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논란 속 간과해서는 안 될 노동환경 문제

노조 및 유족 측, “갑질 정황 있어”

관악사, “갑질 아니다”

유족 측, “관악사 해명 받아들이기 힘들어”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 필요해

지난 7일(수) 행정관 앞에서 노조의 주최로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 7일(수) 행정관 앞에서 노조의 주최로 청소노동자 사망과 관련해 오세정 총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2년 전 비극이 되풀이돼···갑질 의혹과 과도한 업무 강도 지적 나와

지난달 26일 관악학생생활관(관악사) 925동에서 50대 청소노동자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2019년 제2공학관(302동)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가 사망한 뒤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대학신문』 2019년 8월 26일 자)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노조)과 유족 측은 고인이 생전에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렸으며, 관악사 안전관리팀장으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노조는 지난 7일(수) 행정관 앞에서 청소노동자 사망과 관련해 오세정 총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본부에 △진상 규명을 위한 산재 공동조사단 구성 △갑질 관리자 파면 △청소노동자에 대한 강압적인 군대식 인사관리 방식 개선 △청소노동자 노동환경 개선 및 재발 대비책 마련을 위한 노사 협의체 구성을 요구했다. 기자회견 이후 노조와 유족은 총장실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고인이 숨진 장소인 925동에서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기자회견에서 노조는 관악사 청소노동자가 안전관리팀장 A 씨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A 씨가 노동자들의 근무 질서를 잡겠다는 명목으로 지난달 2일부터 매주 수요일 오후에 청소노동자 회의를 신설하고 회의에서 인사권을 남용했다는 것이다. 노조 서울본부 박문순 법규정책국장은 “노동자들은 회의 참석 시 정장이나 단정한 옷을 입도록 지시받았다”라며 “작업 복장으로 오거나 필기도구를 가져오지 않은 사람은 인사평가에서 1점씩 감점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A 씨가 동별 준공 연도를 묻거나 관악사를 영어나 한문으로 쓰게 하는 등 업무와 무관한 시험을 보게 했다며 시험지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고인의 동료 노동자는 “시험 점수가 차기 회의에서 공개되면서 동료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라고 토로했다. 또한 박문순 국장은 “3차 회의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제초작업의 고충을 호소하자 A 씨가 1일 8시간의 평일 근무를 한 시간씩 줄인 뒤 남은 5시간을 주말에 근무하고, 절감되는 인건비로 외주를 주겠다고 발언했다”라고 밝혔다. 노조는 청소노동자는 평일에 8시간씩 근무를 하고 주말 근무를 시간외 수당으로 1.5배 가산해 받고 있었기에 평일 근무를 줄이고 그 시간을 옮겨 주말에 근무하면 임금이 줄어들까 걱정했다며 해당 발언이 협박이었다고 주장했다.

청소노동자의 높은 업무 강도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박문순 국장은 “지난달 21일부터 관리자가 청소 상태를 검열하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들은 평소에 손대지 않았던 곳까지 청소하느라 작업 강도가 폭증했다”라며 “특히 고인이 일하던 925동은 매일 100L 쓰레기봉투 6~7개를 엘리베이터도 없는 곳에서 직접 날라야 할 정도로 작업량이 많았다”라고 지적했다. 2019년 청소 노동자 사망 이후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노동자를 대하는 본부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 이재현 학생대표(서양사학과·18)는 “이번 사건은 서울대가 노동자를 여전히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라고 지적했다. 노조 서울대시설분회 정성훈 분회장은 “비정규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은 이뤄졌으나 근무 환경이 개선된 부분은 찾기 어렵다”라고 호소했다. 유족 측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일은 더 힘들어진 상황에서 학교는 오히려 노동자들을 군대식으로 관리했다”라며 “출근하는 모습이 가족의 마지막이 돼서는 안 된다”라고 하소연하며, 강압적인 태도로 노동자를 대우하지 않을 것,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배려할 것, 노사가 협력해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을 요구했다. 

 

갑질은 없었다는 관악사

관악사는 노조가 제기한 갑질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지난 9일 안전관리팀장 A 씨는 『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갑질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필기시험 논란에 대해 A 씨는 “청소노동자가 생활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며 “시험이 아닌 진단고사 정도였다”라고 해명했다. 덧붙여 그는 “2번째 시험 이후 노동자들이 불만을 토로하자 바로 시험을 그만뒀다”라고 말했다. 시험 문항이 업무와 관련 없다는 지적에 대해, 영문 및 한자 표기 문항의 경우 외국인이 비교적 많이 거주하는 BK생활관 등에서 외국 학생들이 문의할 수도 있어 낸 문제이며, 건물 준공 연도에 대한 문항은 오래된 건물과 신축 건물의 청소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상대방에 대한 업무 정보를 알고 이를 서로 존중했으면 하는 의도로 출제한 것이라 전했다. 아울러 그는 “시험을 잘 본 세 분에 대해 박수를 친 뒤 시험지를 도로 나눠주고 문제를 해설했을 뿐”이라며 “해당 시험은 강제성을 띤 시험이 아니고, 인사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아 면박을 줄 이유가 없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후 노조에서 ‘점수는 근무성적평정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라고 명시된 PPT 사진을 공개하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이에 대해 관악사 최충현 행정실장은 “조금 더 열심히 해달라는 의미에서 A 씨가 의욕적으로 쓴 것 같다”라며 “기관에서 성과평가시스템은 개인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노조와 본부 간 단체협약을 통해 정해진다”라고 설명했다.

A 씨는 복장 강요에 대한 의혹 역시 오해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청소노동자에게 회의 참석 시 정장이나 구두 등 ‘드레스코드’를 맞출 것을 요구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는 “복장을 안내한 것은 회의인 만큼 청소노동자들이 단정한 옷을 입고 회의가 끝나면 환복 없이 바로 퇴근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며 “‘드레스 코드’라는 표현은 재밌게 말하고자 쓴 것일 뿐, 이후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다음 공지에는 ‘퇴근 복장’이라고 정정해서 공지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회의 후 청소노동자들이 바로 퇴근할 수 있게 회의 시작 시각도 3시 30분으로 1시간 늦췄다”라고 말했다. 

제초작업 논란과 관련해 A 씨는 “BTL 생활관은 외주 용역이라 제초작업을 안 하는 반면, 다른 동의 청소노동자들은 제초작업을 하는 대신 임금을 더 받는다”라며 “그것에 대해 제초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의문을 제기해서 이유를 설명해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평일 근무를 줄이라고 협박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제초작업을 안 하고 싶다면 BTL 생활관 노동자와 근무 조건을 똑같이 맞춰 건의할 수는 있으나, 학교에서 예초 예산을 추가로 받아야 한다”라며 “그렇게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알려드린 것뿐”이라고 말했다.

A 씨의 복무 관리가 갑질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일부 청소노동자의 의견도 있었다. 필기시험에 대해 청소노동자 B 씨는 “청소노동자들의 학력 수준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을 봐서 당황하기는 했다”라면서도 “그것을 갑질이라고 느낀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옷 규정과 관련해 청소노동자 C 씨는 “회의니 깨끗하게 입고 오라고 한 것”이라며 “안 입고 온 사람에 대한 면박은 없었다”라고 전했다.

한편 관악사는 해명자료를 내고 노조에서 지적한 과도한 업무량에 대해 반박했다. 고인의 죽음 이후 관악사 일부 청소노동자, 행정실장, 안전관리팀장, 일반 행정 직원이 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직접 925동을 청소한 결과, 노조의 지적과 달리 평일 기준 100L 쓰레기봉투가 2개 이내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유족, “갑질 해명 받아들이기 어려워” 

관악사의 해명과 반박에도 유족과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 14일 유족은 『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관악사의 해명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전했다. 필기시험이 직무와 관련된 진단고사였다는 A 씨의 해명에 대해 그는 “중국인 학생들에게 우리나라에서 쓰는 한문을 보여줘도 이해하지 못하고, 중국에서는 생활관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필기시험 및 복장 조치와 관련해 인사상 불이익이 없었다는 A 씨 주장에 대해서는 “인사권이 없더라도 재배치권은 있을 것”이라며 “청소노동자들은 더 힘든 생활관으로 보내질까 봐 두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충현 행정실장은 “생활관 자체직원 인사권은 관악사 관장에게 있으며, 근무지 재배치권은 인사권에 포함된다”라고 해명했다.

유족 측은 업무량에 대한 관악사의 해명도 재반박했다. 그는 “관악사의 해명은 방학 기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기에 평소보다 쓰레기가 적게 발생했을 수 있다”라며 “고인이 근무할 시기에는 쓰레기봉투가 6~7개 나왔다는 증언이 맞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8일 오세정 총장의 직권으로 학내 인권센터에서 갑질 여부를 조사 중이지만, 그는 “인권센터를 신뢰하지 않는다”라며 인권센터의 조사를 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정부 기관에 의뢰하는 편이 더 공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학내 노동자에 대한 근본적인 처우 개선이 필요해

현재 청소노동자 갑질 의혹에 대해 노조와 관악사의 의견이 갈리고 있는 만큼, 서울대 인권센터뿐 아니라 고용노동부에서도 갑질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다만 갑질 의혹과 별개로, 현재 학내 노동자의 노동환경이 과연 쾌적한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고인이 근무했던 925동 기숙사는 업무 강도가 높기로 유명했다. 오래된 건물이라 청소를 해도 티가 나지 않고, 엘리베이터도 없어 늘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심지어 높은 업무 강도 때문에 보직 순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청소노동자 D 씨는 “많은 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925동이 제일 힘들다”라며 “1년에 한 번씩만 보직을 바꿔줘도 괜찮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아 고인은 925동에서 1년 6개월을 일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유족 역시 “925동이 오래된 건물이라 청소해도 티가 안 난다며 고인이 속상해했다”라며 “고인이 925동 근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관리자 역시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라고 토로했다.

노동환경이 열악했던 건 925동뿐만이 아니었다. 가족생활관에서 근무했었던 노동자들은 해당 생활관의 휴게실 사용이 어려웠음을 토로했다. D 씨는 “고인도 가족생활관으로 보직을 바꾸려고 한 적이 있으나 가족생활관이 너무 불편하다는 청소노동자의 말을 듣고 단념했다”라고 말했다. A 씨 역시 “가족생활관 호실 하나를 관리사무실로 두고 경비원이 일하고 있다”라며 “그 안쪽에 방과 화장실이 있는데 남자 경비원이 근무하고 있으니 청소노동자가 휴식을 취하기에 불편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 이후 학내에서는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21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연석회의)는 ‘학교는 청소노동자 죽음 외면 말고 근무환경 개선하라’라는 성명문을 냈다. 연석회의는 성명문에서 “925동에 거주하는 학생 수, 동 규모, 동 시설을 고려할 때 비상식적인 업무량이 부과되고 있음에도 학교는 무관심했다”라며 “본부는 노동자들의 처우에 관심을 가지고 노동자들이 갖는 문제를 개선해나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비서공·노조 서울대 시설분회 역시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그들은 성명문에서 “인간다운 노동환경을 위한 노동자들의 인력 충원 요구는 번번이 무시됐다”라며 “노동자의 인간다운 처우 보장을 위해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 총장은 산재 신청에 적극 협조하고 청소노동자들의 의견을 경청해 부족한 점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9년 청소노동자가 사망했을 당시에도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휴게실 전수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노동 문제를 본질적으로 파악하지 않은 채 눈에 보이는 문제만 사후적으로 조치해서는 안 된다.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노동환경 실태를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이와 같은 비극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 본부는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면밀히 조사하고, 노동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

 

사진: 이호은 기자 hosilver@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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