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파도에 대처하는 방법, ‘나’를 위한 글쓰기
흔들리는 파도에 대처하는 방법, ‘나’를 위한 글쓰기
  • 대학신문
  • 승인 2021.05.30 06: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효재 강사(국어국문학과)
김효재 강사(국어국문학과)

아주 자지러지게, 숨도 못 쉬게 웃기는 이야기를 찾고 있다. 그야말로 배꼽이 빠질 만큼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뭐가 없을까? 세상에 웃긴 얘기는 다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죽어가는 웃음을 살리기 위해 생명수를 구하러 서천서역국으로 떠나야만 할 것 같다. 엄청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아주 재미난 이야기로 세상의 배꼽을 다 떨어지게 만들리라!’ 이 정도로 아주 야무진 포부를 갖곤 한다. 그러나 배꼽은 억지로 안 된다. 해와 바람의 내기를 기억하자. 과욕은 금물이다. 

나를 위해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작가 머리말을 읽은 뒤부터였다. 작가가 어린 나이에 결혼과 이혼을 경험하고, 홀로 갓난 딸아이를 데리고 변변한 직장도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며 가장 불행한 시간을 보내던 나날 중에, 그 불행을 잊을 수 있도록 자신을 즐겁게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써 내려간 것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시작이었다는 내용이었다. 해리포터 이야기 자체의 재미도 재미지만, 작가의 이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 그날로 ‘해리포터’ 시리즈의 애독자가 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역시 내가 힘들 때, 나를 위해 ‘멋지게’ 나를 위한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간직하게 됐다. 그러나 흔들리는 시간이 많다고 글이 느는 것도 아니라, 나는 아직 나를 사로잡는 배꼽 빠지게 재미있는 글을 쓰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는 소중한 동료다. 종강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화상 강의와 비대면의 상황에 어느새 익숙해져 대면 수업이 더 어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나 3학기째 이르러 종강을 앞두고, 비대면 첫 학기에는 ‘신문물’에 적응하느라 바빠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실감하면서, 비대면에서 공유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커진다. 그래서 더욱 글을 매개로 한 소통에 기대게 되고, 글쓰기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소통을 목적으로 하기에 독자를 전제하는 글쓰기에서, 가장 소중한 독자는 글을 쓰는 ‘나’ 자신이며 글은 ‘나’ 자신과의 소통을 통과하면서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비대면 상황은 ‘나’ 자신과 소통할 시간을 대폭 늘려 줬으나, 자기 자신과 ‘비대면’으로 불화하고 불통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기 자신과도 거리가 필요한 순간이다. 불화와 불통의 거리를 조정하면서, ‘먼 곳만 보는 그대’의 시선을 돌려 진짜 ‘나’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대학 글쓰기 1’ 교재에서 글쓰기와 배움에 대한 참 멋진 구절을 보았다. “글은 지식을 지식의 주체에서 분리해 내면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로 진전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11면) “글쓰기는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데 가장 유용한 도구다. 반드시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글쓰기는 한 개인의 정신을 고양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 나의 정신을 드높이고 내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대단히 효과적인 수단이기에 글쓰기는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좌우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글쓰기를 평생의 반려로 삼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14면) “배움이란 나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만나고 배우는 과정”이며, “많은 대상과 소통하면서 더 넓게 확장된 나의 세계는 글을 매개로 타인과 만나게 된다.”(15면)

흔들리는 ‘나’를 위해, 웃음을 잃은 ‘나’를 위해, 대학에서의 배움에 목마른 ‘나’를 위한 처방전으로, ‘나’를 위한 글쓰기를 고민한다. 혼란으로 가득하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수많은 ‘나’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