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 『K-를 생각한다』

노력의 가치가 불투명해지고 있는 시대다. 지난 3월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장벽사회, 청년 불평등의 특성과 과제」에 따르면, 노력에 공정한 대가가 따른다고 생각하는 청년은 10명 중 불과 1~2명에 불과했다. 청년들의 무력감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범유행 이래 축소된 기업 공채와 폭증하는 집값 등으로 인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K-를 생각한다』의 저자는 90년대생인 자신의 관점을 통해 오늘날 청년들이 경험하는 불공정함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청년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큰 과제로 남아 있음을 역설한다.

청년들은 취직을 위해 학점과 어학 성적을 높이고 인턴직에 도전하는 등 끊임없이 스펙을 쌓는다. 사회는 이들에게 ‘승리’를 요구한다. 경쟁자를 누르고 경쟁에서 이겨야 원하는 직업에 종사할 수 있다는 메커니즘을 강요하는 셈이다. 이처럼 낙오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으로 인해 청년들은 거센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래서 확실함을 찾아 헤맨 결과, 청년들은 시험 점수대로 등급이 정해지는 자격증·현장 필기시험·인적성 검사처럼 노력이 정량적인 지표로 산출되는 시스템에 집착하게 된다. 누구나 이런 과정이 포함된 채용 절차를 거쳐 평가받는 시스템 속에서 청년들은 ‘어학 시험에서 몇 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나 ‘직무와 관련된 학회나 인턴직에 도전해야겠다’와 같은 목표를 세워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한다. 결과는 보장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늠해 인생의 예측 불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이 때문에 저자는 오늘날 20·30대가 중시하는 것이 ‘공정함’보다 ‘공정감’에 가깝다고 말한다. 청년 세대는 정량적인 평가 과정이 포함된 채용 절차를 통해 자신이 ‘공정한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라고 느낀다. 그래서 외부의 손길이 이 과정에 개입하지 않기를 바란다. 기존의 절차가 아닌 특별한 방식으로 지원자를 선발할 경우, 노력을 쏟을 창구조차 불확실해지기에 예측 불가능성이 극도로 커지기 때문이다. 

소위 ‘인국공 사태’라 불리는 문제를 두고 수많은 청년 취업 준비생이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지난해 6월 인천국제항공공사(인국공)는 비정규직 중 2,143명을 청원경찰 신분에 해당하는 자사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찬성 측은 그간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직무 능력이 충분히 입증됐기에 별도의 채용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측, 그중에서도 취업 준비생은 정규직의 직무 능력과 전문성이 채용 ‘과정’을 통해 검증돼왔다는 근거를 들어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정규직이 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직무 능력의 척도를 판단하는 기준은 극히 주관적이므로, 엄격한 틀이 갖춰진 채용 절차 내에서 합격자를 뽑아야 준비생들의 박탈감이 해소된다는 설명이다.

90년대생은 이처럼 다른 세대보다 공정의 가치에 민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겪고 있는 심리적인 압박을 덜어낼 방어 기제를 공정에서 찾았기에 공정을 외친다. 경쟁이 기본값이 된 사회에서 청년들은 노력에 따르는 결실의 크기 자체보다도 노력을 투입할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평정심을 느낀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능력주의를 신뢰하는 모습, 다시 말해 정량적인 결과에 따라 적격자를 선발해야 옳다고 생각하는 모습에서 나타난다고 짚는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단지 일회적인 이슈에 지나지 않고 세대 간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일례로 인국공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고용주에 해당하는 기성세대가 충분한 설명 없이 정규직 전환을 급작스럽게 발표했다는 점에 있다. 명분이 무엇이었건 간에, 청년층의 시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될 비정규직이 이전에 거쳤던 입사의 문턱은 확실히 정규직의 문턱보다 낮았다. 비정규직 입사자들이 내세웠던 경력 역시 ‘입사 후’에 쌓은 것들이었다. 인국공의 결정이 정당했다고 해도, 절차의 존재가 청년층에게 무엇을 뜻하는지가 충분히 고려됐다면 논란은 지금보다 수그러들었을 테다. 하지만 정부와 인국공 측은 자리를 얻기 전에 어떤 과정을 ‘마땅히’ 거친다는 것이,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에게 우리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을 제공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저자는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경쟁이 과열된 취업 시장에서 청년층이 겪고 있는 불안감이 이전보다 배로 커졌다고 주장하면서, 기성세대가 된 오늘날의 386 세대가 청년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꼬집는다.

저자가 주장하는 소통 부재의 원인은 386 세대가 여전히 스스로를 비주류라고 여기는 20대 시절의 사고방식과 감수성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기 자신이 이제 기득권으로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가 됐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전히 부를 독점하는 소수 엘리트와 자본가가 외부에 있다는 프레임과 함께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전히 엘리트 보수가 우리 사회의 주류이자 적폐로 살아있음을 논하면서, 자신들은 여전히 이와 같은 악을 물리치려 하는 선량한 비주류라고 착각한다. 이 때문에 젊은 시절 자신들이 외쳐왔던 ‘민영화 반대·비정규직 일자리의 정규직화·재벌 개혁’과 같은 ‘낡은’ 이념을 21세기인 지금에 와서도 고수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 역시 현대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세대가 됐다고 지적한다. 그들 자신이 비판하던 보수 엘리트처럼 스스로도 기득권과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고자 고군분투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양 행동해 청년층이 느끼는 괴리감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동시에 386 세대가 정권을 잡은 지금, 이 세대의 근본적인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오늘날의 20·30대 청년이 어떤 고충에 시달리는지, 자신들이 청년이었던 시절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지 못해 세대 간 갈등은 훨씬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책은 대안을 고민하기 전에 청년 세대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또한 386이 586으로, 그리고 686이 돼 가는 시점에서 새로운 기득권으로 부상한 이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낱낱이 해부한다. 저자의 바람처럼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공정 담론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개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K-를 생각한다』 임명묵, 368쪽, 사이드웨이, 2021년 5월 7일
『K-를 생각한다』 임명묵, 368쪽, 사이드웨이, 2021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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