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숭희 교수(교육학과)
한숭희 교수(교육학과)

2021년 9월 1일 수요일. 하필이면 개강 첫날 수업이 잡혔다. 그것도 오전에 말이다. 염려가 현실이 됐다. 인터넷 연결은 불안정하고 급기야 eTL 접속도 안 된다. 진땀을 빼면서 수강생에게 개별 연락을 했고, 겨우겨우 ZOOM 접속까지는 성공했다. 그다음은 연결 속도가 문제였다. 멋지게 준비했던 동영상을 틀자 학생들의 얼굴이 모두 프리징됐다. 인터넷 속도가 문제였다. 아뿔싸. 또다시 시스템 실패가 반복되고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 이후 네 번째 학기를 맞고 있지만 우리는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 왜 같은 시스템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지능을 동일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면, 서울대의 집단지능은 결코 스마트하지 않아 보인다. 캠퍼스에 스마트한 학생과 교수들이 넘쳐나지만 말이다. 서울대라는 시스템이 그 구성원들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우리 대학의 교육역량은 북미나 유럽 대학에 비해 한 세대 이상 뒤처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중에서도 교양과목을 운영하는 방식, 특히 그 평가의 기준이 상대평가 방식일 때 한 세기 전의 그림자를 본다. 상대평가는 근대 산업사회의 대규모 공장에서 생산된 품질의 불량 정도를 파악하는 방법에서 시작됐다. 생산품의 품질을 만족시키는 표준을 정하고, 그 표준에 가까울수록 우량품이며 오차가 많을수록 불량품으로 판정하는 품질 관리 시스템이다. 이것이 근대 대중 학교 제도가 팽창하면서 학생들에 대한 ‘품질 관리’ 목적으로 전용되기 시작했다. 학생을 탐구하고 질문하는 존재가 아닌 표준 지식을 장착한 생산품으로 여기는 철학이 그 배경에 깔려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적폐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평가 방식이다. 이는 교육적 가치보다는 서열화의 가치가 우선인 방식이다. 

그런데 이미 초·중등교육에서도 축출되고 있는 이 방식이 지성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에서, 전공도 아닌 교양과목 학습 결과를 평가하는 주된 방법으로 강요되고 있는 점은 참으로 자기 모순적이지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시험형 인간’으로 길러져 온 아이들이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대학에 첫발을 딛는 순간 이런 구시대 유물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서울대 ‘교양교과과정 편성 및 운영지침’ 제31조 제2항에 따르면 교양과목은 ‘객관식 시험을 지양하고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반영’할 수 있도록 평가하게 돼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준화된 사고를 평가하는 데나 적합한 상대평가 방식을 교양과목 성적 부여의 기본 형태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자기모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상대평가가 없으면 학생들이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전공 지원에서 공정한 선발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형적으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꼴이자 ‘본말전도’일 뿐이다. 학생들을 초인적 무한경쟁에 빠지게 만드는 현 입시제도를 냉소적으로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기 안마당에서 일어나는 그런 관습은 눈감고 넘어가는 것이다. 

의무교육 기간 내내 학생들은 상대 서열화의 사다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부를 물신화하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대학 1학년의 교양과목은 학문과 공부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경험하게 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교양과목을 통해 학생들이 학문이 단지 외우고 시험 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재맥락화하는 새로운 지평으로 느끼게 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학생들은 평생 학습자로서 생애 전반을 공부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평생학습 시대의 대학은 공부의 종착역이 아니라 성인이 돼 받게 되는 첫 번째 형식교육이며 평생 학습자로서의 출발점이다. 교양 교육은 이런 출발을 위한 소중한 학습 경험을 선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이 대학에 입학해 수강하는 첫 수업 경험에서부터 자신이 공부의 노예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