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호(기계항공공학부 박사과정)
김중호(기계항공공학부 박사과정)

1993년생, 매일을 20대의 마지막 날로 살고 있는 나에게 요즘 막연한 걱정이 생겼다. 예전 같지 않은 체력과 점점 꺼져가는 마음속 불씨가 가슴 한편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고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내리막일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특히 열정과 연구 의욕을 가득 가지고 있어야 할 대학원생이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걱정됐다. 그러던 와중 가수 윤종신과 오은영 박사의 대화를 우연히 인스타 피드에서 보게 됐다. 윤종신은 해야 할 게 많은데 점점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이런 과정이 창작자로서 위험한 게 아닌가 걱정이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이런 상황에서 오은영 박사는 자기 자신을 한발 물러서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고, 이러한 과정을 ‘자각’이라고 하며 당면한 문제를 타당하게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성숙’이라고 했다.

나는 성숙이라는 말을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내 모습과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태도들을 부정할 수 있는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문제가 생기면 항상 적극적으로 부딪혀왔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어내야만 했던 나에겐 앞서 말한 방식의 자각과 성숙은 큰 충격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던 모습이 아니면 나는 나일 수 없었고, 그 기준이 변하는 상황은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다시 말해 나는 지금 나 자신의 변화를 자각하지 않으려고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 30대에 들어서지도 않은, 객관적으로는 젊은 나이지만 점점 변해가는 나의 모습을 처음으로 자각하게 됐을 때는 스스로가 정말 낯설었다. 아마도 내가 생각하던 ‘바람직한 나’에 대한 선입견에 빠져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못했기에 변하는 나의 모습이 더욱 생소했던 것 같다. 나는 아직 이대로 괜찮고 멀쩡하다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었겠지만, 오은영 박사의 말을 곱씹어 생각해 보면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로 했고, 정말 오랜만에 얼마나 차가울지 모르는 나의 바다에 발을 담가 보기로 했다. 자기 전이나 산책할 때 등 혼자 있는 시간에 지금까지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 변해갈 나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오히려 겨울 바닷물이 생각만큼 차갑지 않듯, 직접 내 안을 들여다보고 난 뒤엔 편안함과 안정감이 내 주변을 감돌았다. 이러한 감정이 든 이유는 객관적으로 달라진 나를 마주하면서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이를 통해 나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기준을 세우면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고 동경해오던 자신의 모습이, 내가 아닐 수도 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다른 꽃이 피듯 사람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해간다. 자신에 대한 일반적인 프레임을 만드는 것은 쉽고 편한 인생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나 변해가는 자신을 자각하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와 자세를 가진다면, 오히려 더욱 유연하고 확신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각자 그때의 색깔을 찾아서 팔레트에 담고 다양한 색채의 행적을 남겨보면 어떨까? 나의 10대와 20대의 색깔이 열정 가득한 빨간색 계열 물감이라 에너지가 넘치는 태양이나 싱그러운 과일을 그려왔었다면, 이제부터는 바뀐 색깔로 강이나 호수 같은 풍경들도 그려보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각자 살아가면서 남기는 자신만의 붓질 한 획 한 획이, 훗날 되돌아 펼쳐 봤을 때 멋진 한 폭의 그림이 돼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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