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된다는 것, 사회 안에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것
‘사람’이 된다는 것, 사회 안에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것
  • 서윤 기자
  • 승인 2021.08.29 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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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책 | 『사람, 장소, 환대』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297쪽

문학과지성사

2015년 3월 31일

 

 

지난 15일(일)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의해 점령됐다. 이에 따라 아프간 난민 수용 문제가 국제적 의제로 떠오르며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인권 수호 측면에서 아프간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반대와 혐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김현경 작가의 책 『사람, 장소, 환대』는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타인에 대한 환대와 혐오, 그 사이 어느 지점에 서 있을 대다수 이들에게 환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개념적 틀을 제시한다.

 

사회적 성원권이란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권리, 즉 ‘사회적 성원권’은 법적 지위와 구별된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한 이주자가 시민권을 획득해 법적으로 한 나라의 국민이 되더라도 온전히 그 나라의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경험을 반복해서 겪는다면, 그는 완전한 사회적 성원권을 보장받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저자는 “사회적 성원권이란 상호작용 의례 속에서 끊임없이 확인받는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환대와 사회적 성원권의 인정은 별개의 문제일까? 저자는 그 구별을 부정한다. 외국인에 대한 환대와 외국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을 구별하면 그 환대는 ‘조건부’ 환대가 돼 버리기 때문이다. 즉 저자에 따르면 그들이 이상적인 외국인 이미지가 아니라 가난하고, 교양도 없고, 일자리를 빼앗고, 여자들을 건드린다면 환대는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니기에 다르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은, 외국인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에게는 그가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불안정한 성원권 지대는 사회 내부에도 존재한다

환대에 대한 논의는 비단 사회 외부에서 온 이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는 “사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자리가 조건부로 주어지는 한, 환대의 문제를 겪는다”라고 말한다. 개인은 상호작용 의례 상황에서 타인이 자신을 사람으로 대접해주기를 기대하고, 또 그들 스스로도 다른 개인의 사람다움을 확인해 줄 의무를 갖는다. 우리는 상대방이 우리에게 존중의 언어를 써 주길 바라고, 상대방에게 애 취급을 받지 않으며 하대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꼰대’와 ‘갑질’에 민감한 우리의 모습은 이를 방증한다. 의례를 준수하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기에, 의례적 의무의 위반은 인격에 대한 모욕, 즉 상대방의 성원 자격을 위협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독자가 현대 사회에서 낙인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놓인 불안정한 성원권 지대를 목도하게 한다. 저자는 신체적·정신적 결함, 특정한 종교와 민족에 속한다는 사실 등이 현대 사회에서 낙인으로 취급되는 속성이라고 제시하며, 이들은 특정한 행동 노선을 따르지 않으면 의례 교환에서 배제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이들이 갖고 있는 신체적 한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곳에 오지 않길 바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들에 대한 관용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 불편함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낙인 찍힌 이들은 정상인의 심리적 불편감을 초래하지 않도록 어떤 이미지 안에 머무르도록 요구받으며, 그렇게 할 때만 성원권의 지대로 나올 수 있으므로 이들의 성원권은 불안정하다. 불안정한 성원권 지대를 만들어내는 또 다른 핵심 요소는 경제력이다. 특히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가족’에서 소위 ‘가장’에게 전적으로 경제 활동에 대한 위임이 이뤄진 경우, 나머지 구성원들의 성원권이 일정 부분 부양자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

 

절대적 환대를 주장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의 인격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금지되기에 우리는 ‘예의 바른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모욕은 없어졌어도 모욕의 자리를 굴욕이 대신하고 있다. 저자는 “모욕에는 가해자가 있지만, 굴욕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라며 “모든 사람이 서로 예의 바르게 행동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굴욕을 느낄 수 있다”라고 말한다. 예고 없이 실직을 당할 때, 일한 대가가 터무니없이 적을 때, 아무리 절약해도 반지하 셋방을 벗어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누구도 고의로 그런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닌데도 굴욕을 느낀다. 명시적인 가해자가 없기 때문에 그런 굴욕의 발생 원인이 굴욕을 겪는 사람들에게 전가되는 문제에 대해, 저자는 개인들이 사회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는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지 말 것을 지적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아Q정전』의 ‘아큐식 정신승리법’을 장소 상실(placelessness)의 해결책으로 내세우지 않는 데 있다. 장소 상실의 문제를 언제 어디서 침범당할지 모르는 사적 공간으로의 침잠(沈潛)이라는, 일종의 정신승리를 통해 해결하라는 식의 방법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사적인 공간에 대한 공적인 인정이 있어야 프라이버시도 지켜질 수 있는 것이라며, 저자는 공공성의 힘으로 불안정한 성원권 지대가 아닌 절대 빼앗길 수 없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전체 논의의 종착점인 ‘절대적 환대’다.

 

지금도 장소를 지키기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난민들은 죽음을 무릅쓰며 국경을 넘고, 구조 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농성을 벌인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도 절대적 환대를 통해 사회 안에 마련된 자리임을 안다면, 우리 역시도 존재를 부정당할 위협에 노출된 사람들의 자리를 마련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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