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을 다시 만난 현대 종교학
진화론을 다시 만난 현대 종교학
  • 대학신문
  • 승인 2021.05.30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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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찬 강사(종교학과)
구형찬 강사(종교학과)

1859년에서 1869년에 이르는 10년 사이에 종교연구계에서는 전에 없었던 새로운 상황이 급격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이 새로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게 두드러졌던 주제를 꼽는다면 ‘진화’일 것이다. (에릭 샤프, 『종교학의 전개』, 제2장에서)

2020년 10월 초, 국제인지종교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Cognitive Science of Religion, IACSR)로부터 특별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학회의 명칭을 변경하는 안건에 대해 온라인 투표를 진행한다는 공지였다. 본래의 명칭에 ‘진화(evolution)’를 추가하고 ‘과학(science)’을 복수형으로 바꿔, 학회의 지향을 새롭게 표명하고 회원들의 다양한 학문적 경향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이후 3주간의 표결을 거쳐 원안이 채택됐다. 그리고 학회의 명칭은 국제인지진화종교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Cognitive and Evolutionary Sciences of Religion, IACESR)로 변경됐다.

종교학(religionswissenschaft, science of religion)은 19세기 진화론의 시대에 시작된 학문이다. 초기 종교학자들은 진화론이 종교연구를 위해 어떤 함의가 있는지에 대해 서로 다르게 평가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진화론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즈음 종교학은 진화론과 결별했다. 직접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서구인들의 자민족중심주의 및 진보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사회진화론’이었지만, 대부분의 종교연구자 사이에서는 ‘진화’라는 용어 자체가 호소력을 잃었다. 안타깝게도 다윈주의 진화론의 혁명적 아이디어까지도 종교학에서 빠르게 잊혀갔다.

종교연구자들 사이에서 다윈주의 진화론이 다시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인지종교학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다. 인지종교학은 진화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인류학, 종교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지식을 절충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는 탈경계적 종교 연구 프로그램이다. 인지종교학자들은 종교적인 사고, 행동, 표현 등의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패턴이 어떻게 횡문화적으로 널리 나타나게 됐는지를 마음의 작동방식과 행동의 진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약 30년 동안 인지종교학의 새로운 학문적 시도가 지속하는 동안 연구자들은 ‘진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표준적인 것으로 제시됐던 이론과 가설을 진화의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정교하게 다듬을 뿐만 아니라, 초기에는 많이 다루지 못했던 종교의 적응적 가치에 대해서도 사회성의 진화나 성선택과 같은 주제를 통해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진화적 가설과 설명모델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경험 연구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리고 연구 질문을 공유하는 서로 다른 분야 연구자들 간의 협업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진화심리학, 인지과학, 행동생태학 등 관련 학문 분야의 연구가 진전되고 더 많은 설득력을 확보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이 국제 학회의 명칭 변경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물론 현대 종교학자들 모두가 이 흐름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초기 종교학자들이 진화론의 영향력을 온몸으로 경험하면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지녔던 것처럼, 지금도 종교를 진화의 관점에서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학자들은 여전히 많다. 특히 국내 대학에서는 이런 아이디어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교과목이 독립적으로 개설된 사례도 아직 찾을 수 없다. 의견의 다양성과 아카데미의 학문적 지향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종교적 사고와 행동의 기원과 체계에 대한 설명은 뇌, 인지, 문화, 진화를 아우르는 통합 과학적 연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뇌, 인지, 문화를 연결해줄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바로 진화다.

 

구형찬 교수

종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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