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관악캠퍼스의 '프리하지 않은' 배리어프리

교육부는 장애 대학생의 고등교육 환경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2003년부터 3년에 한 번씩 대학별 ‘장애 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실태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 관악캠퍼스(관악캠)는 2017년과 지난해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최우수 등급은 100점 만점을 기준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캠퍼스에 부여된다. 전국 343개 대학의 423개 캠퍼스 가운데 9.2%만 최우수를 받았다.

평가 결과에 따르면 관악캠은 ‘배리어프리’(Barrier-free)를 우수하게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 학생들은 여전히 학내 시설을 이용하면서 불편함을 여럿 겪고 있다. 회전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장애인 화장실,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장애 학생 전용 책상, 그리고 불편한 건물 출입구에 이르기까지 미흡한 점들은 계속 발견되고 있다. 『대학신문』은 교육부 국립특수교육원이 사용한 실태평가 조사 지표를 바탕으로 관악캠 내 단과대 건물들을 선별해 장애 학생 전용 편의시설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 그 현장을 조사하고, 시설을 이용하는 장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Prologue. 사전 준비

기자들은 현장 조사에 앞서 교육부가 사용하는 실태평가 조사 지표를 분석하며 문제점을 여럿 감지했다. 건물의 안팎을 모두 점검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표인 만큼 정리해야 할 기준들이 많았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평가 기준도 있었다. 이를테면 바닥 마감의 경우, 미끄러움을 어떻게 측정해 등급별로 점수를 매기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점형 경고 블록’의 설치 여부를 출입구 전체가 아닌 주출입구에서만 살피고 넘어가는 항목도 있었다.

분석이 끝난 다음에는 현장 조사에 필요한 항목들의 조사 방법을 정리했고, 건물별 조사 항목들을 △가는 길 △건물 안내도 △출입구 △복도 △계단 △승강기 및 휠체어 리프트 △강의실 △화장실로 분류했다. 이후 기자들은 관악캠 지도를 펼쳐놓고 조사할 건물들을 선정했다. 모든 건물을 조사할 수는 없었기에 중앙도서관과 중앙도서관 관정관(관정관)을 포함해 단과대별로 학생들이 평소에 자주 이용하는 건물을 지도에 표시했다. 함께 협업한 사회대 학생회 「Homie」가 조사를 진행한 사회대 부근을 제외하고 건물들을 구역별로 묶어 각자가 조사할 곳을 선택했다. 어떤 기자들은 전자 측정기를 구매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Episode 1. 화장실

본격적인 조사는 지난 12일(수)부터 시작됐다. 맡은 구역을 각자 조사하되, 문제가 발견되면 사진을 찍어 단체 채팅방에 공유하자고 약속했다. 첫날부터 채팅방 알림이 쉴새 없이 울렸다. “중앙도서관 3A 열람실, 출입구가 미끄럽고 경사로에 손잡이 없음. 출입구는 반쪽밖에 열려 있지 않았는데 그 폭이 0.9m밖에 되지 않음.” “3A 열람실 장애인 전용 화장실 상태 나쁨. 벽면에 걸린 휴지까지의 높이가 1.6m라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손을 뻗어도 닿기 어려움. 화장실 칸 내부 가로 폭은 1m, 세로 폭은 1.4m 미만으로 휠체어가 돌기 어려운 구조임. 휴지통 면적을 포함하면 유효 회전 폭은 더 좁아질 것으로 추측됨.” 4구역(중앙도서관·관정관·학생회관·자연대 24동) 조사를 담당한 기자의 메시지였다. 녹록지 않은 현장 상황에 여러 개의 메시지를 연달아 전송하면서 당황스러워했다.

관악캠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장애인 화장실의 상태였다. 실태평가 지표에 의하면 화장실 칸 내부의 바닥 유효 면적은 ‘유효 바닥 면 크기의 폭이 2m 이상, 깊이 2.1m 이상’일 때 ‘우수’(3점) 등급을, ‘폭이 1.4m 이상, 깊이가 1.8m 이상’일 때 ‘적정’(2점) 등급을 받는다. 유효 바닥 면의 크기는 휠체어가 대변기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폭이 충분한지, 깊이는 휠체어가 칸 안에 들어간 상태에서 문이 닫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문에서 대변기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이다. 하지만 관악캠에는 폭 또는 깊이 중 하나만 기준에 부합하는 사례나, 폭과 깊이 모두 부적합한 사례가 상당했다.

지난 13일부터 5구역(4동·6동·8동·12동)을 조사한 기자는 그 심각성을 느꼈다. 신양인문학술정보관(4동)을 먼저 방문했는데, 4동 1층의 장애인 화장실로 가자 믿기 어려운 풍경이 펼쳐졌다. “불이 왜 안 켜져? 저 양동이랑 음식물 그릇은 또 뭐야. 저런 거 안에 두면 안 되는데.” 화장실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었다. 유효 바닥 면 크기와 깊이는 각각 0.6m와 0.7m에 불과했다. 비데는 작동하지 않았고, 물건이 변기와 세면대 근처에 적재돼 있었다. 4동은 인문대 학생들이 도서관만큼 자주 가는 공부 장소다. 4층 건물에 장애인 화장실은 1층에 있는 공용 화장실 하나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 사범대 12동의 사정도 비슷했다. 12동 1층에 있던 장애인 화장실은 수동 손잡이 문을 열어야 출입할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문을 당기고 들어가기 어려운 형태다. 여성 화장실을 기준으로 직진해서 대변기에 도달하기 직전, 바로 왼쪽에 세면대가 설치된 탓에 회전 구간을 확보할 수조차 없었다. 세면대에는 청소 도구가 쌓여있었다.

실태평가 지표는 장애인 화장실의 관리 정도를 △대변기 칸막이 출입문 △칸막이 출입문 유효 폭 △바닥 유효 면적 △대변기 형태 △점자 블록 설치 위치 △대변기 수평·수직 손잡이 △대변기 세정 장치라는 항목으로 세분화돼 있다. 기자들이 현장을 조사한 결과 이 같은 방식의 문제점은 시설의 설치 여부 그 자체만 평가한다는 것이었다. 시설이 갖춰졌어도 휠체어가 실제로 움직일 공간이 충분치 않다면 시설 자체를 사용할 수 없기에 점수를 부여하고 등급을 매기는 행동이 무의미해진다.

Episode 2. 건물 내부

4동 1층 화장실을 거쳐 강의실과 세미나실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문이 열려있던 309호로 들어갔다. 강의실 뒤편으로 걸어가자 공간 문제상 강의실 앞쪽으로 들일 수 없었던 여분의 책상과 의자가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 교실 구석 끝자락에 방치된 장애 학생 전용 책상이 눈길을 끌었다. 강의실 앞쪽을 향해 몸을 돌리니 교실의 모습이 사뭇 다르게 보였다. 비장애 학생들을 위한 좁다랗고 긴 책상만 가득했다. 두산인문관(8동)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층 주출입구를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계단을 밟자 두 기자 모두 한숨을 쉬었다. 미끄러운 계단 옆의 추락 방지턱을 보니 사이사이에 설치된 추락 방지용 단들 사이의 간격이 지나치게 넓어, 방지턱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했다. 사람 한 명이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간격이었다.

다음 날인 14일에도 조사는 계속됐다. 끊임없이 발견되는 문제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관정관 열람실 7층과 8층의 장애 학생 전용 책상 역시 체형과 휠체어 규격에 맞게 책상 높낮이 조절이 되지 않았다. 3층 화장실의 수동문은 힘껏 당겨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무거워 휠체어에 앉은 상태에서는 열기 어려운 정도였다. 대부분의 장애인 화장실은 칸 내부에서 휠체어가 회전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도서관 1층 주출입구에 있는 점자 촉지도의 전원 장치는 뽑혀 있었다.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엘리베이터가 출입구 근처에 있었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면 경비원이 소지한 전용 카드를 리더기에 찍어야 했다. 경비원을 호출해야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형국이었다.

Episode 3. 건물 외부(경사로)

건물 외부에서는 경사로가 큰 문제였다. 산지에 지어진 관악캠의 특성상 엄청난 경사를 자랑하는 가파른 구간들이 상당히 많았다. 공대 건물이 몰려 있는 구역에서 특히 그랬다. 14일 2구역(27동·142동·43-1동)을 조사했던 기자는 채팅방에 사진을 끊임없이 올리며 경사와 관련된 문제들을 토로했다. “142동 출입구 근처에 경사로가 없어요. 계단만 있어요. 휠체어 탄 사람은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43-1동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너무 심해요. 출입구 근처에 턱 같이 생긴 장애물도 있고요, 27동 가는 길도 마찬가지예요.”

실태평가 지표에는 경사로 유효 폭과 기울기를 측정하고, 휴식 참*과 난간(손잡이) 유무를 조사하는 항목이 있다. 기자들이 관악캠 건물들을 돌아다닌 결과, 경사로의 상태를 살피기 앞서 경사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건물들이 많다는 점을 발견했다. 점수를 매기는 것이 무의미했다. 출입구 앞에 경사로를 따로 만들어놓는 경우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물 출입 자체는 수월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문제는 산의 지형을 따라 지어진 건물들의 특성상 건물에 도달하기 직전까지 보행자가 올라가야 할 길의 경사가 상당했다는 점이다. 2구역을 담당했던 기자도 이를 지적했다.

이런 문제는 소위 ‘윗공대’(301동·302동)라고 불리는 건물 부근에서 가장 심했다. 301동으로 올라가는 길의 경사는 굉장히 가파르다. 그뿐만 아니라 CU 편의점과 퀴즈노스 서브(QUIZNOS) 음식점, 그리고 301동이 일직선으로 위치한 평지로 올라가기 직전의 길도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지난 20일 이곳을 찾아 휠체어를 직접 끌어보며 경사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했다. “이걸 경사로라고 만든 거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휠체어를 밀어서 올라가기도 버거웠다. 평지로 진입하기 직전 구간의 길바닥이 배수로로 인해 울퉁불퉁해서 휠체어가 덜컹거리기까지 했다. 휠체어를 끌며 301동과 302동으로 이어지는 경사길을 바라보니 기분이 아찔했다.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을 타고 건물까지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동할 때는 필연적으로 이 경사로를 거쳐야 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휠체어 사용자 본인의 힘만으로는 이곳을 다닐 수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나마 경사로는 있지만 회전 구간의 폭이 좁아 휠체어를 움직이는 것이 어려운 곳도 있었다. 자연대 500동 앞에 설치된 경사로가 그 사례다. 실태평가 지표에서는 경사로 회전 구간의 가로 폭과 세로 폭을 모두 1.5m로 지정해두고 있었으나, 기자가 조사한 결과 세로 폭은 약 1.1m에 그쳤다.

Episode 4. ‘애매한’ 배리어프리

“이 지도는 잘 만들었다.” 12동 조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다. 건물 앞에 큼지막하게 장애인 편의 시설 안내도가 설치된 것을 봤다. 기분이 묘했다. 출입구 문 앞의 점자 블록이 덜컹거리는 것을 보다가도, 변기 바로 앞에 있는 세면대까지 거리가 채 0.4m밖에 되지 않아 휠체어를 움직이기 어렵게 설계됐다는 사실을 눈치채다가도, 건물 앞에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이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배리어프리를 고려하지 않은 것도, 완전히 고려한 것도 아닌 건물이 대다수였다.

현장 조사를 시작한 첫 주에 같은 팀 기자와 함께 학내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찾아 임희진 전문위원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장애 학생들을 우선에 두고 시설을 확충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많아요. 예를 들어 자동문을 설치하면 냉난방 조절이 어려워져 이산화탄소 배출과 같은 환경 문제에 대응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어요. 그리고 관정관처럼 모든 학생이 사용할 수 있는 건물과 달리 일부 단과대 건물은 그 단과대의 학문적 특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내부 시설을 지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의견 조율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일정 부분 현실과 타협하는 과정을 거치면 모든 기준에 부합하는 시설을 만들기 어려워진다는 것이었다.

“두 가지 생각이 전부 들어요. (시설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갖춰져 있는 게 어디냐 싶기도 하고, 이렇게 만들 거면 차라리 안 만드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해요.” 사회대에 재학 중인 장애 학부생 A씨는 때때로 기만당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학내 배리어프리 시설이 본부의 보여주기식 사업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최우수 등급을 2회 연속 받고 있잖아요. 평가 기준이 정당한지는 모르겠어요. 우리 학교가 이 정도인데도 그렇게 높은 등급을 받았는데, 다른 학교는 얼마나 상황이 안 좋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A씨는 캠퍼스 생활에서 겪었던 불편함을 이야기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범유행으로 모든 이론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그가 학교에 방문하는 목적은 높은 확률로 대면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그는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자신이 휠체어를 타고 강의실에서 무사히 시험에 응시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장애 학생 전용 책상이 있다고 한들 굉장히 당혹스러운 위치에 설치된 적도 꽤 있었어요. 강의실 완전 뒤편에 있거나, 교수님 서 계시는 자리 바로 앞쪽에 있곤 했죠.”

전용 책상이 다른 용도로 사용될 때도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책상 위에 체온 측정기랑 명부가 올려져 있기도 했죠. 난처했어요.” 설상가상으로 장애 학생 전용 책상이 강의실에 비치됐는지 장애학생지원센터에 물어보지 않으면 알 경로가 전혀 없다며 답답함을 고백하기도 했다. “이번 학기에는 (센터에서) 답이 오기까지 4일이 걸렸어요. 답이 왔을 때는 이미 시험이 끝나고 시간이 지난 뒤였죠.”

A씨는 ‘틈새’라는 단어를 썼다. 비장애인이 기술의 산물을 이용하는 표준적인 대상으로 인식되는 반면, 장애인은 ‘비표준적인’ 존재로 소외된다는 맥락에서였다. “코로나19 때문에 요즘 전자 체온 측정 기계를 많이 쓰잖아요. 근데 그 기계가 비장애 학생들 키에 맞춰져 있어서 휠체어를 탄 상태로는 체온 측정이 잘 안 돼요. 이런 틈새, 그러니까 허점이 보일 때마다 기분이 조금 안 좋아요. 사소한 부분에서 차별을 받는 거잖아요.” 사람들은 기술을 통해 더 나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하면서도, 제자리걸음에 가까운 인식으로 무언가를 늘 놓친다.

Episode 5. 틈새가 너무 넓어질 때

애매한 배리어프리마저도 없는 공간이 있었다. 음·미대가 그런 경우였다. 기자가 19일 음대 54동과 미대 51동을 방문했던 날의 일이다. 54동 1층 주출입구에 도착한 순간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는 출입구 경사로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4층 건물이었음에도 내부 엘리베이터와 휠체어 리프트가 없었다. 점자 블록도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다. 1층에 있던 여성 장애인 화장실에는 책상과 박스, 청소 용품들이 변기 옆에 놓여 있었다.

미대 51동에 들어가서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었고, 장애인 화장실 개수가 더 많았으며 점자 블록도 음대보다는 더 많이 설치돼 있었지만 건물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건물과 건물, 층과 층을 드나드는 과정에서 계단을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평소 휠체어를 사용하는 음대 학부생 B씨는 기자가 단시간에 피상적으로 포착했던 문제들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정문은 이용하기 어려워서 후문을 이용해야 하는데, 문이 항상 잠겨있어요. 그래서 건물에 들어갈 때마다 활동 보조 선생님께서 정문에 계시는 경비원분을 호출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후문에 있는 경사로를 이용할 때마다 목이 뒤로 넘어가고, 몸이 쏠려서 아플 때가 많아요.”

B씨는 연습실을 사용할 때도, 강의실에 갈 때도, 주차장을 이용할 때도 불편함을 겪는다. “54동에는 엘리베이터가 연결되지 않아서 2층 이외의 연습실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건, 휠체어를 탄 저로서는 55동 대형 강의실에 갈 수가 없어요. 53동 후문 쪽 주차장도 경사가 극심해서 휠체어를 탄 저는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덧붙여 B씨는 강의실 안에 있는 책상 역시 휠체어가 들어가기엔 폭이 좁고 높이가 너무 높다고 호소했다. 때때로 책상을 사용하기 어려울 때면 강의실의 맨 앞줄이나 맨 뒷줄에서 학우들과 동떨어진 채 혼자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표준을 세웠을 때 발생하는 틈새가 이만큼이나 벌어지면, 봉합에 필요한 시간은 무척 길어진다. B씨는 음대 행정실에 미비한 시설을 개선해달라고 건의했지만 실질적인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음대 역시 시설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지만, 건물 자체가 낡은 만큼 리모델링 사업을 개시하기 전까지는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제가 수강하는 수업이 열리는 강의실을 모두 1층으로 옮겨 주시기도 했는데, 제 불편함은 대부분 건물을 출입할 때 생기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느끼진 못했어요. 리모델링 사업에 제 의견을 반영해주겠다고 하셨지만, 아무리 빨라도 리모델링이 이뤄질 때까지 최소한 2년은 필요하니까. 학습권이 일부 보장되지 못하는 건 명백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설지원과는 음대처럼 준공된 지 오래된 건물은 장애인 편의 시설에 대한 고려 없이 내부 설비를 계획한 경우가 많아 시설 정비 시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힌다고 설명했다. “이런 건물들을 대상으로 시설을 확충할 때는 장애 학생이 실제로 시설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즉 현행법규(‘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 시행지침’)를 준수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을 확보해서 확충하기가 어렵죠. 어느 건물의 어떤 시설을 고쳐야 하는지 즉각적으로 파악하기도 어렵고요. 캠퍼스가 넓어서 모니터링이 힘드니까.” 나아가 법령을 준수하지 않아도 기관 차원에 주어지는 불이익이 거의 없어, 시행지침은 실질적으로 ‘권고’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지 못한다.

 

기자들의 조사 결과와 학생들의 의견은 시설의 미비함뿐 아니라 법령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과 문제 제기로 확장된다. 법규를 통해 일률적인 기준치를 정해 배리어프리의 정도를 수치화하는 것이 최선의 평가 방법일까. 평가 방식이 채택하고 있는 기준이 배리어프리의 정도를 측정하기에 적절한지 의문이 들었다.

“장애 학생들이 마치 ‘플러스알파’로 여겨지는 것 같아요.” A씨는 비장애 학생들만 교내 시설을 이용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이 지난 몇 주간 살폈던 관악캠의 건물들은 최우수 등급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모습으로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신설된 건물에서는 시행지침에 따른 기준을 준수하고 있는 경우도 다수 존재했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이번 기사가 서울대의 배리어프리를 되돌아볼 진지한 논의의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휴식 참: 휠체어에 탑승한 상태에서 경사로를 올라가다가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구간에 설치되는 평면.

삽화: 정지운 기자 jw1234@snu.ac.kr

인포그래픽: 유지원 기자 uz10913@snu.ac.kr

레이아웃: 양수연 기자 didtndus016@snu.ac.kr

도움 주신 분들

사회대 배리어프리 TF 고세진 (정치외교학부·19) 권영서 (정치외교학부·21) 김준기 (언론정보학과·19) 김채령 (정치외교힉부·21) 문다예 (정치외교학부·21· 배리어프리 팀장) 박지원 (정치외교학부·21) 박진 (정치외교학부·21) 양성혁 (심리학과·15·사회대 부학생회장) 엄지우 (정치외교학부·20) 오지현 (정치외교학부·19) 이영서 (언론정보학과·19) 정재인 (심리학과·20) 동아리 ‘위디’(Wit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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