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FIFA)이 월드컵 격년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현행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을 앞으로는 2년에 한 번 열려고 하는 것이다. 평소대로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할 것일 수 있으나 이번엔 그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바로 이 제안을 한 사람이 바로 아스널 역사상 최고의 감독 아르센 벵거(현 FIFA 글로벌 축구 발전 책임자)기 때문이다. 발언에 뒤따르는 움직임도 발 빠르다. FIFA는 당장 오는 30일(목)에 월드컵 격년제를 논의하기 위한 첫 회의를 연다. FIFA의 월드컵 격년제 추진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단순히 월드컵을 2년에 한 번 한다고만 하면 현실성이 없다. 선수들이 모든 힘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월드컵 개최 주기를 줄인다는 것은 선수에 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클럽에 있어 큰 부담이다. 하지만 벵거는 이에 대한 대안도 준비했다. 그는 월드컵을 격년으로 개최하는 대신 메이저 대회 예선을 포함한 각종 국가대표 경기(A매치)를 시즌 중 10월에 몰아서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선수들에게 A매치 자체보다 시즌 중 띄엄띄엄 이뤄지는 A매치로 인한 잦은 이동 때문에 생기는 시차 적응 등 컨디션 조절이 큰 문제라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월드컵 격년제를 반대하는 이들의 근거가 선수 보호 측면 뿐은 아니다. 유럽축구연맹(UEFA)의 알렉산데르 체페린 회장은 월드컵 격년제는 월드컵의 희소성을 해치는 행위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꿈의 무대로 특별해야 할 월드컵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것이다. 일견 그의 말은 옳은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볼 점이 있다. 바로 축구의 중심이 국가대표 레벨에서 클럽 레벨로 넘어간 지 오래라는 점이다. 4년에 한 번이 아니라 우리는 매해 UEFA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당대 최고 선수들의 플레이를 볼 수 있다. 최첨단 전술이 선보여지는 곳도 A매치보단 클럽 레벨의 경기다. 전술의 변화가 점점 빨라지는 상황에서 긴 공백을 두고 치러지는 월드컵에서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건 한계가 있다. 4년에 한 번 개최된다는 희소성이 더는 월드컵의 실제 가치를 높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월드컵 격년제를 옹호하는 것 같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축구의 모습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있다. 월드컵 격년제와 더불어 최근 축구계엔 변화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많았다. 우선 양적인 부분에서 변화 시도가 많았다. UEFA에서는 챔피언스리그의 개편안을 내놓으며 경기 수를 늘리려 하고 새로 UEFA 유로파 컨퍼런스리그도 도입했다. 무위로 그치긴 했으나 빅클럽들을 중심으로 슈퍼리그 창설 시도도 있었다. 질적인 부분에서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FIFA는 얼마 전부터 축구 규칙 개편을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 속도를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둔 이 규칙은 경기 시간 축소 등 파격적인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이런 시도들이 밥그릇 싸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정도 변화가 없으면 축구 산업의 장래는 어둡다는 축구계가 가진 위기의식의 발로라고 볼 수도 있다. 슈퍼리그 출범 시도의 주요 명분도 젊은 층에서 축구를 보고 있는 사람이 줄고 있는 등 축구 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었다. 이런 위기로 인해 스포츠 중에서도 특히 보수적인 축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이것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알 순 없으나 축구를 즐겨보는 한 사람으로서 우려보단 기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

 

여동하 간사

삽화: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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