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기본소득에 대한 학술적 검토

최근 대권 후보들 사이에서 기본소득 제도가 뜨거운 감자다. 산업이 자동화되며 기존의 노동은 기계로 대체되고 노동자는 근로소득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기가 이전보다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위한 소득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기본소득 제도가 부상했다. 『대학신문』은 기본소득을 둘러싼 여러 쟁점을 경제와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풀어봤다.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

기본소득이 직면한 첫 번째 문제는 지속가능한 재원의 마련이다. 기본소득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따르면 모든 국민에게 연 50만 원을 주는 것만으로 26조 원이 필요하다고 예측된다. 그렇지만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 채무를 늘리는 방안은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국가 채무를 늘리는 대신 증세를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홍석철 교수(경제학부)는 “증세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며 “증세를 하더라도 기본소득 외의 복지 서비스 제공으로 얻는 삶의 질 개선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이미 우리나라 복지 예산이 전체 예산의 약 50%를 차지하고, 고령화로 인해 그 비율이 빠르게 증가할 텐데 기본소득을 지급할 능력이 유지될지 의문”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반면 ‘마이너스 소득세’* 도입을 통해 비교적 적은 재원으로도 기본소득 제도 운용이 가능하다는 관점도 있다. 일례로 2억을 버는 A와 각 2,000만 원을 버는 B와 C에게 15%의 소득세를 걷어 기본소득으로 1,200만 원씩 나눠준다고 할 때, 기존 방법으로 계산하면 3,600만 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A는 실질적으로 1,800만 원을 낸 것이고, B와 C는 각각 900만 원을 받은 것이다. 마이너스 소득세는 이런 상황에서 A는 1,800만 원만 내고 B와 C는 소득세를 추가로 낼 필요 없이 900만 원을 받으면 된다고 계산한다. 같은 액수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지만 필요한 재원은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선별적 복지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조석주 교수(경희대 경제학부)는 “다른 세금을 걷을 때 소득에 따라 선별하면서 걷기 때문에 마이너스 소득세는 기본소득의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한편 증세를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닌 당연한 수순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백승호 교수(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는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증세를 해야 하고, 기본소득 제도는 증세의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조세 저항 수준을 낮출 수 있을까. 백승호 교수는 “국가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라며 “국가가 세금을 제대로 쓸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국민은 더 많은 세금을 낼 용의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2017년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의 설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세금이 잘 쓰이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항목에 4.2%의 응답자만이 긍정을 표했다. 그러나 작년에 1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이후 「시사IN」과 KBS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자, 긍정적인 답변을 한 응답자는 43%였다. 백 교수에 따르면 이는 중산층도 복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을 때, 세금을 더 많이 낼 의지가 생긴다는 ‘재분배의 역설’이 작동한다는 방증이다.

 

노동 욕구가 줄어들지는 않을까

기본소득 제도가 마주하는 두 번째 비판은 일할 욕구의 감소다. 홍석철 교수는 “기본소득의 액수가 클 경우 노동 공급이 지나치게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백승호 교수는 “기본소득론자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의 최소 액수는 우리나라 중위 소득의 50%인 월 90만 원”이라며 “월 90만 원을 받으면서 일을 아예 그만두겠다고 할 사람들은 극소수”라고 강조했다. 기본소득만으로 삶의 모든 부분을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제도를 종합해 모든 사람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 기본소득의 목표라는 것이다.

한편 백 교수는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것이 반드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근로 동기의 여부와 재정 운영을 따지는 경제적 효율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효율성도 따져봐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경기연구원이 2021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기본소득을 받아 일을 줄이겠다고 답한 8.1%의 응답자는 노동을 줄여 얻은 시간에 사회적으로 유용하거나 자아실현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실제 2015년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최대 20만 원의 노령 기초연금이 빈곤한 노인의 소득을 안정시킴은 물론이고 노인 자살률을 낮추는 효과를 일으켰다. 이는 건강보험 예산 등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음을 뜻한다. 백 교수는 “사회적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아닌 다른 정책이 재원 운용에 더 효율적일 가능성은 남아있다. 홍석철 교수는 “26조 원은 월 200만 원 이상을 받는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들 수 있는 예산이다”라며 “정부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이나 어려운 계층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기본소득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조석주 교수는 “정부가 늘 효율적인 일자리를 만들어낸다고 보장할 수 없으며, 기본소득으로 개인이 자기 자신에게 투자할 수 있다는 이점도 고려돼야 한다”라고 전했다.

 

기본소득을 한국 사회에 도입한다면

한국 사회에 기본소득을 도입했을 때 기존의 복지제도와 기본소득 제도는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기초연금과 같은 현금성 복지제도는 기본소득으로 흡수될 수 있지만, 보육 서비스 등의 다른 현물성 복지제도는 유지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장실패 가능성으로 인해 복지 서비스를 모두 시장에 맡길 수는 없고, 소득 보장과 복지 서비스는 함께 운용돼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백승호 교수는 “기본소득으로 노인 자살률을 낮출 수 있었던 것은 기초연금을 통한 소득 보장과 ‘자살 예방 서비스’라는 복지 서비스가 결합해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한국 사회에 적합한 기본소득의 형태와 지급 액수에 관한 고민도 이뤄져야 한다. 홍석철 교수와 조석주 교수 모두 한국 사회에 기본소득 도입 시 가난한 사람부터 지원하며 차츰 지원 대상의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 이유에서는 입장 차이가 드러난다. 조 교수는 기본소득의 핵심은 이를 받기 위해 특정 조건에 부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홍 교수는 처음부터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나라는 없음을 강조한다. 한편 백 교수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되 액수를 적은 수준부터 시작하자”라고 제안한다. 그는 “내가 버는 소득의 상당 부분이 다른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공감대가 없다면 기본소득은 용돈이 될 뿐”이라고 덧붙였다.

기본소득 제도를 둘러싸고 여러 관점이 공존하는 만큼 무엇이 옳은지 결정하기란 어려운 과제다. 김범수 교수(자유전공학부)는 “기본소득 제도는 어느 학자의 의견이 옳다고 할 문제가 아닌, 정치적 의사소통으로 합의에 이르러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재분배 방안에 관한 기본소득 논의는 단발성으로 사라질 만한 사안이 아니다. 당장 한국 사회에 기본소득이 도입되지 않더라도, 이에 대한 논의는 한국이 보다 완전한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마이너스 소득세: 고소득자에게는 세금을 징수하고 저소득자에게는 보조금을 주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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