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대 신재용 교수
경영대 신재용 교수

대학교수의 특권은 직업상 젊은이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좋은 연구 환경을 가진 미국 대학을 마다하고 제자 키우는 재미를 위해 10여 년 전에 한국 대학으로 왔다. 학부생들과는 수업 이외에 만나기 힘들지만, 석박사 지도 학생들과는 논문 작업을 같이하며 토론과 대화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지도 학생이 많아지면서 선생의 역할을 넘어 리더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가끔 생기고 “좋은 리더가 돼야겠다” “좋은 리더가 과연 뭘까”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요즘은 학업을 계속하려는 학생이 전처럼 많지 않아서 좋은 학생을 유치하려면 교수도 연구성과는 물론 인간적으로 학생에게 어필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위기감과 계산도 한몫한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 많은 훌륭한 연구자를 만났다. 그들을 벤치마킹하고 패스트 팔로잉하다 보니 어쩌다 해외 학술지 에디터까지 됐다. 그런데 연구는 벤치마킹으로 성장해왔는데 좋은 리더는 누구를 벤치마킹해야 하는지 도통 헷갈렸다. 학문적·인격적으로 훌륭한 교수님이 많았지만, 교수님들께서 학생들에게 하는 조언은 보통 “남들이 뭐라 하던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혹은 “모든 연구를 탑 저널에 싣는다는 각오로 해라” 같은 말씀이다. 매우 맞는 말씀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는 학생 입장에서 즉각 도움이 되는 조언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게다가 어느 학교나 교수님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분보다는 자기 얘기를 주로 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 학교 식당의 흔한 풍경은 얘기하는 교수와 듣고 있는 학생들이다.

나는 좀 달라지고 싶었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제자들에게 솔직하고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벤치마킹할 리더십 롤모델이 필요했지만, 주변과 사회를 아무리 봐도 벤치마킹하고 싶은 사람은 잘 안 보였다. 그러다 지난 4월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여러 언론에서 앞다투어 내놓은 그에 관한 많은 기사를 읽으며 인간 윤여정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요점은 윤여정이 솔직하면서도 매사 치열한 프로 정신으로 무장하고 최선을 다하는 ‘찐어른’이며 젊은이와의 도전과 소통을 즐긴다는 것이다. 솔깃해서 더 많은 기사를 찾아 읽어봤다.『동아일보』4월 28일 자 기사에서는 윤여정의 장점을 솔직함, 배려심, 책임감, 도전정신, 소통, 자신감으로 구분하고 각각 윤여정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녀의 말 하나하나를 보고 난 이부터 윤여정을 롤모델로 삼기로 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른이라고 해서 꼭 배울 게 있느냐?” “저희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요리한 친구들이 최선을 다했다.” “내 마음대로 하는 환경에서 일하면 괴물이 될 수 있다.” 그의 말을 모두 거꾸로 해보면 젊은이들이 몸서리치는 자기가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 즉 ‘꼰대’가 된다. 윤여정은 그의 나이로, 경력으로, 업적으로 대우받으려고 하지 않았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후배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공은 그들에게 돌리면서도, 필요할 때는 솔직하지만 뻔하지 않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며 진심 어린 조언을 눈치 보지 않고 전했다.

베이비부머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인 1970년대 중후반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0~15%였다. X세대인 필자가 대학을 졸업한 1994년의 성장률은 9.3%였다. MZ세대의 선두인 1980년대 중반 출생자가 대학을 졸업한 2008년 이후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은 단 한 해를 제외하고 3%를 넘은 적이 없다. 잘되기보다는 잘 안될 확률이 더 높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책에 열광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원하는 어른은 ‘하면 된다, 꿈은 이뤄진다’는 어른들도 아니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어른들도 아니다. 선배들보다 몇 배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시대를 잘못 만나 고생하고 있는 MZ세대 젊은이들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자. 윤여정같이 인생 여정을 보면 그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는 그런 어른이 ‘찐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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