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청춘상담소 장재열 씨를 만나다

청년 우울증 급증과 ‘코로나 블루’의 영향으로 마음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요즘, 이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는 비영리단체가 있다. 올해로 9년차가 된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이다. 누구나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이 단체는 30대 사회인 상담가들이 ‘좀 놀아본 언니’가 돼 20대 청춘들과 연애·취업·진로·성 정체성·가정환경 등 다양한 고민을 나눈다. 이 독특한 이름의 단체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지난달 17일,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의 장재열 대표를 만나 마음 건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제공: 장재열 씨
사진 제공: 장재열 씨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고민상담소의 설립까지

장재열 대표의 20대는 청년 상담가 및 비영리단체 대표와 거리가 멀었다. 그의 청춘은 목표를 세우고 이루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였고, 성장해나가며 가해자들에게 보란 듯이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장 대표는 서울대에 입학하겠다는 일념으로 세 번의 반수를 통해 미대 도예과에 진학했고, 이후 수많은 대외활동을 통한 40여 개의 외부 스펙으로 삼성에 입사했다.

하지만 목표지향적인 시기가 끝난 후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은 그가 청년 상담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학창 시절에 미래의 에너지를 대출받아 써버린 탓에 입사 후 번아웃이 왔다”라고 회상했다. 이는 인사 담당자로서 20대 청춘들에게 자신이 고통받고 있는 조직에 대해 허황된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는 생각으로 심화됐다. 이후 그는 정신과 전문의의 권유로 개인 블로그를 개설해 서로 다른 두 개의 아이디로 내면과 대화하는 자문자답 치료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그의 블로그를 찾았고, 그들은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과 미대 졸업·패션회사 근무 이력 탓에 장 대표를 여성으로 오해해 ‘언니’라고 부르며 상담을 청했다. 이후 장 대표의 블로그는 비영리단체로 성장했고, 블로그 방문객들이 익명의 그에게 투영한 ‘좀 노는 언니’라는 가상의 이미지로부터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이라는 단체명이 탄생했다.

장재열 대표에게 상담은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인 동시에 자신이 지나온 삶의 조각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장 대표는 특히 방황하는 서울대 학생들과 취업 후 번아웃을 토로하는 내담자들을 통해 과거의 자신과 조우한다고 전했다. “그들에게 제가 살아온 시간의 조각들을 봐요. 시간이 흐른 지금, 저와 닮은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과거의 제게 전송하고 싶은 메시지이기도 해요.” 그는 상담을 통해 자신이 겪은 아팠던 삶의 단계가 당시로서는 최선이었음을 느낀다며, 상담을 통해 자신도 치유 받는다고 전했다. 

 

이타적 행위를 위한 마르지 않는 샘물

장재열 대표는 상담과 관련 없어 보이는 자신의 도예 전공이 되려 상담의 정신적 기반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가 도예를 전공하며 배운 기다림의 태도는 상담가로서 일하는 데 핵심 역량이 됐다. “대학 시절, 가마에서 갓 구워져 나온 도자기 수십 개를 낮은 완성도를 이유로 깨버리는 것이 일상이었어요. 그러니 도자기 100개를 물레로 빚을 때부터 이중에 20개는 살고 80개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죠. 마찬가지로 일부 내담자는 제 상담을 통해 삶의 즉각적인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을 수도 혹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서서히 변화할 수도 있음을 이해해요.” 그는 전공을 통해 기술이 아닌 태도를 배웠기에 도예를 전공한 것에 후회가 없다며 웃음 지었다.

장 대표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는 것 외에도 방송인·라디오DJ·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즉, 그의 삶에는 조명이 닿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빛을 전할지 고민하는 시간과 스스로에게 조명을 비추는 시간이 공존한다. 이런 양면적인 직업 정체성이 때로 버겁지는 않을까. 그는 오히려 이를 통해 얻은 삶의 생기가 공익 활동의 원동력이라고 답했다. “프리랜서로서 마음껏 끼를 발산하고 주목받는 것은 제 즐거움이자 에너지예요. 그렇게 받은 충족감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느낌으로 공익을 위해 일하죠.”  또한 분리된 삶의 방식은 대다수 비영리단체 활동가들이 겪는 금전적 문제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했다. 장 대표는 “여러 직업을 통해 충분히 즐기며 돈을 벌기 때문에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이타적 행위를 할 수 있다”라며 양면의 직업 정체성이 삶에 선순환을 가져온다고 밝혔다.

 

행복한 구성원, 행복한 사회를 위해

장 대표는 현재 개인 상담가가 아닌 행정 기획가로서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는 시간이 흐르며 30대 후반인 자신과 주 내담자인 20대 청년이 세대적 공감을 나누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느꼈고, 이는 상담의 동력을 잃어버린 듯한 허무함을 남겼다. 이에 그는 상담하는 일을 청춘상담소 내의 90년대생 팀원들에게 물려준 뒤, 행정이라는 큰 틀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그동안 저는 상담에 찾아올 수 있는 최소한의 능동성을 가진 사람들만 돌봤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무기력하거나 방법을 몰라 상담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온라인 게시판에 고민을 털어놓는 것 자체가 장벽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행정 시스템을 구축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현재 장 대표는 지자체에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의 활동 노하우·프로세스를 공유하고 공공기관의 행정적 벤치마킹을 돕고 있다. 또한 그는 서울시청·경기도청·대전시청 등과의 민관협력을 통해 고립 청년들과 취약계층 청년들을 위한 공공서비스를 기획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춘들을 돕고 있다. 

학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적지 않은 서울대 구성원들이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장 대표는 이런 우울이 삶에 대한 불만족 중 일부를 사회적 기준의 미달로 합리화하는 습관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인간은 삶에서 불만 요소가 생겼을 때 외부 상황을 생각해요. 예컨대,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해결되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내면이 아닌 외적 기준을 변화시키려고 시도하죠. 하지만 서울대 입학으로 그것이 불가능해지자 불만족이 순전히 내면의 이유임을 깨닫고 우울이 찾아오는 거예요.” 

장 대표는 우울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순간 해결의 실마리가 사라진다며 우울을 그저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신 그는 목표를 달성한 뒤 시작된 우울을 만족이나 행복의 충분조건이 성취가 아님을 깨닫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전했다. 즉, ‘목표설정-노력-성취-행복’이라는 알고리즘을 완파하고 모든 것을 원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우울이라는 현상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인간을 성공한 사람이라 칭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목표의 끝에 인생 2막이 아닌 또 다른 목표가, 기쁨이 아닌 우울이 기다릴 수도 있다는 것을 달리는 중에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우리와 비슷한 청춘의 시간을 밟아본 청춘 상담가 장재열 대표의 메시지를 통해, 행복을 위해 목표 달성이 필연적이라는 사고방식을 깨고 깨끗한 원점에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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