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앞으로의 미래는?

지난 15일(일)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에 항복을 선언하며 2001년 이후 20여 년 만에 탈레반이 아프간 권력을 재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7월 초 미군이 아프간 내 최대 군사 기지인 바그람 공군 기지에서 전격 철수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아프간 정부는 완전히 붕괴하고 말았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한 직후 아프간 전역에서 출국하려는 인파가 몰리며 카불 국제공항은 아수라장이 됐다. 미국 대외 개입 실패의 대명사인 1975년 ‘사이공 탈출’이 46년 만에 반복되는 순간이었다.

 

◇미국은 왜 실패했나= 2001년 9·11 테러의 주동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간에 은신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미국은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 신병 인도를 요구했다. 탈레반이 이를 거부하자 미국은 곧장 다국적군을 조직해 아프간 침공에 나섰다. 개전 후 불과 한 달 만에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음에도 아프간 전쟁은 20년간 지속되며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으로 기록됐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위해 아프간 주둔군을 감축하며 탈레반이 산악 지대로 이동할 여지를 줬고, 새롭게 수립된 아프간 정부가 지방 장악에 어려움을 겪는 틈을 타 탈레반이 다시 세력을 불렸기 때문이다. 이웅현 교수(고려대 융합연구원)는 “다민족 사회인 아프간은 전통적으로 민족의 자율성이 강조돼 중앙 권력이 지방 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라며 “아프간 정부가 무너지기 전부터 지방의 상당 지역은 탈레반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아프간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몰이해도 전쟁 장기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박태균 교수(국제대학원)는 “미국이 탈레반과 이슬람을 객관적으로 이해했는지 의문”이라며 “테러 조직 소탕을 위해 직접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대신 탈레반 정부와 테러 세력을 분리하는 데 집중하면 됐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과거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를 오해해 베트남 전쟁이 발생했듯 아프간 전쟁에서도 미국의 부실한 인류학·지정학적 이해가 불필요한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아프간 침공 이후 정부 수립 과정에서도 변수가 됐다. 유달승 교수(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는 “미국은 아프간인을 위한 아프간 정부가 아닌 자국을 위한 친미 정부를 건설했다”라며 “강력한 친미 중앙 정부를 수립하면 아프간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탈레반의 주요 지지층인 파슈툰인 외에도 타지크인, 우즈베크인, 투르크멘인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아프간의 특수성을 간과하며 전국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부가 수립됐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한화 2,000조 원을 상회하는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을 지출하며 대규모 병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2011년 파키스탄에서 미군 특수부대가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며 전쟁을 지속할 명분이 사라졌고, 대내적으로도 상황이 급변하며 미국은 출구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장지향 선임연구위원은 “장기간 지속된 전쟁으로 미국 국내 여론이 크게 악화했다”라며 “참전 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비롯해 미국 사회의 전쟁 피로감이 심하게 누적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장 연구위원은 “미국이 셰일가스 혁명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되면서 중동 지역의 전략적 중요도가 낮아졌다”라며 철군의 배경을 짚었다.

 

◇탈레반의 온건화는 가능할까= 과거 이슬람 극단주의에 기반한 ‘샤리아 법’ 통치로 악명을 떨친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장악하며 아프간 내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 사회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탈레반은 변화를 약속하며 극단주의와 거리를 두고 있다. 다만 이것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지에 관해서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이웅현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혼란 통제를 위한 공포 통치를 펼쳐도, 탈레반 내에서 세대 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변화할 것”이라며 “외국군 철군을 이끌어 낸 탈레반 온건파가 영향력을 확대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유달승 교수 역시 “아프간 재건을 위한 국제 사회의 지원을 받기 위해 탈레반이 다양한 정파가 참여한 개방적 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예측했다. 

반면 박현도 교수(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는 “국제사회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겉으로만 변화를 외칠 뿐, 탈레반이 극단주의 종교관을 버리지 않는 이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전망했다. 이어서 “새 정부 구성원으로 하마평에 오른 인물 중 테러리스트도 포함됐다”라며 “새로운 정부 구성에 기대할 부분이 거의 없다”라고 지적했다. 장지향 연구위원도 “설사 탈레반 수뇌부가 온건 정책을 펼친다 해도 하부 조직원들이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탈레반 재집권 그 이후= 탈레반이 카불을 비롯해 아프간 국토 대부분을 장악하고 정부 수립까지 선포한 상황이지만, 아프간 전역이 빠른 시일 내에 안정화될지는 미지수다. 장지향 연구위원은 “탈레반에 대한 항전을 선언한 구 북부동맹 세력의 전력이 상당하다”라며 “아프간이 내전으로 돌입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특히 혼란을 틈타 아프간이 테러 세력의 각축장이 될 우려가 있다. 장 연구위원은 “아프간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도피처로 인식되며 알 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 세력이 집결하고 있다”라며 “근본주의 세력 간의 암투가 예상된다”라고 설명했다. 20여 년간 서구식 자유주의를 경험한 도시 지역 청년 세대도 변수다. 탈레반이 억압적 통치로 회귀한다면 이들의 집단적 반발이 예상된다.

국제정치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아프간 철군은 미국이 중국 견제에 집중하며 대외 정책의 중심축을 중동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옮기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당장은 미국의 실패를 반길 중국과 러시아도 아프간의 혼란이 신장 위구르 지역이나 중앙아시아 일대의 이슬람 세력으로 전이되는 것을 경계할 것으로 보인다. 이웅현 교수는 “장기적으로 국제사회가 탈레반 정부를 승인할 것”이라며 “탈레반과 주요국 정부 모두 강경 대치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아프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고려하면 서방과 중국, 러시아 모두 안정을 추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단순한 선악 구분에 기반해서는 아프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아프간의 역사, 문화, 민족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한다. 유달승 교수는 “탈레반의 부상은 아프간의 비극적 역사를 단적으로 반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눈에는 그저 테러집단으로 보이는 탈레반이 왜 아프간 농촌 지역에서는 지지를 받았는지, 누가 진정 아프간을 혼란으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조심스러운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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