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문화 | 서울대 미술관 기획전 〈푸른 유리구슬 소리: 인류세 시대를 애도하기〉 리뷰

지난달 8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서울대 미술관(151동)에서 기획전 〈푸른 유리구슬 소리: 인류세 시대를 애도하기〉가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12명의 작가가 참여한 8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으며, 인간 중심주의로 인해 변해버린 지구를 주제로 인류에 의해 파괴된 현장의 역사를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해 기획됐다. 미술관 조나현 학예연구사는 “과학자들이 구체적인 통계와 수치로 환경 위기를 말한다면, 예술가들은 미술 작품을 통한 감성적 울림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푸른 유리구슬이 마주한 ‘인류세’= 지질학적 시대 구분에 따르면, 21세기 인류는 신생대 제4기의 마지막 ‘세(世)’인 홀로세(Holocene)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을 필두로 한 일부 과학자들은, 1950년대를 기점으로 인류 문명에 의한 온실가스 분출과 생물 대멸종 등으로 지구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인류가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 시점부터를 별개의 지질 시대인 ‘인류세(Anthropocene)’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예술가들은 학자, 정치가 등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는 다른 관점과 방식으로 인류세 시대 생태적 위기에 관해 발언한다.

전시를 통해 작가들은 자연의 숭고함과 에너지를 보여주면서도 파괴된 환경을 묘사하며 인류세 시대 지구의 현실을 애도한다.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입구에서부터 미세한 떨림을 띤, 무언가 흐르는 소리가 관람객의 귀에 들어온다. 2층에 설치된 구은정 작가의 〈뜻밖의 궤도〉다. 이 작품은 작가가 베트남 무이네의 사막 지대를 여행하며 느꼈던 감정과 과거의 기억들이 서로 공명하며 떠오르는 감정을 표현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작품 퍼포먼스는 취소됐지만, 녹음된 소리는 인간을 둘러싼 자연과 사물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소리로 치환된 지구의 변화는 관람객들에게 새삼 자연의 오묘함을 느끼게 해준다.

 

강주리 작가, 〈Chaos〉
강주리 작가, 〈Chaos〉

 

◇‘인위(人爲)’의 자연, 변화하는 환경= 전시장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 전시 공간 한 편을 채우고 있는, 동굴 속의 종유석 같은 기괴한 형상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작품 가까이에서 종이에 펜으로 그려진 작품의 구성 요소를 하나하나 바라보다 보면, 관람객은 이내 그 기이함에 탄식하게 된다. 용이한 운반을 위해 유전자 조작된 네모난 오이, 선물용으로 디자인된 하트 모양의 귤, 눈이 하나인 원숭이, 머리가 두 개인 뱀과 같이 인위적으로 변형된 자연물은 불규칙하게 얽히고설켜 작품의 제목인 〈Chaos〉처럼 혼돈의 생태계를 이룬다. 강주리 작가는 〈Chaos〉를 통해 우리 주변에 존재하나 애써 외면해왔던,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변형된 자연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듯 자연을 자신의 입맛대로 이용하려는 인간도 그 과정에서 환경이 파괴되는 것은 막지 못했다. 빙하 이미지를 벽화로 그려낸 뒤 지우는 일을 반복하는 허윤희 작가의 영상 퍼포먼스는 인간의 영향으로 인해 사라지고 훼손돼가는 자연을 애도한다. 조나현 학예사는 “애도의 대상은 더 이상 새가 울지 않는 숲, 사라진 강, 귀뚜라미 소리가 끊긴 가을과 미세 먼지로 사라진 파란 하늘”이라며 진실에 대해 등을 돌리는 순간, 훼손된 자연은 우리의 손을 떠난다고 강조했다.

 

◇변화를 목도한 인류에 호소하다= 한편 조나현 학예사는 “야생 동물 서식지의 파괴와 빙하의 소멸은 인류가 새로운 바이러스에 계속 노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라며 “세계는 코로나19의 발발 이후 변해버린 지구에 더욱 주목하게 됐다”라고 말한다. 전시관 밖 벽면을 크게 채우는 지알원 작가의 그라피티 작품 〈2020〉은 지난해부터 인류가 맞이한 새로운 현실을 보여준다. 비단 마스크와 함께하게 된 삶뿐 아니라, 전염병에 대한 불안감, 타인에 대한 배척과 그로 인해 생기는 고독감을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거대하고 꿈쩍하지 않을 것 같던 사회도 흔들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전시는 우리가 당연시하던 가치들이 전복되고, 폐쇄와 거리두기가 자신과 남을 위하는 가치로 바뀌어버린 지금이야말로 모두가 공존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순간임을 드러내고 있다.

 

조나현 학예사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논쟁적이거나 비판적으로 발언하기보다는, 자연의 숭고함을 제시하고 파괴가 빈번한 현상을 애도하며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시 관람을 통해 이런 작가들의 목소리를 듣고 더 나아가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 장재원 기자 jaewon0620@snu 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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