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학기 동안 한 학교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들만 봐온 탓에, 강의를 하게 될 때쯤이면 나도 알아서 뚝딱 강의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처음 강단에 서보니 학부생으로서, 대학원생으로서 강의를 들을 때는 몰랐던 것들, 그리고 강단이라는 자리의 무거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대학원생들은 학문후속세대이자, 예비 강의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동안 학문을 배우고 연구했을 뿐, 강의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강의해야 하는지, 교수법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보거나 배운 적이 없었다. 어느새 첫 강의가 다가왔다.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며칠 밤을 새가며 수업 준비를 했다.
OT 후 본격적인 첫 강의를 해보니, 강의 분량 조절이 쉽지 않았다. 아직 꽤 많은 시간이 남았음에도 준비한 PPT 수업자료는 끝을 향해 무섭게 달리고 있었고, 내게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으며, 결국 첫 강의는 다소 일찍 끝낼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는 더 알찬 수업을 위해 많은 것을 꾹꾹 눌러 담아 시간을 꽉 채워 강의를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내 첫 학기 강의는 학생들을 제대로 배려하지 못한 수업이었던 것 같다. 전공 고학년 수업인 만큼 조금은 어렵더라도 많은 것을 전달하고자 했던 나의 열정과 선의는 오판이고 욕심이었다.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학생들일 뿐인데, 단기간에 너무 어려운 내용을, 너무나 많이 전달하려고 한 것이다. 빨리 진도를 나간 것 또한 여유의 부족과 미숙함, 침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꾹꾹 눌러 담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 후로는 학생들 입장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내용을 찾고 있으며, 학생들이 강의 내용을 소화할 수 있는 침묵의 시간도 사랑하기로 했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학생들을 활발한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임무 역시 버거운 ‘퀘스트’가 아닐 수 없다. 질문을 던지면 많은 학생이 답하고, 모든 학생에게 관심과 피드백을 주며, 웃음이 가득한 강의실의 모습은 햇병아리 강사에겐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야심 차게 던진 유머에도 반응이 없다면 또다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수업은 점점 일방적인 강의식으로 흘러간다. 본래 내성적인 사람으로서 조용히 학문을 하고자 했는데, 어느새 무대 위에서 원맨쇼를 하는 나를 발견한다.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동안 수강했던 수업의 선생님들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르며, 좀 더 많이 반응하고, 미소라도 지을 걸 후회도 된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더욱더 많은 학생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강의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교수법을 연구해야 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학생들도 마음을 열고 활발한 상호 소통이 가능해진다.
물론 아직도 나는 초보 강사이고, 여전히 강의는 쉽지 않다. 아직도 매 학기마다 강의 내용을 수정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게다가 대면 수업 한 학기를 마치고 나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에 맞도록 많은 것을 바꿔야 했다. 아마 이런 고민들은 내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초보 강사와 예비 강사들의 초보 탈출을 응원하고 싶다.
유예현 간사
삽화: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