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영 기자(사회문화부)
오소영 기자(사회문화부)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취재해야겠다고 결심한 시점은 물류센터 화재로 인한 쿠팡 불매 운동이 한창일 때였다. 할 일이 쌓여 있을 때 우스갯소리처럼 ‘이러다 죽겠다’ 곡소리를 하던 나였지만, 정말로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마주했을 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한창일 때 더욱 바빠지고, 그 바쁨의 대가로 매 순간 생존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의 삶의 무게는 어떠할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외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거듭되는 과로사로 택배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재조명된 지금, 노사 간에 이뤄진 사회적 합의가 출발점이 돼 근본적인 구조 해결로 나아가야 함을 기사에서 강조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쿠팡 불매 운동은 내게 매우 인상적인 사건이었다. 노동자의 근무 환경에 대한 분노가 소비자의 직접적 행동으로 표출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불매 운동은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처우 변화를 이끌어낼 좋은 유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쿠팡과 같은 이커머스 기업은 소비자 한명 한명의 움직임이 기업 경영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으므로, 쿠팡 불매 운동이 기업 내부 구조에 미칠 영향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이것이 성공하면 택배 노동자 수수료 문제나 배송 경쟁도 비슷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겠다’라는 장밋빛 꿈을 꿨다. 소비자들이 매의 눈으로 기업을 바라본다면, 기업의 효율성 논리에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고려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쿠팡 주가는 다시 정상 가도를 달렸다. 쿠팡 불매 해시태그를 달아 올라오던 인스타 스토리는 잠잠해졌고, 지인들은 다시 쿠팡 앱을 깔아 쓰기 시작했다. 사실 편의를 찾아가는 것은 소비자의 숙명이기에 공감은 됐지만, 보이콧이 시들해지는 게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했다. 나 또한 굴복하고 쿠팡을 켜 무료배송, 새벽 배송으로 온갖 밀린 물품들을 주문했다. 나의 분노는 어쩜 이렇게 보잘것없고 한시적일까. 나는 택배 노동자들의 행복을 팔아 택배를 받았다. 끊이지 않는 배송 업무에 사회생활까지 망가져 친구 한 명 오지 않았다는 故 김원종 택배 노동자의 장례식장을 떠올리면서도 택배를 받았다. 하루라도 일찍 상자를 뜯는 즐거움, 이 잠깐의 유희를 즐기려고 말이다. 내가 기사를 쓰는 건 말이라도 변화를 외치며 죄책감을 덜기 위함은 아닐까. 그러나 그런 알량한 포장으로 본질을 감추진 못한다. 행동이 변하지 않는다면 본인은 그저 입만 살아있는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을 사는 것에 불과하다. 한나 아렌트는 사색과 고민에 머무르는 관조적 삶을 넘어 ‘활동적 삶’(vita activa)을 살아야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했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다. 첫 특집을 끝냈지만 마음이 후련하기보단 반성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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