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채원 기자(사회문화부)
윤채원 기자(사회문화부)

당연히 대학원에 갈 줄로만 알았다. 당연히 유학도 가고, 박사 학위까지 따서 계속 철학을 공부하며 살 것으로 생각했다. 대학교에 가면 남자친구가 생긴다는 말처럼 내가 확고하게 설정해놓은 길, 망설임 없이 가게 될 길로 믿었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짠’하고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망설임은 생겨버렸다. 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현실이 아닌 진짜 현실의 벽을 마주한 것이다. 한순간 이런 생각을 했었다. ‘취업에 대해서는 너무 아무 생각 없이 철학과로 온 건가?’ 그리고 이 생각을 한 자신을 자각한 순간 어마어마한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배움에 있어서만은 좋아하는 걸 따라가자고 굳게 다짐했었던 나, ‘철학 그런 거 취업에 써먹지도 못할 텐데 뭐하러 가’라는 남들의 말에 대학은 취업 교육센터가 아니라며 반박하던 나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부랴부랴 SNS에 잊지 말자며 기록해놨던 글을 찾아 읽었다.

1학년 2학기, 그때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을 배우며 ‘그래 이거 재밌긴 한데, 어떻게 써먹는 걸까’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었다. 그러던 중 철학과 배정 면접을 봤고 교수님께 개인적 질문 하나를 할 기회가 생겼다. 철학과 교수님께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게 이상하겠지만 당시 나름의 치열한 고민이었던 터라 용기가 불쑥 찾아왔다. “철학을 배우다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회의감이 들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이렇게 여쭸다. 오래전에 봤던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 돌아왔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돼라”.

철학은 늘 인간을 고민한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등. 그런데 인간에 대한 답은 쉽게 나올 수가 없다. 애초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철학은 그를 알면서도 계속해서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아마도 이것이 다른 학문과 철학을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뉴턴의 이론은 이미 답이 내려져 끝이 났지만, 인간을 다루는 철학은 아직 질문이 무수히 남아 있어 답이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자기 확인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거쳐야 하며 철학을 공부하는 나는 그 모든 질문을 거쳐 갈 기회를 얻는다.

사실 제일 좋은 건 배부른 소크라테스다. 당연하다. 소크라테스인데 배가 부르기까지 하다니. 배부른 소크라테스를 최종 목표로 놓는다면 우선 배가 불러야 할까 아니면 우선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할까. 나는 당연히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먼저라 생각한다. 돼지가 소크라테스로 진화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배고팠다가 배불러지는 건 꽤 가능성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의 목표는 소크라테스 되기이며, 이렇게 철학 공부의 유용성에 대한 고민은 끝맺었다.

여전히 진로 고민은 남아 있지만, 철학과를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오히려 좋아하는 학문을 만족스럽게 배우며 인간에 대한 고민과 나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진로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나는 글 쓰는 것과 기획하는 것을 좋아하니 그런 쪽의 진로를 찾아보자 결정했고, 이번 방학에는 SNU CORE를 통해 방송국 인턴도 했으며 지금은 학보사에 들어와 첫 칼럼을 쓰고 있다. 여전히 대학원에 대한 열망은 존재한다. 그 열망을 좇기에는 역시 현실이 무섭고 준비가 안 돼 차마 선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잔존하는 열망은 내게 자꾸 꿈과 욕심을 심는다. 대학원에 간다면 나는 무엇을 연구할까? 유학 생활은 어떨까? 유학하러 간다면 어디로 갈까? 이제 곧 4학년임에도 결국 교환학생을 도전해보게 된 건 이 물음표들 때문이다.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된다는 건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철학의 질문들과 물음표들을 이어나가 진로에서도 삶 자체에서도 내가 인정할 만한 답을 내놓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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