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 건축학과 석사과정
김민지 건축학과 석사과정

대한민국 사회에서 청소노동자는 약 40만 명으로 집계된다. 직업 인구수 기준 11위로 청소노동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노동직군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청소노동자들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고 있다. 그들을 위한 휴게 공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있어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열악한 곳에 만들어져 왔다. 청소노동자들은 ‘유령’처럼 일 하고 ‘유령’처럼 존재하며, 어느새 스스로를 ‘유령 같다’라고 정체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 속 비가시성과 열악한 휴게 공간, 그리고 노동 환경은 청소노동자들의 인간다움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2019년 8월 9일 낮 12시 30분경 제2공학관(302동) 건물에서 청소노동자 한 분이 휴식을 위해 잠시 눈을 붙였다가 열악한 휴게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8천 평이 넘는 거대한 학교 안에 청소노동자에게 허락된 휴게 공간은 계단 아래에 조성된 3.52제곱미터(약 1.06평)의 간이 공간이 전부였다. 그곳은 폭염을 피할 에어컨은 커녕 창문 하나 없어 매우 답답했고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또 다른 청소노동자가 관악학생생활관 925동 휴게실에서 돌아가셨다. 2년 전 사망 사건이 있었던 제2공학관에서 불과 1.4km 떨어진 곳이었다. 토요일 오전 업무를 마친 후 휴식을 취하다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은 196명 정원의 925동을 혼자 청소하셨기 때문에 평소에도 업무강도가 매우 높았고, 과로가 축적된 상태였다고 한다. 또한 관리자에 의한 업무와 관련 없는 지시, 규정에 없는 평가-일명 ‘갑질’-로 인한 스트레스가 사망에 이르게 한 주요 원인으로 밝혀지고 있다.

학생과 교수를 포함한 대다수 건물 사용자들은 청소노동자들이 바로 옆에서 일하고 있어도 그들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사실, 청소노동자들 스스로도 건물 내에서 다른 사용자들의 눈에 잘 띄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다른 사용자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근무 시간도 이른 아침에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청소노동자들은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상징적’ 측면에서 비가시화 될 뿐만 아니라, ‘실제적’ 공간에서도 사라져 버린다. 즉, 청소노동자를 건물 내부에서도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곳에 배치하는 공간화 방식은 말 그대로 그들을 눈에 띄지 않게 만드는 물리적 장치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물질 및 존재가 가시적일 수는 없다. 동양 철학적 관점에서 음(陰)과 양(陽)이 존재하듯 인간 사회에도 명(明)과 암(暗)은 필연적으로 공존할 수밖에 없다. 다만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은 위계적인 것이 아닌, 음양처럼 관계하며 서로가 서로의 존재의 이유가 돼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미숙한 우리 사회의 구조 속에는 약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감춰’ 없는 존재로 만드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처럼 불평등을 지속적으로 양산하는 인간 사회의 행태를 우리 모두가 함께 되돌아봐야만 하지 않을까. 자칫 인간뿐만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고 있는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 존재들 또한 비가시화와 죽음으로 내몰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에는 약 390명의 청소노동자들이 대부분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의 형태로 일하고 있다. 청소노동자의 비가시적 노동 활동과 휴게 공간의 실태는 그동안 우리 모두가 같은 공간 내에서 공존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을 공간의 권리로부터 배제해 왔고, 그러한 공간 권리의 배제가 관계의 배제로까지 이어져 ‘죽음’이 아니고는 누구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현실을 확인하게 했다.

이제 우리는 이 사회가 어떻게 의도적으로 그들을 비가시화해 왔고, 불평등을 지속적이고 구조적으로 생산해 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러한 불평등이 더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낮은 임금, 고용 불안, 열악한 근로 조건의 개선’이 절실하고 청소노동자들의 휴식을 위한 권리 회복뿐만 아니라, 청소노동자들의 ‘가시화’와 ‘청소노동’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 등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공동체적 연대가 필요함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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