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타인을 대상화하는 인간』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존 M. 렉터

448쪽

교유서가

2021년 5월 17일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은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이 행하는 무자비한 폭력에 짓밟히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아프간 국민들의 상황에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진정으로 분노하고 있는가? 마음 한편으로 ‘나는 저런 상황에 없다’라는 사실을 황홀하게 자각하며 안심하고 있지 않는가. 혹은 본인과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다며 뉴스 채널을 돌려버리는 ‘일상적 무관심’에 빠져있지 않는가.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의 저자 존 M. 렉터는 이런 심리를 ‘대상화’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대상화란 타인을 공경받아야 마땅한 주체가 아닌 사물로 인식하는 현상으로, 다시 말해 타인을 실제보다 부족한 존재로 여기고 그 주체성을 오해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오해의 수준에 따라 대상화의 스펙트럼을 세 개로 나눈다.

 

타인의 고통을 쉽게 망각하는 ‘일상적 무관심’

오해의 최저점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하는 ‘일상적 무관심’이 있다. 자신과 타인 간의 정서적 유대감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타인의 고통을 알게 됐을 때 겉으로 드러나는 정서적 불편함이 미미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저자는 “일상적이라는 말은 어떤 개인이 대상화 스펙트럼의 최저점에 놓여있을 때 타인에게 잔인하게 굴거나 실제적인 해를 끼치려는 의도가 없음을 암시한다”라며 일상적 무관심은 주로 직접적 폭력이 아닌 ‘무행동’으로 발현된다고 설명한다. 일례로 그는 ‘절대 부유층’*에 속한 사람들은 절대 빈곤층이 최소 수백만 명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해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경우 절대 빈곤에 처한 이들과 이들의 삶을 통해 대변되는 지속적인 시련은 우리에게 ‘실제’가 아니거나 구체적인 도움을 이끌어낼 정도로 사적이지 않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폭력에 대한 무관심과 상대적 안도감도 결국은 대상화에 속한다.

 

악에 한층 더 가까이, ‘유도체화’와 ‘비인간화’

반면 오해의 최고점에는 ‘비인간화’가 있고, ‘비인간화’와 ‘일상적 무관심’ 사이에는 넓은 중간지대인 ‘유도체화’(derivatization)가 있다. 비인간화는 가장 극단적인 수준의 대상화로, 사람이 의도적이고 냉담하게 악행을 저지르게 하는 핵심적인 과정이다. 비인간화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 확신하는 정신적 행위를 동반한다. 저자는 “나치의 관점에서 볼 때 유대인은 단순한 비인간이 아닌 인간의 형태를 한 ‘해충’이었다”라고 비인간화를 예증한다. 

유도체화는 타인을 특정 목적으로만 바라보고, 자신보다 낮은 존재의 인간으로 깎아내리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성적 대상화가 있는데, 여기서 성희롱당하는 대상들은 유도체화하는 주체의 유희를 위한 존재로 전락한다. 이 과정에서 유도체화된 대상을 구성하는 주체성은 경시된다. 유도체화가 극단적으로 발현될 경우, 피해자의 인간성을 인식하면서도 고문이나 제노사이드*에 가까운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

책에서는 대상화에 기여하는 기질적 요인, 상황적 요인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기질적 요인으로는 언어, 나와 타인을 경계 짓는 인간의 자아 인식, 죽음의 부정 등이 있다. 상황적 요인으로는 집단 내 개인의 대상화 강화, 밀그램의 복종 실험 및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으로 파악되는 ‘역할’의 타락 효과 등이 제시된다. 이런 요인들에 의해 대상화는 인간이 쉽게 행하고 당할 수 있는 심리적 현상이 된다.

 

오해에서 벗어나 깨달음으로 가는 길

이에 저자는 ‘대상화’라는 오해의 시선을 거두고 ‘깨달음’이라는 고양된 인식의 스펙트럼으로 넘어갈 것을 제안한다. 대상화 경향을 줄이는 것은 플라톤의 동굴을 탈출하는 것으로 비유된다. 동굴에 비친 사물의 그림자를 사물 자체라고 착각하는 것은 일종의 ‘오해’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림자가 실제가 아님을 알기 위해서는 동굴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대상화를 극복하는 것은 이 탈출과 같다는 뜻이다.

또한 저자는 대상화에서 벗어나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류 전체, 더 나아가 지구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최근 이런 사실을 학자와 시민들이 인식해 평화에 대한 다양한 고민이 진행되는 중이라고 봤다. 저자는 “인류가 처한 문제들에 대해 모두가 합의하게 되는 날은 아직 요원하지만, 이 같은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좋은 징조이다”라며 개인의 작은 변화가 모여 결국 폭력의 종언을 가져올 것이라는 이상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이 책은 악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보다는 악의 근원에 관한 이해와 해결 가능성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담았다. 대상화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는 태도는 독자의 몫이다.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폭력에 대한 무관심과 안도감도 결국은 대상화에 속한다. 날마다 새로운 폭력이 발생하는 어지러운 지구에서, 우리는 먼 나라의 시민이라는 이유로 일상적 무관심에 빠져있진 않는가. 자기도 모르게 악에 관대해지는 순간부터 악의 근원적 예방과 해결은 어려워진다.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는 잔인함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독자에게 일침을 가하며, 삶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가져다준다.

 

*절대 부유층: 필수품이 아닌 용역과 재화에 돈을 쓸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부유한 계층

*제노사이드(genocide):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나 일부를 제거하는 집단 학살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