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 『불안』

불안은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심리 상태다. 『불안』의 저자이자 ‘일상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알랭 드 보통은 인생을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불안』의 원제는 『Status Anxiety』로, 이 책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겪는 다양한 종류의 불안(anxiety) 중 사회적 지위(status)로 인한 불안을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알랭 드 보통은 철학과 예술을 넘나들며 불안의 원인과 해법을 파헤치고 이를 통해 끝없는 불안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끊임없는 불안의 이유는 무엇일까?=저자는 불안의 다섯 가지 원인으로 사랑 결핍·속물근성·기대·능력주의·불확실성을 제시한다. 그중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사랑 결핍’이다. 인간은 태어난 후부터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나 반응으로부터 자아상을 형성한다. 하지만 어릴 때 부모로부터 무조건적으로 받던 사랑과 관심은 시간이 지나며 냉정한 타인들의 조건부 사랑으로 변한다. 애정은 성취라는 사회적 조건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고 성취에 실패하는 것은 곧 사랑과 관심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타인의 사랑을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불안이 수반되는 것이다.

이런 불안을 부추기는 것은 사회 발전에 따라 커지는 성취에 대한 ‘기대’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자신과 격차가 큰 집단이 아닌, 유사한 수준이라고 생각되는 준거집단과 스스로를 비교한다. 선천적인 신분에 따른 엄격한 계급이 종식되면서 노력만으로도 원하는 수준의 집단에 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고 그 결과 준거집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상대방이 가진 것을 자신도 똑같이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가 지위에 대한 불안을 심화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능력주의는 불안을 가속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선천적인 차이에 따른 계급은 소멸됐지만, 인간은 후천적인 지위라는 또 다른 기준으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노력을 통해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은 빈자와 부자의 상대적 미덕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지위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 능력주의로 이어졌다. 이같은 능력주의의 팽배와 성취의 상대성은 현대인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불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이 책은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다섯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특히 저자는 철학의 이성적 활용, 그중에서도 지적인 염세주의가 불안의 감소에 크게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지적인 염세주의란, 대중은 이성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엄격하게 검토하기보다 직관·감정·관습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에 대중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를 뜻한다. 지적인 염세주의를 통해 여론의 오류를 인지하면 무작위 집단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집착에서 가벼워질 수 있다.

『불안』은 능력주의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 역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돈을 곧 ‘소유자의 미덕에 대한 증거’로 여기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미덕을 갖춘 인물로 비춰지기 위해 끊임없이 자본을 탐하며 불안해한다. 하지만 개인의 경제적 능력은 태생적으로 얻은 사회적 조건 및 재능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그 평가 기준이 되는 경제는 계속해서 변하는 불안정한 지표에 불과하다. 저자는 개인의 재정 상태와 인격이 반드시 연관돼 있지 않으며 자본의 분배에 얽혀있는 우연성을 인정할 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불안에 대한 가장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자각’이다. 죽음은 사회로부터 존중받기 위해 우리가 스스로를 위장했던 껍질을 벗겨 내면을 직시하도록 이끈다. 불행히도 죽음을 통한 자아와의 대화는 인간이 삶의 끝에서 단 한 번만 누릴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우리는 삶 속에서 죽음의 순간을 상상하는 사고 실험을 통해 이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도 있다. 죽음을 자각함으로써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 중 가장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으며, 사회로부터 요구받는 단일하고 터무니없는 기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불안을 현명하게 이용하려면=불안의 원인과 해법을 제시하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얼핏 불안을 ‘탈피해야만 하는 심리 상태’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생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불안에 떠는 사람일 수도 있다”라며 불안이 인간의 생물학적·사회적 생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적당한 불안은 삶에 긴장감을 부여하며 인격적인 발전을 돕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극심한 불안은 인간에게 해가 될 수 있기에 불안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인들은 수많은 지위 중에서 특히 ‘사회적 지위’라는 단일한 가치 체계를 맹목적으로 추구한다. 하지만 지위는 집단 내의 법적·직업적 신분이라는 좁은 의미에 국한되지 않고 개인의 인격적인 가치 역시 포괄한다. 『불안』은 지위에 의한 불안을 인정하되, 다수가 추구하는 가치 체계를 비판하고 새로운 가치에 기초한 지위 습득을 추구하려고 시도한다. 저자는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라며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불변이라고 해도, 어디에서 그 욕구를 채울지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는 인정 욕구의 범주를 확장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

2021년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시기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 경제적 불안정, 취업난 속에서 불안은 우리에게 만성적인 감정이 됐다. 『불안』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인생을 불안과 욕망이 끊임없이 대결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불안과 그를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이 본능이라고 인정하고 지위의 범주가 단일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불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불안』 알랭 드 보통, 372쪽, 은행나무, 2011년 12월 28일
『불안』 알랭 드 보통, 372쪽, 은행나무, 2011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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