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지난 1월 방영된 MBC VR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시즌2에서는 세상을 떠난 가족을 가상현실로 만나는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제작진은 가족의 살아생전 모습을 기술을 통해 구현해 재회의 순간을 몰입감 있게 나타냈다. 메타버스는 이처럼 3차원 가상세계에서 현실의 활동을 구현하는, 현실과 가상이 융합된 세계를 의미한다. 『대학신문』은 메타버스의 정의부터 시작해 메타버스 발전의 남은 과제까지 짚어봤다.

 

현실과 가상의 융합, 메타버스

메타버스에 대해 처음으로 체계적인 정의를 내린 것은 2007년 비영리 기술 연구 단체 미국미래학협회(ASF, 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다. ASF의 정의에 따르면 메타버스란 “가상으로 증강된 현실과 실제 현실이 연동되는 가상의 융합”이다. 즉, 메타버스는 현실과 무관한 가상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현실과 가상이 융합된 형태를 말한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우운택 원장(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은 “메타버스의 본질은 ASF가 내린 정의에 가장 가깝다”라며 “지금 나오고 있는 메타버스의 여타 정의들은 ASF가 내린 정의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2007년 당시 ASF는 현실과 가상이 융합되는 양상을 4가지로 예측하고, 각각에 ‘증강현실’ ‘라이프로깅’ ‘거울세계’ ‘가상세계’라는 이름을 붙였다. 증강현실은 현실에 가상의 디지털 층을 씌우는 것이고, 라이프로깅은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를 디지털 공간에 저장하는 일종의 ‘일상의 디지털화’를 말한다. 거울세계는 물리적 공간을 똑같이 가상으로 구현해낸 결과물이고, 가상세계는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세계다.

ASF가 이런 예측을 제시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 메타버스의 이 네 가지 양상은 모두 현실로 나타났다. 이미 각각의 시장 생태계가 구축됐고, 그 안에서 경제 활동도 이뤄지는 중이다. 그 예로 네이버Z가 운영하는 ‘제페토’는 가상에서의 사람 간 소셜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가상세계로, 가능한 경제 활동의 폭을 넓히며 시장에서 몸집을 키우고 있다. 메타버스는 두 가지 이상의 양상이 중첩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페이스북의 가상 업무 협업 플랫폼 ‘호라이즌 워크룸’은 라이프로깅의 성격과 가상세계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우운택 교수는 “네 양상을 따로 떼서 이야기하기보다, 이들을 어떻게 연동시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라며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개별적인 시장 그 이상으로는 발전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기술을 집약해 현실을 확장하다

현실과 가상을 융합하기 위해 어떤 기술들이 활용되고 있을까. 대표적으로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과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이 꼽힌다. 가상현실(VR)은 사용자가 시야를 차단하는 헤드셋 형태의 기기를 착용해 가상에 접속하게 하고, 증강현실(AR)은 사용자가 안경과 같이 시야를 차단하지 않는 기기를 착용해 현실 공간 위에 가상의 이미지가 겹쳐 보이게 한다. VR과 AR이 등장하면서 사용자가 3D 콘텐츠를 스마트폰이나 데스크탑과 같은 2D 화면으로 보는 것을 넘어, 직접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VR과 AR은 콘텐츠를 접하는 수단, 즉 ‘디바이스’에 불과하다.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CPND)* 가치 사슬로 보면 콘텐츠는 디바이스를 통해 네트워크로 연결된 플랫폼에서 구현된다.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플랫폼은 크게 서비스 플랫폼과 개발 플랫폼으로 나눌 수 있다. 서비스 플랫폼은 서비스 제공에 초점을 맞춘 플랫폼으로,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콘텐츠에 더 가깝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로블록스, 포트나이트, 제페토 등이 그 예다. 개발 플랫폼은 콘텐츠가 실행될 기술적 환경을 쉽게 구현하게 해주는 툴킷(toolkit)으로, 유니티(Unity) 엔진과 언리얼(Unreal) 엔진이 대표적이다. 유니티 코리아 오지현 에반젤리스트*는 “유니티는 개발 ‘도구’만을 만든다”라며 “그 개발 도구가 어떤 쓰임을 갖게 될지 결정하는 것은 크리에이터들의 몫”이라며 엔진이라는 기술적 환경 위에 그려질 ‘그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개발 플랫폼은 콘텐츠와도 뗄 수 없는 관계다. 제조, 건축, 중공업, 영화, 미디어 등 다양한 산업에서 메타버스가 활용되려면 각 분야에 맞는 콘텐츠를 발굴하는 작업이 꼭 필요한 이유다.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해 활용하려는 시도는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물리적 공간을 가상공간에 실사 수준으로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은 현실과 가상을 잇는 핵심 매개체가 되고 있다. 디지털 트윈을 이용하면 현실의 데이터로 물리 기반 시뮬레이션을 진행해 최적화된 모델을 찾을 수 있고 예상되는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어, 해당 기술은 차량 설계나 물류센터 모니터링 등 산업 현장에서 용이하게 쓰인다. 최근에는 의료 산업까지도 그 이용이 확대되며, 대표적으로 ‘메디컬아이피’(MEDICAL IP)의 소프트웨어 ‘메딥’(MEDIP)은 X-ray나 CT와 같은 환자의 의료영상을 3D 모델링으로 가상에 구현했다. 인체 내부를 단면이 아닌 입체로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염증과 같은 병변이 발생한 장기를 따로 떼서 그 위치를 직접 확인하고, 실제 환자의 인체 구조물과 동일한 크기와 물성을 가진 장기 모델로 3D 프린팅할 수도 있다. 또한 가상공간에서의 의료 실습 콘텐츠도 개발돼 고도화 작업 중에 있다. 메디컬아이피 박우진 기술개발사업본부장은 “의료용 3D 프린팅 모델의 가치가 병변 구조 식별, 수술 계획 수립 및 수술 시간 단축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검증되고 있다”라며 “마찬가지로 카데바(의료 실습용 시체) 실습도 가상공간에서 구현할 수 있다면 관련된 경제적, 윤리적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시도들은 현실의 데이터로 가상공간에서 시뮬레이션을 하고, 이를 ‘리얼타임’으로 현실에 반영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여기서 CPND 중 네트워크 문제가 대두된다. 왜 빠른 네트워크 속도가 필요할까?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정보의 이동이 실시간으로 이뤄져야 골든타임 내에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고,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운택 교수는 “IoT(사물인터넷)나 스마트폰이 생성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가상공간에 보내려면 초고속망이 필요하고, 초고속망으로 보내는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려면 데이터를 즉각적으로 주고 받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오지현 에반젤리스트 또한 “메타버스에서는 매 순간 프레임이 사용자의 움직임이나 반응을 바탕으로 실시간 렌더링(rendering)*이 돼야 한다”라며 “2차원 화면과 달리 사방에 그래픽이 있어야 해 빠른 통신망 속도가 필요하며, 이와 동시에 낮은 전력의 디바이스 환경에서도 높은 품질의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VR 기기를 착용한 사람들이 의료 영상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해부실습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제공: 메디컬아이피)
VR 기기를 착용한 사람들이 의료 영상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해부실습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제공: 3D4 MEDICAL)

 

사용자 경험에 대한 고민, 메타버스의 미래는?

앞서 디바이스, 플랫폼, 네트워크라는 ‘바탕’을 살펴봤다면, 이제는 콘텐츠라는 ‘그림’을 살펴볼 차례다. 콘텐츠의 본질은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메타버스가 가상과 현실의 경험을 적절히 융합하려면, 가상보다는 현실에 더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운택 교수는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상세계’ 메타버스의 경우, 현 상황에서는 현실과의 연결고리가 별로 없다”라며 “가상세계에 있는 정보를 현실로 가져와 일, 놀이, 쇼핑, 도시환경 관리와 같은 일상에서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오지현 에반젤리스트는 “메타버스 기반의 교류가 필요한 현실의 장면을 메타버스로 구현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그 예로 각 산업이 선호하는 업무의 성격에 따라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적절히 배합된 하이브리드 업무 공간을 구현하는 것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메타버스 사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용자 간 사이버 괴롭힘과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등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이뤄져야 한다. 오지현 에반젤리스트는 “사이버 괴롭힘이 게임에서는 채팅으로 일어나고 있다면, 메타버스 공간에서는 사용자가 아바타와 일체화된 상태에서 괴롭힘을 받게 된다”라며 기술을 통해 욕설이나 모욕을 걸러낼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불쾌한 골짜기에 대해서도 “가상현실에 등장하는 캐릭터로부터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할 수 있는 다양한 표현 방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우운택 교수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가상세계에서의 보안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고민은 아직 진지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이 공간을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최근의 메타버스 대유행에 대해 거품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메타버스를 기술혁신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메타버스로의 변화를 정해진 미래로 보는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메타버스에 대한 국가적 투자를 고민한다. 우운택 교수는 “현실을 가상으로 옮기는 것만 생각하다보니 정부의 투자나 연구 개발이 게임과 같은 실감 콘텐츠에만 집중된다”라고 지적했다. 라이프스퀘어 최형욱 대표는 “지원을 안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적절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게 문제”라며 “정책과 지원 과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아닌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라고 짚었다. 그는 “이제 페이스북, 애플, 테슬라 같은 회사들은 기술 밑단부터 콘텐츠까지 CPND를 다 한다”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이처럼 수직적 계열통합을 이룬 회사가 없어 각 분야 간 협업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스마트폰과 VR/AR 기기가 서로 호환되는 멀티 디바이스 환경이나 5G 통신망과 같은 기술적 환경이 갖춰지려면 적어도 5년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다”라는 오지현 에반젤리스트의 말처럼, 메타버스가 일상 속 우리의 미래가 되려면 아직 더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의 흐름 속에서 메타버스의 일상화는 결국 맞이하게 될 변화임이 틀림없다. 메타버스를 통해 어떻게 현실의 가치를 증폭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CPND: ICT 시장에서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가 연계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보는 생태계적 관점의 개념.

*에반젤리스트: IT업계에서 마케터와 엔지니어의 중간적 역할을 하는 직군.

*렌더링: 시각적으로 표현되기 이전의 데이터를 그림이나 영상으로 변환하는 과정.

*불쾌한 골짜기: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을 닮았을 때 높아졌던 호감도가,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불완전성을 느낄 때 불쾌함으로 바뀌는 현상.

 

삽화: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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