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 김월회 인문대 교수ㆍ중어중문학과

연초에 성룡이 주연한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보았다. 아무래도 쥘 베른(Jules Verne)의 동명소설 『Re tour de monde en 80jours』를 재해석하기에는 성룡의 나이가 너무 많았던 듯 싶다. 현저하게 무뎌진 성룡표 액션. 짠해지는 맘을 감출 길이 없었는데, 뜻밖에도 영화의 허술한 재구성이 오히려 원작의 맛과 의미를 되짚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확실치 않지만,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처음 접한 것은 TV에서 방영된 영화를 통해서였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큰 아들녀석 나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으레 그런 것처럼, 나 역시 우리의 착한 주인공이 ‘나쁜 놈’들의 방해를 뚫고, 과연 내기에서 이길 것인가 말 것인가에 맘 졸이면서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그리고 책을 접했던 것은 더욱 기억나지 않는 한참 후의 언제쯤이었다. 80일간의 세계일주를 가능케 해준 철도니 증기선이니 하는 것들이 다 근대문명의 상징이요, 주인공이 한바퀴 돈 지역이 당시 유럽인이 생각하는 세계의 전부였다는 설명을 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한 마디로 단순한 공상과학소설도,탐험소설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이 책을 뜻하지도 않게 다시 보게 되었다. 신작 영화를 소개하는 TV 프로를 보던 큰 아이가 느닷없이 이 책을 사달라고 하였다. 성룡이 자기 나름대로 각색한 영화의 장면을 보고는 호기심이 생긴 듯 싶었다. 순간 “네가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저 옛날 나 역시 호기심에서 읽었던 기억이 새로워 선뜻 사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받아본 산뜻한 느낌의 완역본. 까닭 모를 설레임에 휩싸여 단숨에 읽어 제쳤다. 간간이 실려 있는 삽화는 어린 시절 TV에서 본 영상 그 자체인 듯했다. 오랜만에 빠져본 순수 취미의 시간, 막장을 넘기고 나서는 뿌듯하기조차 했다. 게다가 기억 저편에서 길어낸 해묵은 수수께끼까지.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는 몇 밤 잤게?”

그랬던 것 같다. 이 소설을 다 읽고 갸우뚱댔던 것은 79와 80 사이의 헷갈림이었다. 포그 아저씨는 분명 80번째 아침을 맞이했기 때문에 내기에서 졌다고 생각했을 터인데, 왜 영국의 왕립과학협회 아저씨들은 79번째라고 우겼던 것일까? 여행 동안 분명 80번의 아침해를 맞이했을 포그 아저씨가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 맘씨 착한 멋쟁이 아저씨가?

주인공에 대한 윤리학적 선입견을 벗겨낸 지금에도 이 수수께끼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포그는 철도와 윤선 같은 과학의 이기를 이용하여 당시로서는 몽상에 불과했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너끈히 해치웠다. 새로운 과학문명의 영웅 포그! 그러나 그는 내기에 이기기 위해 자신의 체험을 과학화된 수치에 저당잡힌다. 사람의 체험보다도 과학적인 원리가 승패의 관건이 되는 세상. 동쪽으로 돌기만 하면 80일에 하루씩을 아껴 불로장생도 가능해질 수 있는 세상. ‘지금-여기’의 생생한 삶의 현장보다도 몸에 밴 습속과 주입된 사고가 우선하는 세상. 과학문명에 충실할수록 삶에서 멀어지는 슬픈 근대…….

책을 사준 지 며칠 후, 아내로부터 아이가 진작에 다 읽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넌지시 물어보았다. 책을 읽은 소감이 어떠냐고. 뭐, 큰 기대를 하고 물은 것도 아니었지만, 큰 녀석은 무진장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재미있었어.” 순간 직업병이 발동했다. 아이의 주의를 환기하며, “이 소설은 말이지, 음, 이러이러한 문명사적 전환을 묘사한 굉장히 중요한 책이란다. 그러니까 말이야....” 아이가 말한다. “어? 아빠도 읽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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