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택배 사업 내 불합리한 노동 구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총 21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다. 택배 노동자는 팬데믹 이전부터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택배 노동자의 위태로운 현실이 더욱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일부 기업과 여당이 ‘택배 노동자 과로사대책 위원회’(과로사대책위원회),‘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사회적 합의기구) 등을 꾸리며 노동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으나, 이는 시작점에 불과하다. 『대학신문』은 택배 노동자 과로사의 근본적인 원인과 제도 개선 상황을 점검하고, 여전히 변화가 필요한 점을 짚으며 노동자의 생명 가치를 되새기고자 한다.

 

늘어난 업무량과 침해된 노동자의 인권

물류 터미널에 물건이 도착하면 그날 다 배송한다는 ‘당일 배송’ 원칙은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택배 물량이 증가하면서 택배 노동자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켰다. 주어진 배송을 다 하지 못하면 일은 밤까지 이어졌다. 택배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노동자)기에 당일 배송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몸에 무리가 갈 때까지 일해도 최저임금 보장, 노동시간 제한 등과 같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게다가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일상의 본격화로 택배 물량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노동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강민욱 전국택배노동조합 교육선전국장은 “특히 10시 이후까지 일해야 하는 심야 노동은 택배 노동자의 건강권을 심하게 훼손시킨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쿠팡에서 과로사한 노동자 7명 중 3명이 심야 배송 중에, 나머지 4명은 야간근무 중 혹은 그 이후에 사망했다.

고질적인 내부 구조 문제도 과중한 업무에 한몫했다. 택배 노동자는 배송이 주 업무임에도, 택배사의 고용 비용을 줄이기 위해 물류센터의 상하차 분류 업무, 소위 ‘까대기 업무’를 전가 받아 공짜 노동을 해야 했다. 지난해 9월 과로사대책위원회에서 발표한 ‘택배 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의 1일당 주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이며, 그중 분류작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43%였다. 그러나 분류 작업은 택배 노동자의 주 업무인 배송에 포함되지 않아 건당 수수료를 받는 일도 아닐뿐더러, 지난해만 해도 분류작업에 대한 금액을 기업에서 금액을 따로 지불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몇 시간씩 일해도 대가를 받지 못했다. 강민욱 국장은 “이런 공짜 노동은 노동자에게는 법적 공백으로 인한 피해를, 택배사에는 수십 년간의 영업이익을 안겨줬다”라며 까대기 업무의 공짜 전가가 택배 산업 전반의 구조적인 병폐임을 토로했다.

이 같은 구조적인 요인으로 과로사가 발생했을 때 노동자가 보상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산업재해(산재)를 인정받는 것이다. 산재 처리 과정에서 기업은 주로 과로사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과로사대책위원회에서도 일하고 있는 강 국장은 “과로로 사망한 노동자의 주된 병명은 심정지, 심근경색 등이었는데, 사측은 이를 근거로 과로사가 아닌 단순 심혈관 질환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증언했다. 또한 택배 노동자와 계약을 한 대리점에서 산재 처리의 책임을 없애기 위해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대필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작년 10월 CJ 대한통운에서 일했던 김원종 택배 노동자 사망 당시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에 서명된 글씨는 그의 글씨체와 전혀 달랐다. 강민욱 국장은 “이후 그 대리점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확인해보니 서명 글씨체가 모두 같았다”라며 “근로복지공단에서 이를 확인하지 않고 승인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지난 1월 5일, 산업재해 보상보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 악용을 방지하고자 특수고용노동자에 한해 제외 신청 사유를 제한하게 됐다.

 

 

극적인 합의 성공, 아직 시작에 불과

택배 노동자의 노동 강도와 노동환경의 심각성을 실감한 정부와 여당은 올해 1월,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를 주축으로 정부, 업계, 노조가 함께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꾸렸다. 사회적 합의기구에서는 분류작업이 택배 회사의 책임임을 분명히 하고 분류 전담 인력을 투입하기로 협의하며 1차 합의를 끝맺었다. 이에 따라 설날 연휴를 기점으로 CJ 대한통운은 4천명, 한진·롯데는 1천 명의 분류인력을 투입했으며, 최대 작업시간은 주 60시간, 일 12시간으로 노동시간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과로사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한 참여연대 이조은 간사는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만 분류작업에 택배 노동자를 제외시키는 등 기업에서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례들이 속출했다”라며 “추가 투입된 분류인력은 충분치 않았으며, 합의 이후에도 과로사가 거듭 발생했다”라고 1차 합의 이후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6개월에 걸친 재합의를 통해 채택된 2차 합의문에서는 1차 합의문에 명기된 원칙의 구체적인 이행 시기를 분명히 함으로써 기업의 실질적 합의 이행을 약속했다.

우여곡절 끝에 최종 합의문이 채택되기는 했으나, 이는 사회적 합의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매우 극적인 해결로 평가된다. 사회적 합의의 중재자로 참여했던 우원식 의원은 “택배 노동자와 택배 회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합의해 사안을 해결한 것은 택배 산업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일 것”이라며 이번 사회적 합의의 의의를 강조했다. 그러나 사실 1차 합의 이후에도 노조의 불만이 계속된 것은 택배사 측의 소극적인 합의 이행과 교섭 태도의 영향이 크다. 이조은 간사는 “지금까지 CJ 같은 원청 사업체들은 택배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게 아닌 대리점과의 계약관계에 있을 뿐이라는 명목으로 노조와의 교섭 의무를 회피해왔다”라고 지적했다. 우원식 의원도 “택배 회사가 직접 테이블에 앉아 논의하기보다는 ‘한국통합물류협회’에 권한을 위임해 대변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하다 보니 불필요한 마찰과 애로사항이 많았다”라고 회상했다. 더불어 이 간사는 앞으로의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서는 기업이 택배 노조를 노조 자체로 인정하고, 사측과 노조 측의 직접적이고 원만한 교섭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2차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택배 기사의 근무 시간이 줄어듦에 따라 수입 보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쟁점이 택배사 측의 완강한 반대로 누락됐다. 수입 보전 주장은 택배 기사에게 돌아가는 건당 수수료가 지나치게 적다는 맥락에서 등장했다. 강민욱 국장은 1997년 IMF당시 재벌 기업들이 택배 산업에 뛰어들면서 택배 노동자가 건당 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노동자가 됐다고 말한다. 그는 “재벌 택배사가 다른 택배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저단가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라며 “낮은 건당 수수료가 택배 노동자들의 과도한 물량 경쟁으로 이어지고, 이는 과로사 문제로 직결된다”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부분은 합의와 더불어 택배 노동자를 포함한 특수고용노동자 관련 법제화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7월 27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생활물류서비스 산업발전법’(생활물류법)은 근로기준법의 직접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택배 노동자들이 부분적으로나마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법안에는 △표준 계약서 작성 권고 △택배 사업자와 종사자 간 계약 안정성 보장 △생활물류서비스 종사자 안전 확보를 위한 휴식 시간 및 휴식 공간 제공 △기상 악화 시 안전대책 마련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철수 교수(법학과)는 “생활 물류법 시행으로 택배 산업에 만연한 택배비의 전용을 막아 택배 노동자들에게 배달 수수료가 적정하게 책정될 법적 근거가 만들어졌다”라며 “고용 안정성과 택배·배달 종사자의 안전을 위해 휴식을 보장한 점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해결을 위해서는

합의문을 통해 택배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는 인정됐으나,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합의’에 불과하다. 최근 생활물류법이 나름의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의 해석상 생기는 법적 공백을 메꾸는 것이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근로기준법의 ‘근로자’ 판단기준의 현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철수 교수는 “법원에서 근로자 여부를 판단할 때 △사용자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고 있는지 △보수가 근로의 대가로서의 성격을 가지는지 △경제적·조직적 종속성을 가지는지 등의 판단 요소를 활용한다”라며 판단 요소에 관한 협소한 해석이 택배 노동자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결론을 낳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권오성 교수(성신여대 법학부)는 근로기준법상의 ‘종속성’에 대해 명확한 정의가 없고, 비근로자와 근로자를 선 긋듯이 딱 잘라 구분하는 것은 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 교수는 “일하는 사람의 기본값을 ‘근로자’로 두고, 이런 추정을 뒤집고 싶은 당사자에게 반증을 하도록 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보편화된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부합할 것”이라고 법적 해석의 방향을 제안했다. 

또한 내년 1월 27일부터 적용될 예정인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산재 등이 기업의 안전보건관리 시스템의 결함 내지 실패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한 입법으로서의 의의를 가지지만 과로사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뇌출혈과 심근경색 등은 빠진 점, 병의 중증도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점 등의 비판점이 존재한다. 권오성 교수는 “입법 취지는 좋지만 범죄구성요건의 명확성 측면에서 법률의 품질 자체가 좋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며 “향후 시행과정에서 문제점이 확인되면 적시에 개정을 통해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도적 보완과 함께, 기업의 변화를 촉발하는 소비자의 움직임 역시 매우 중요하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시행한 ‘택배종사자의 근로환경개선에 대한 국민의견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의 70% 이상은 택배종사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라면 배송 지연이나 택배비 일부 인상에 동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올해 초 쿠팡의 물류센터 화재로 시작된 쿠팡 내 노동자 처우에 대한 분노가 ‘쿠팡 불매 운동’로 이어진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은희 교수(인하대 소비자학과)는 “최근 소비자들은 자신의 소비가 사회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의식하고 있다”라며 “다만 소비자가 보이콧을 통해 기업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공분이라는 동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권 전반에 있어 지속가능한 개선이 이뤄지려면 국민 전반의 꾸준한 관심과 문제 제기를 바탕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정부, 여당, 노조, 기업 모두의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여전히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완성되지 못했다. 사회적 합의를 넘어 이들을 노동관계법 내로 포섭하는 것이 최종 목표가 돼야 할 것이다. 그들은 불합리한 노동구조 속에서 30년을 기다렸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완전한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의 고민은 그들만의 몫이 아닌,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인포그래픽: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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