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세종대왕 전시회: 세종대왕과 음악, 여민락(與民樂)〉

올해 제575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사랑도시 세종특별시는 8월 20일부터 오는 11일(월)에 걸쳐 ‘한글사랑 주간 행사’를 개최했다. 해당 행사는 정부세종컨벤션센터·세종문화예술회관 등 5개의 장소에서 디자인 공모·전시회·백일장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다. 그중 『대학신문』은 오는 9일까지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되는 〈세종대왕 전시회: 세종대왕과 음악, 여민락(與民樂)〉에 다녀왔다. ‘평화와 공생을 위한 시가’라는 소제목을 가진 이 전시는 세종대왕이 애민정신을 담아 만든 우리의 독창적인 음악 ‘여민락’을 소재로 현대적인 재해석을 시도한다.

 

◇세종대왕의 마음을 담아=조선 4대 왕인 세종대왕은 한글이라는 중대한 유산을 남겼지만, 그의 업적은 비단 한글 창제에 그치지 않는다. 애민이라는 가치로 수렴되는 그의 업적은 문화·과학·학문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조선의 발전을 이끌었다. 이 중 세종대왕의 음악적 면모가 드러나는 ‘여민락’은 관료들이 즐겨 들으며 애민의 마음을 기르라는 의미에서 한문으로 창작됐다. 여민락은 본디 조선 왕조의 창업을 찬양한 ‘용비어천가’의 1·2·3·4·125장을 가사로 삼은 성악곡이었으나, 훗날 기악 부분만 남아 관현악이 됐다. 중국의 아악과 구분되는 조선의 독자적인 곡이자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라는 뜻을 지닌 여민락은 백성과 겨레를 사랑하는 세종대왕의 마음이 담긴 문화유산이다.

〈세종대왕 전시회: 세종대왕과 음악, 여민락(與民樂)〉을 통해 10명의 작가들은 ‘세종대왕과 음악’이라는 큰 주제에 관한 현대적 해석을 시도한다. 이들은 여민락을 평화와 공생의 가치로 재해석해 시민 관람객들에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더불어 극복하자는 메세지를 전한다. 봉건시대에 백성을 생각했던 애민군주 세종대왕의 정신을 담은 전시는 회화·조각·설치·영상·미디어 퍼포먼스 등의 25개 작품들로 구성돼 있으며, 그가 꿈꾼 이상과 현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예승 작가의 〈정중동·동중동_episode1〉
이예승 작가의 〈정중동·동중동_episode1〉

 

◇변화의 길목에 서서=전시는 여민락을 소재로 하지만 작가들은 이를 직접적으로 작품에 도입하지는 않았다. 여민락을 이루는 음악적 틀인 음율은 탈각됐고, 그것이 내포한 ‘화합’ ‘대중문화’ ‘이상’ ‘민중’이라는 가치가 남아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했다. 그중 단연 눈길을 끈 것은 증강현실을 이용해 화합의 가치를 표현한 이예승 작가의 〈정중동·동중동_episode1〉이다. 증강현실 속에서 부유하며 시시각각 다른 이미지를 이루는 색색의 도형들은 세상의 빠른 변화를 상징한다. 이예승 작가는 관객이 증강현실에 구현된 QR코드를 휴대폰으로 찍는 참여형 구성을 통해 단순한 변화를 뛰어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관객은 시공간적 차원을 넘어 작품을 완성하는 주체가 되며, QR코드를 통해 작가의 SNS로 연결돼 기술적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화합의 가치를 전한다.

한편 여민락이 품은 ‘이상’을 핵심 가치로 삼아 팬데믹 시대의 변화를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석철주 작가는 〈신몽유도원도〉 연작에서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픽셀의 형태로 재탄생시켰다. 이처럼 회화를 통해 디지털 이미지를 구현함으로써 작가는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의 중첩을 거친 패러다임의 변화를 표현했다. 특히 이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더욱 가속화된 디지털의 위용을 암시하는 기능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새로 선보인 2020·2021년의 〈신몽유도원도〉는 행복이라는 꿈을 찾아가는 상황을 묘사하며, 이상을 추구하는 진취적인 행위를 강조한다.

 

◇민(民)에 대한 성찰=전시장 안쪽에는 여민락의 핵심 대상인 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이 작품들은 성격에 따라 민중이 향유하는 문화와 시대적 변화 속 민중의 모습에 관한 고찰로 나뉜다. 김혜경 작가의 시선은 민중문화가 가진 락(樂)의 정신에 있다. 그는 ‘백성과 즐긴다’라는 여민락의 핵심 가치에 초점을 두고 모두가 즐겁게 누릴 수 있는 매혹적인 이미지를 미디어 파사드*에 담았다. 〈Media 여민락 동궐〉 속 화려한 형상으로 빛나는 꽃과 건물의 이미지는 감상자를 시각적으로 매료시키는 예술의 기본적인 당위를 정당화함으로써 민중예술, 나아가 민에 대한 격상을 시도한다.

한편 민중이 향유하는 예술을 통해 간접적으로 민중을 다뤘던 김혜경 작가와 달리 민중 그 자체를 직접 탐구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심철웅 작가의 〈신분정간보〉다. 이 작품은 세종대왕이 창안한 악보인 정간보, 신분제도와 관련된 한자들, 그리고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진행됐던 광화문 집회의 영상이 중첩돼 구성된다. 심철웅 작가는 신분제로 구분됐던 과거 민중과 현재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시민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현대 민중의 기반을 짚고 그들이 능동적인 주체가 됐음을 강조해 드러낸다.

 

“현대 작가들이 ‘세종대왕과 음악’이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제작한 미술작품은 위대한 왕의 이상을 실존하게 하는 행위”라는 조은정 전시감독의 말처럼 〈세종대왕과 음악, 여민락(與民樂)〉은 누구나 민중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그러므로 세종대왕의 정신을 품을 수 있는 세상이 왔음을 시사한다. 왕의 이념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전시장에 들어와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 제약이 없는 오늘날의 모습은 민중에 대한 세종대왕의 사유가 현실화됐음을 보여준다. 전시장을 나가고 들어오는 우리는 세종대왕이 꿈꾼 이상의 실현인 것이다.

*미디어 파사드: 건물 외벽에 LED 조명을 비춰 영상을 표현하는 기법.

 

사진: 김가연 사진부장 ti_min_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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