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인공지능의 창조성과 권리

지난달 25일 출판사 ‘파람북’에서 국내 최초 인공지능(AI) 소설가 ‘비람풍’이 집필한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가 출간됐다. 소설의 기본 구성을 짜고 AI의 창작 과정을 감독한 김태연 ‘소설감독’은 비람풍에 과거 자신이 집필한 소설을 포함해 1,000권의 자료를 입력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AI가 활동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10월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432,000달러에 낙찰된 〈에드몽 드 벨라미의 초상〉(Portrait of Edmond de Belamy)이 프랑스 AI 화가 ‘오비어스’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AI가 수행하는 예술 활동의 수준이 날로 높아짐에 따라, AI의 작품은 창작물이 될 수 있는지, AI의 문화예술 작품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등 쉬이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나오고 있다. 『대학신문』은 지난 4일(토) 지식재산의 날을 맞아, AI의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 규정·보호되고 있는지 알아봤다.

 

창조적인 AI?

AI의 문화예술 활동을 독자적인 창작물로 볼 수 있는지, AI를 예술 창작의 주체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하기 전, 창조성과 창작의 개념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허원기 강사(철학과)는 “과학철학 내에서도 대다수가 동의할 만한 정의를 찾기 어려우나, 누군가가 창조성을 발휘했다는 것은 그가 이뤄낸 결과물이 새로울 뿐만 아니라 중요한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음을 뜻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알파고-이세돌 대국에서 알파고의 2국 37수는 인간 바둑기사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결과물이자, 대국의 승리에 크게 기여한 성공적 문제 해결이었다”라며 “이런 사례는 AI도 창조성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밝혔다.

지식재산권 제도는 인간 중심의 보호 체계로, 창작·발명을 장려하고 창작물을 대중이 향수하기 위해 만들어졌기에 AI의 창작물은 현행법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정상조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창작의 개념을 ‘사상과 감정의 표현’이라 정의했을 때, 감정을 갖지 않는 주체가 작품을 제작했다고 해도 표현된 감정을 전달받는 수용자가 그 효과를 동등하게 느낀다면 법적 관점에서 그 작품은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 교수는 “현행 법령은 인간 중심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법 해석만으론 ‘AI 창작물’의 개념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라고 덧붙였다. AI는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패턴을 도출하는 기계적 알고리즘을 통해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고자 한다. 인간이 초상화를 그릴 때 특정인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한다면, AI는 초상화 수만 점을 학습해 초상화 구성 요소의 패턴을 파악한 뒤 그 패턴에 맞는 그림을 출력한다. 이렇듯 작품을 제작하는 절차가 인간과 상이하다는 점에서,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져 온 예술 활동의 개념을 AI의 창작물에 동등하게 적용할 수 있을지 모호해지게 된다.

 

AI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일 AI를 창작의 주체로 인정하게 된다면, AI 창작물에 대한 권리와 책임 소재에 관한 질문이 따라온다. 현행 민법은 사람과 물건을 구별해 법적 지위를 부과하고 있으며, 저작권법은 인간의 창작물만을 보호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AI를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진 법률이기 때문에, AI의 작품을 창작물로 볼 수 있는지, 그 권리는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명시돼 있지 않다. 정 교수는 “AI 창작물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는 법이 정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현재의 법이 불명확하지만, AI를 만들거나 보유하고 있는 개인 또는 기업이 저작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통설”이라고 설명했다.

법적인 모호함을 피하기 위해 AI의 창작 능력을 부정해버린다면, AI를 통한 창작은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고 이는 자칫 관련 기술의 개발을 억제하는 불합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손승우 원장은 “AI 성과물 보호의 목적은 초기 AI 산업 진흥이라는 목적과 함께 AI 성과물이 인간에게 이롭기 때문”이라며 “보호 수준이 ‘창작 AI 산업에 대한 투자 유인’을 위해 최소한의 필요 수준에서 설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강조했다. 손 원장은 “AI 지식재산의 과도한 보호를 방지하기 위해 AI 창작물 등록 시스템을 별도로 둘 필요가 있다”라며 AI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인간에게 주면서 보호의 수준도 현재 저작권 기준보다 느슨하게 책정해야 한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라고 전했다. 다만 특허 분야에서는 현재의 기술 수준을 고려했을 때, 인간의 개입 없이 AI가 스스로 발명을 진행하는 것이 어렵기에 AI를 발명자로 인정하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AI 저작권은 세계지적재산권기구 등의 국제기구에서 장기간 논의될 예정이기에, 짧은 시간동안 AI 창작물 보호 법제가 마련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AI 창작물 보호를 위해 기존 저작권법이나 특허법을 개정할지, 특별법을 제정할지 여부 역시 논의 진행 중이다. 한편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지난해 6월 ‘AI-지식재산 특별전문위원회’(AI 특위)를 출범시켜 인공지능 시대에 대응한 범정부 AI 지식재산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6월 AI 특위 2기가 출범해 AI 창작물의 제도화 방향 정립과 AI-지식재산권 신규 이슈 발굴을 핵심 과제로 연구하고 있다. 손 원장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시대는 AI 시대”라며 “AI 창작물을 보호하는 방안이 마련돼 AI 분야에 투자가 촉진된다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물론이고 소비자가 저렴한 비용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된다”라고 언급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AI의 활동이 활발해진 현시점에서, 우리는 AI가 수행하는 작업을 창작이라 정의할 수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던 창작에 다른 존재를 주체로 편입시키는 과정에 대한 불안감을 넘어,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발생 가능한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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