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주 기자(사회문화부)
구효주 기자(사회문화부)

취미로 스냅 사진을 찍는다. 학위수여식은 사진 찍는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날이고, 나도 학위수여식이 있던 지난 27일에 ‘샤’ 정문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 정문 앞에는 액자와 사진첩 판매를 주 수입원으로 하는 사진사들이 대다수다. 이들에게서 사진 원본 파일을 받으려면 약간의 흥정과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 집에 거는 액자나, 책장에 넣어둘 사진첩보다 당장 카카오톡 프로필로 설정할 사진이 더 중요한 대학생들에게, 사진 파일보다 액자가 우선시되는 이런 관행은 익숙하지 않음이 확실하다. 

액자 혹은 사진첩 하나에 적게는 7만 원부터 많게는 40만 원까지 지불해야 하는 이런 상황에서, 나는 사진 원본 파일과 나의 노동력을 파는 블루오션으로 뛰어들었다. 예상외로 반응이 괜찮아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정문 앞에 머무르게 됐다. 잠시 쉬고 있었는데, 큰 카메라를 든 사진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인스타그램으로 예약받고 찍어주는 거예요?” 당연히 “그렇다”라고 했고, 사진사는 내게 몇 가지 질문과 함께 한탄 아닌 한탄을 늘어놓았다. 요즘은 사람들이 다 인스타그램으로 사진작가를 찾아 스냅 사진을 찍기에, 장사가 잘 안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나였어도 그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액자 하나 살 돈이면 괜찮은 스냅 사진 작가를 1시간 정도 고용할 수 있다. 그리고 사진사는 “나도 인스타그램을 시작해야 하나”라면서도 “그러면 장사 수완이 안 좋아져서 영업 방법을 선뜻 바꾸기 어렵다”라고 내게 말했다.

SNS를 기반으로 형성된 사진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기에 과거만큼의 수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건 피할 수 없는 흐름과도 같다. 다만 나는 나의 젊음을 무기로 삼아 변화를 따라갔을 뿐이고, 그들은 그러지 못했을 뿐이다. 늦지 않게 인스타그램을 시작해 다행이라는 잠깐의 안도감 뒤에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이 얄팍한 안도감조차도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당장 2년 전 거금을 주고 산 내 신형 카메라도, 이제 누군가는 중고시장에 팔아버리는 그런 ‘구형’이 됐기에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도 언젠가는 뒤처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삼켰다. 언제까지 사진을 찍을지는 모르지만, 내 사진과 내가 사진을 찍는 방식도 필연적으로 촌스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던 중 하루는 엄마가 재미 삼아 공유 킥보드를 타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킥보드 빌리는 법을 알려드렸다. 그런데 엄마는 겨우 몇 바퀴 공터를 돌아보고는 킥보드를 반납했다. 이왕 빌렸는데 몇 바퀴만 타고 마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졌던 나는 엄마에게 “왜 킥보드를 왜 타고 싶었냐”라고 다시 물었고 엄마는 “흐름을 따라가야지”라는 답을 줬다. 이날, 나는 정문 앞에서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웠다. 누군가 시간의 흐름이라는 파도에 바쁘게 올라타는 동안, 나는 파도는 언젠간 부서지기 마련이라며 미래에 뒤처질 나를 미리 정당화하고 있었다.

변화에 대처하는 것은 생업이 달려있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변화를 마주했을 때 하나도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타던 파도는 부서졌다며 제자리에 서 있다면 계속 파도에 깎여나갈 뿐이다. 물거품만 보며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직시하고 두려움을 마주할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조금 서툴게 파도에 올라타도 괜찮다. 그리고 우리는 서툴게나마 파도에 올라탄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밖에 못하냐며 비난하기보다,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으로 바라봐야 한다. 돌이켜보면 그날 사진사가 생전 처음 보는, 그리고 자신보다 한참 어린 학생에게 선뜻 사진 시장에 관한 여러 가지를 물어보는 것이 쉬웠겠는가. 나는 그날 인스타그램 안 하는 사진사로부터 변화를 마주하는 용기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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