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경 부편집장
이다경 부편집장

지금은 흔적만 겨우 남아있지만, 제 손목에는 장축이 1.5 센티미터, 단축이 0.8 센티미터 정도였을 타원형의 점 하나가 새까맣게 있었습니다. 아기들이나 어린이들의 작은 몸집을 생각해봤을 때, 그 새까만 점은 눈에 띌 정도로 컸을 겁니다. 매해 열심히 떡국도 먹으면서, 나름대로 키도 키우고 살도 찌우는 동안, 그 점은 점점 옅어져 갔습니다. 그 점의 이름은 ‘예쁜 점’이었습니다. 

자신의 작은 첫째 아이의 작디작은 손목 한 편에 있는 커다란 점을 본 어머니는, 혹여 사람들이 그 점을 갖고 놀릴까 봐, 사람들의 놀림에 그 아이가 의기소침해질까 봐 ‘예쁜 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그 점은 똥파리를 똑 닮았었기에 자칫하면 그런 놀림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똥파리가 못났다고 말하기는 많이 미안한 심정이지만, 어린 마음에 들었다면 많이 속상했을 놀림입니다. 내 손목에 똥파리가 있다니! 대신, 저의 점은 예쁜 점이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을 갖게 됐죠. 매서운 세상에서 다소 똥파리를 닮고, 예뻤던 점의 흔적을 가끔 오롯이 쳐다보면서, 한 사람의 다정한 태도를 되새깁니다. 

달력이라는 우리들의 약속에 따르면, 지금 제가 쓰는 이 글자들은 24일 자 월요일의 종이 신문 위에 있겠죠. 1989호(『대학신문』2019년 8월 26일 자)부터 2027호(『대학신문』2021년 5월 24일 자)까지 서른아홉 개의 신문들이 만들어지는 동안 글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다양한 음색으로 그들의 생각들을 들었고, 서로 다른 의견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서 서툰 고민들을 하다가 활자로 타닥타닥 옮겨 적었습니다. 2019년의 여름철에 선풍기 바람을 쐬며 첫 번째 기사의 초고를 썼던 것이 엊그제 같이 느껴지는데, 지금은 벌써 2021년이고, 오늘 낮에는 쨍쨍한 햇빛에 덥다고 느껴져 다시 선풍기를 주섬주섬 꺼내놨습니다. 

39번째로 만드는 이번 2027호 신문이 글 기자로서의 저에게 마지막이 되는데, 이제 와서야 피곤이라는 핑계 아래 그동안 외면하고 있던 예쁜 점의 흔적을 다시 더듬거려봅니다. 지난 신문들을 만드는 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을 다루는 것에 충분히 다정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안도현 시인의 시를 오마주하며 답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평생, 어쩌면 다음 생이나 다다음 생까지도 연탄재를 함부로 차기는커녕 함부로 건드리거나 쳐다보는 것도 안 될 것 같다고. 

제가 겪은 서울대 안팎의 세상은 언제나 수많은 말풍선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말풍선들을 조금 더 다정하게 다뤘더라면, 그 뒤에 놓인 생각 풍선까지도 제대로 들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인의 감각들은 정확한 좌표의 점에 똑같이 머물러 보지 않는 이상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만, 그러니까 더 다정해야 했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여태껏 제가 애써 쓴 여러 말들 중에 한마디라도 누군가에게 큰 도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잠깐의 선한 즐거움 정도는 됐을 것이라고 믿어봅니다. 

예쁜 점의 흔적을 지금에서야 눈에 담아보면서, 이제는 신문사 글 기자 생활을 마치는 점을 찍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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