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희 뉴미디어부장
김규희 뉴미디어부장

학창 시절, 나는 선생님보다 친구들에게 더 많이 혼났다. 어른들은 알아서 제 공부를 하는 나를 별로 간섭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인터넷이나 주변에서 습득한 말들을 여과 없이 사용하곤 했다. 나날이 자유로워져 가던 내 언행을 바로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고등학교 친구들이었다.

“규희야, 그런 욕 쓰면 안 돼.”

“규희야, 그때는 ‘잘했어’가 아니라 ‘고마워’라고 하는 거야.”

또래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이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나는 도리어 고마웠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사람을 무리에서 배제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말이 거칠었고 감수성은 부족했다. 그런 내가 학보사에서 지난 1년 반 동안 기자로 일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입사 당시 기사의 논조를 두고 실랑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게 무슨 차이인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도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지금은 퇴임한 내 절친한 친구로부터 혼나가며 어떤 언어표현을 써야 하고 또 쓰지 말아야 하는지 많이 배웠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나는 감히 서울대를 좀 혼내보고자 한다. 지난해 서울대는 ‘장애 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기획 기사를 쓰며 돌아본 서울대는 그러한 등급을 받을 자격이 없다. 최신식으로 장애인 전용 화장실을 만들어도 그 앞을 소화기와 대형 쓰레기통으로 막아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교육부가 실태조사에 대한 정확한 평가 점수를 공개하지 않는 탓에, 이 기획 기사는 많은 기자들의 손을 거쳤다. 나는 부장이라는 이유로 이 기사를 넘겨받은 마지막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서울대의 모습은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던 나조차 탄식하게 했다. 가파른 경사로에 진입조차 불가능한 화장실. 얼마나 불편하고 또 불편했을까 감조차 오지 않는다.

교육부는 최우수 등급을 받은 대학에 인증 현판을 부여한다. 나는 그 황금빛 자태를 학교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도 문제지만, 교육부도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칭찬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다. 따끔하게 야단을 쳐야 할 상태다. 노후화한 건물을 핑계로 어정쩡한 배리어프리를 실천하는 학교에게 ‘최우수’ 등급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 기사로 ‘배리어프리 기획’을 내보내며, 나는 생각 없이 살던 한 인간의 내면이 그래도 많이 변화했음을 느낀다. 다 혼난 덕분이다. 진실한 칭찬은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지만, 사람은 칭찬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더욱이 변화가 필요한 순간에는 말이다. 이번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은 서울대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말하고 싶다. 

“혼나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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