적인 소리를 구현한다는 시청자들의 평가에 대해 “스스로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듣고 싶어 연구를 많이 하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쁠리는 다양한 소리를 듣는 자신 또한 일상의 특별함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 마이크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고 길을 거닌다. 이어폰을 통해 신발 소리, 우산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 등 다양한 소리가 선명하고 가깝게 들려오곤 한다. 하쁠리는 “소리를 세심히 들으면 모든 것이 분명하게 인식돼 나의 존재도 뚜렷해지는 기분이 들고, 사물의 색깔이 더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라며 “일상이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한번 경험해보길 바란다”라고 권했다.

 

영혼을 위로하는 ASMR

현재 ASMR은 우리의 일상에 꽤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광고 콘텐츠에 이용되기도 하고, 희극인들이 개그를 전달하기 위한 형식이 되기도 한다. 단단한 물체를 손톱으로 톡톡 건드리며 소리에 집중하는 취미가 생긴 사람도 있다. 하쁠리는 ASMR이 유행하는 이유가 “ASMR이 현대인의 외로움을 기반으로 성장하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밝혔다. ASMR 콘텐츠는 스테레오 사운드를 이용하기 때문에 입체적인 느낌을 줘 마치 청취자의 곁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하쁠리는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라며 “ASMR은 누군가 곁에서 좋아하는 소리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쁠리는 시청자들이 자신의 채널을 찾는 이유로 편안함을 꼽았다. 그는 “편안한 느낌은 입체적인 소리를 매개로 전달된다”라며 “이를 통해 시청자와 끈끈히 묶인다는 느낌을 받고, 정서적으로도 친밀해진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이야기했다. 이 때문인지 시청자들은 하쁠리에게 진솔한 고민을 들려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는 “영상으로만 인연을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인생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일종의 대나무숲으로 생각해주는 것 같아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하쁠리는 영상을 찍으며 시청자들이 배경 소리뿐 아니라 제작자의 말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방송 중에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 힘든 것 다 알아요”와 같이 시청자들의 정서에 도움이 될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도 제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분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라고 목표를 밝혔다.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소리를 접하면서 점차 소리에 무뎌지곤 한다. 하쁠리는 이런 현실 속에서 소리의 힘을 믿는다. 그는 자신만의 ASMR을 통해 가장 다채로운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소리를 들려주고자 노력한다. 그는 “ASMR 콘텐츠를 통해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앞으로도 작은 마이크 하나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아내며 시청자에게 위로와 다정을 전할 그의 행보를 응원한다.

*플로럴 폼: 흡수성 및 친수성이 있는 스펀지 형태의 물건으로, 주로 생화를 장식할 때 사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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