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도 교수(물리천문학부)
김형도 교수(물리천문학부)

필자가 대학에 입학한 때는 초전도 초거대 가속기(SSC) 사업이 좌초돼 입자물리학은 미래가 없다고 우울해하던 시기다. 대학원에 입학하던 20세기 말 우주가 가속 팽창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암흑 에너지를 이해하기 위해 과학을 넘어선 다중 우주의 철학적 고찰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21세기 초 힉스 입자가 발견됐지만 이를 뒷받침해야 할 새로운 물리 현상은 발견되지 않아 학계에는 ‘매우 혹독한 겨울’이 왔고 연구자들은 봄을 기다리며 각자도생 중이다. 우주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그 실체를 모르고, 중력파가 관측됐지만 여전히 입자물리학과 우주론은 한겨울이다. 어쩌면 21세기의 가장 뛰어난 지성이 영화감독을 하고 있거나 가상 화폐를 만들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해가 넘도록 외국에서 열리는 국제학회 참석이 어려워져 겨울 속의 겨울을 맞이했다. 학회 참석을 위해 해외 출장을 다니던 때를 그리워하면서 학문적 고독감에 우울해하던 것도 잠시였고 금세 혹독한 환경에 적응했다. 뉴욕의 아침, 파리의 오후 시간인 한밤중에 국제 공동 연구를 위한 온라인 회의를 하고, 세미나를 듣는다.

이론물리학자에게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연구에 집중해 위대한 업적을 남길 기회다. 뉴턴은 1665년 런던에 흑사병이 유행해 캠브리지 대학에 휴교령이 내리자 시골에 내려가 2년을 보내면서 잡무에 시간을 빼앗기는 대신 집중적인 연구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완성했다. 박테리아가 인류의 우주 이해에 기여한 셈이다. 이탈리아의 학자들이 이 정신을 계승해 작년부터 매주 ‘Newton 1665’ 세미나를 온라인으로 개최해 요즘에는 집에서 최신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석학의 세미나도 듣는다.

온라인 학술 활동이 대면 활동을 대체할 수 있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온라인 세미나를 마음껏 들을 수 있으니 훨씬 좋아진 것으로 보이지만 소규모 전문가들만이 학회에서 와인을 곁들인 저녁 만찬에서 얻는 정보를 얻기는 어렵다. 농담 속에서 진솔한 생각을 읽고, 편협한 사고를 버리고 새로운 시각을 갖춘다. 공연 현장의 아우라를 음반이나 동영상이 대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온라인에서 대면만큼의 생생한 정보를 얻어낼 만큼 인류가 진화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좋은 연구 성취를 이룬 연구자는 너무나도 강렬하고 황홀했던 순간을 잊지 못해 같은 경험을 다시 하기를 꿈꾼다. 그러나 성공을 예감하고 밤잠을 설쳐가며 흥미를 느끼던 문제는 몇 달이 지나며 그저 그런 문제로 전락하고, 그마저도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 못해 우울하게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때 흥미로운 결과가 아니어도 꿋꿋하게 연구를 완성해 성실하게 발표하는 학계의 동료들을 보면서 위로를 얻는다. 연구 활동을 하는 동안 심리 상태는 흥분과 실망으로 널뛰기를 하는데, 이런 감정들을 겪으면서 연구 생명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학회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한밤중의 온라인 학회 참석으로 늦잠을 자는 6월이 될 것 같다. 다들 어떻게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면서 좋은 연구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현대 물리학의 두 기둥인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은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완성됐다. 고전 물리학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완성하게 된 시기와 전쟁으로 역사적 전통이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나가야 했던 시기가 일치하는 것이 우연은 아니다. 페스트가 만유인력의 법칙 탄생에 기여함으로써 우주의 이해를 도왔듯이 코로나19와 지금의 학문적 위기가 인류가 우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길 내심 기대해 본다.

아, 맞다! 뉴턴의 시대에는 인터넷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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