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청년 빈곤에 대한 다각적인 정책 접근의 필요성

김문길 센터장(한국보건사회연구원 청년정책연구센터)
김문길 센터장(한국보건사회연구원 청년정책연구센터)

빈곤(貧困)의 ‘貧’은 가난을, ‘困’은 괴로움을 의미하는 한자어로서, 빈곤은 가난으로 인해 괴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빈곤이 ‘가난해 살기가 어려운 것’으로 풀이돼 있다. 사실 어려서부터 가난을 경험해보지 못한 필자는 그 괴로움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어쩌다 빈곤 연구를 업으로 삼게 돼 필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가난의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조금 알고 있을 뿐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연령집단은 노인들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들 중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빈곤 문제는 노인 빈곤 문제로 그대로 치환되고, 연구와 정책도 노인 빈곤을 주 대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맥락에서 ‘청년 빈곤’은 언뜻 병렬되기 어색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2015년에 당시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에서 발주를 받아 ‘청년근로빈곤 사례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실증적인 접근보다 질적인 접근을 주요 방법으로 삼는 연구였다. 실증적인 접근을 병행하기 위해 근로빈곤 청년층의 규모를 추정해보니 상당히 낮은 수치가 나왔다. 연구 중간 단계에서 이 수치를 발주처와 주변에 공유했더니 ‘이 정도 규모를 가지고 정책 대상으로 삼는 것이 옳은가’라는 반응과 ‘사례연구로만 연구를 구성하자’라는 제안까지 나왔었다. 이 정도 규모라 하더라도 근로빈곤 청년층의 ‘가난해 괴로운’ 상태가 심각하기에, 그리고 빈곤의 소위 점착성(Stickiness)이라는 특성 때문에 한 번 빈곤에 빠지면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기에, 이런 점을 들어 주변을 설득했던 기억이 있다.

높은 청년 실업률과 높은 니트(NEET)족* 비중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진입의 어려움과 비정규직 비율 및 저임금 근로자 비중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기회 구조의 열악성이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청년 빈곤율이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할 정도로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말하면, 노동시장 안팎의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다고들 하는데 왜 ‘빈곤율’이라고 하는 통계의 세계에서는 청년들이 겪고 있는 괴로움이 대수롭지 않게 되는 것일까? 

통계청의 「소득분배지표」(2019년) 중에서 연령계층별 빈곤위험도*를 보면, 18~25세가 0.61로 핵심 생산인구 중에서도 빈곤율이 가장 낮은 26~40세의 0.55에 이어서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이 같은 결과는 서구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학교 졸업 후 일자리로 이행하기 전 시기에 빈곤율이 일시적으로 높아졌다가 노동시장 진입 후 안정되는 현상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와 OECD 선진국 18개국의 연령계층별 빈곤위험도를 보여주는 아래 그림에서 이 차이는 뚜렷히 드러난다. 우리나라가 완만한 역의 L-자형을 보이는 반면, 주요 선진국들은 반대로 L-자형에 가까운 모양을 보인다.

 

▲2019 우리나라 연령계층별 빈곤위험도 ▲OECD 선진국 18개국 국가 빈곤율

이들과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가진 우리나라의 빈곤 생애 주기가 이처럼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이 OECD 주요국에 비해 높지 않은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실업률에 잡히지 않는 많은 수의 청년 구직 단념자와 청년 니트(NEET)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OECD의 통계를 보면 청년 빈곤율과 부모와의 동거 비중 간에 뚜렷한 역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즉 부모와 동거하는 청년의 비중이 크면 부모와 소득을 공유하는 청년들의 비중이 커져서 청년 개인의 빈곤율은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2016년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이용해 우리나라 19~34세 청년들의 부모와의 동거 여부별 빈곤율을 계산해보면 동거하지 않는 청년 중 빈곤율은 10.1%인데 비해 동거하는 청년은 중 빈곤율은 5.7%로 나타난다.

따라서 청년 개인의 빈곤을 통계적으로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청년을 성인으로의 이행기 관점에서 정의한다면, 청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행에 필요한 조건들을 탐색하고 그것을 빈곤의 맥락에서 측정할 때 청년정책의 방향성과 세부 과제 도출에 관한 함의를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부합하는 접근법으로 ‘다차원적 빈곤’(Multidimensional Poverty) 개념을 들 수 있다. 이는 센(A. Sen)과 누스바움(M. Nussbaum)이 제시하는 능력접근(Capability Approach)에 기초한다. 능력접근은 개인의 삶의 질 등을 평가하는 데 활용되는 개념으로, 사람들이 실질적 자유에 도달하는 데 있어 경제적 자원을 포함한 자원들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중요한 도구로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개념을 알키레와 포스터(S. Alkire & J. Foster) 등의 경제학자들이 수학적 방법으로 구현해 낸 것이 다차원적 빈곤 접근이다. 이는 UNDP의 Human Development Index나 OECD의 Better Life Index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다차원적 빈곤 접근을 통해 청년들의 안전하고 완전한 성인으로의 이행과 삶의 질에 대한 평가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2017년에 수행한 「청년빈곤의 다차원적 특성분석과 정책대응 방안」(김문길 외, 2017) 연구에서 전문가와 청년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델파이 조사를 통해 경제력, 주거, 건강, 고용, 사회문화적 자본, 안정성의 6가지 영역으로 다차원 빈곤을 규정하고 그 빈곤 수준을 측정한 바 있다.

소득으로 측정한 빈곤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크게 낮은 것과 달리 다차원 빈곤율은 그리 크게 낮지 않거나(노인 대비), 비슷(중장년 대비)한 것을 밝혀냄으로써 소득 빈곤에서 감춰진 청년들의 빈곤 상황을 드러낼 수 있었다. 또한 2020년의 연구 「다차원적 빈곤 접근을 통한 청년 취약계층 발굴과 정책방향 설정 연구」(김문길 외, 2020)에서는 청년 연령층을 초기(19~24세), 중기(25~29세), 후기(30~34세)로 구분해서 영역별 빈곤 상황을 비교해봤는데, 초기와 중기 청년은 경제력 빈곤, 초기 청년은 고용, 중기 청년은 주거, 후기 청년은 건강과 사회문화적 자본에서 빈곤율이 높게 나타났다. 청년기본법에서 정의하는 청년 연령대 내에서도 연령 계층에 따라 청년이 상이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청년 연령집단별로 상이한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한편 2020년의 연구에서는 2008년과 2018년에 두드러지는 청년 빈곤집단의 유형을 파악하기도 했다. 분석 결과 2008년의 주된 빈곤집단 유형은 ‘경제력 빈곤’과 ‘고용·안정성 빈곤’으로 나타났으나, 2018년에는 주된 빈곤집단 유형이 ‘건강빈곤’과 2개 이상의 영역에서 결핍을 경험하는 ‘복합빈곤’으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결과는 과거에는 청년정책의 목적을 고용을 통한 소득 안정에 두면 됐지만, 최근 들어서는 보다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정책적 접근이 필요해졌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2018년의 ‘건강빈곤’ 집단과 ‘복합빈곤’ 집단을 구성하는 청년들의 특성을 살펴봤을 때, 전자의 경우 여성, 후기 청년, 도시 거주 청년, 고학력 청년, 비경활인구 및 실업자, 1인 가구, 저소득층 등이 다수를 차지했고, 후자의 경우는 남성, 초기·중기 청년, 수도권·농어촌 거주 청년, 저학력 청년, 임시·일용직 근로자 및 특수고용, 1인 가구, 저소득층 등이 많이 분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결과도 역시 포괄적인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청년들은 주요한 성인으로의 이행 과정으로 꼽히는 일자리 획득, 주거 안정, 가족 형성의 측면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경기 충격과 같은 외부적인 충격에 의해 고용, 소득 등의 지표에서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선진국이 경험하고 있는 경제성장의 정체 현상과 소득 및 자산의 불평등 문제는 전반적인 성인으로의 이행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내부 격차를 확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여러 연구는 이와 같은 성인으로의 이행기에 겪는 어려움이 생애 전반에 상흔효과(Scarring effect)*를 가져올 수 있음을 실증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폰 와처(von Wachter)는 2020년 논문에서 초기 조건이 좋지 않을 경우, 예컨대 실업률이 높은 시기에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의 경우 생애 소득의 손실과 더불어 건강, 가족형성, 사회에 대한 인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한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위기는 오늘날 청년들의 생애에 걸친 상흔효과를 유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오늘날 청년정책은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총체적 사회경제적 문제들에 대응할 수 있도록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또한 코로나19와 같은 커다란 사회경제적 충격이 청년들의 생애사에 걸친 악영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증적인 요법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정책 처방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인구고령화, 기술변화, 노동시장 변화, 기후위기 등 현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청년층의 삶의 환경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청년정책의 방향성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니트(NEET)족: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

*연령계층별 빈곤위험도: 전체 빈곤율 대비 해당 연령층 빈곤율.

*상흔효과: 경제위기, 경기침체 등 특정 시기에 사회에 진출하는 초년생들이 구직에 실패하는 기간이 길어지며 이후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수요자인 기업 측에서 그들을 경쟁력이 없는 인력으로 간주해 경제활동 편입이 계속 지연되거나 스스로 포기하는 현상. 또한 청년들이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본래 받을 수 있던 수준 대비 임금이 낮을 곳을 선택하고 연속적으로 생애 소득이 낮아지는 효과까지 포함한다.

 

인포그래픽: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김윤영 기자 kooki1026@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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