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행정대학원 석사과정)
김소연(행정대학원 석사과정)

나를 포함한 지금의 20대는 가히 태어나서 가장 불안정하고도 불확실한 시기를 살아 내고 있다. 한두 달이면 끝날 줄 알고 참아왔던 생활이 벌써 일 년 하고도 반이 지나버렸다. 나는 어려서부터 미래를 계획하는 것을 몹시 즐거워했고, 대학을 다니면서부터는 바쁜 일상을 미리 쪼개어 계획해내는 것에서 많은 성취감을 느꼈다 - 그러다 2020년이 됐다. 

이 바이러스가 일상에 침투하면서부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됐다. 드라마틱한 일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이제 막 국내 일일 확진자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던 작년 2월 초, 나는 피지의 국제기구로 파견될 예정이었지만 비행기를 타기 이틀 전에 파견 무기한 대기로 전환되고 말았다. 일하던 학원을 그만두고 자취방 이삿짐을 싸다가 전화로 소식을 들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게 말 그대로구나”하고 알게 됐다. 그 이후에는 우리가 모두 겪었듯 엎어지는 계획들과 취소되는 기대 속에 살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나에게는 특히나 더 큰 공포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이 가려진 채 걷는 듯했다. 그렇게 일 년을 버텼고, 우여곡절 끝에 피지에 왔다.

이방인으로 살아본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계절도, 운전하는 방향도 반대인 이곳에서 맥락 밖으로 던져진 나를 나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다. 생각하지 못했던 곳까지 스며있는 규범과 문화에 처음으로 빛을 비춰봤다. 어떤 부분은 강화되고, 또 어떤 부분은 나에게 무의미한 각본이 됐다. 오랫동안 써온 마스크를 벗고 편안히 숨 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누리고 있는 나의 평화의 절반 정도는 그 바이러스 덕분이다. 2020년을 살아 내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완벽히 계획된 삶’에 대한 집착을 덜어냈다. 단순히 덜 계획적인 사람이 됐다기보다는 내 통제 밖에 있는 것들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알게 모르게 같은 선상의 탄력성을 가지게 됐다고 믿는다.

이토록 감사한 해방감의 나머지 반절은 바로 20초의 용기 덕이다.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2011)에서 벤저민 미 역을 맡은 맷 데이먼은 극 중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You know, sometimes all you need is 20 seconds of insane courage. Just, literally 20 seconds of just embarrassing bravery. And I promise you, something great will come of it.”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행복한 무계획자로 살기로 작정한 나는 무엇이든 재밌어 보이는 것에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뛰어들 용기가 생겼다. 막상 경험해보지 않은 수많은 것들 앞에 서자 본능적인 두려움이 앞섰지만, 눈을 딱 감고 이 20초의 용기를 내 봤다. 그러자 정말 많은 ‘something great’이 일어났다. 바다에서 튜브 없이 수영해본 적도 없는 내가 서핑을 하고,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땄고, 화상을 입을 때까지 피부를 태워봤으며, 털을 길렀다가, 왁싱을 해봤다가, 입술에 감각이 없어지는 전통 음료를 마셔보고, 물구나무를 설 수 있게 됐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동시에 나를 알아가면서 더 풍부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여러분 각자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데 필요한 첫 번째 재료를 이미 갖고 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깊게 생각하지 말고 딱 20초, 숨을 참고 용기를 내 보자. 우리는 이미 미래에 있을 수도 있는 행복을 위해 현재를 참아내는 연습을 너무 많이 했다. 적어도 이제는 각자의 현재를 누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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