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편집장이 만난 사람들 | “그런 여름이 다시 올까?”

청년들의 삶을 묘사하는 단어 중 ‘치열함’보다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여기 경쟁 속에서 무언가를 성취해야만 하는 환경에 내던져진 청년들에게 가감 없는 애정을 보여주는 작가가 있다. 시니컬한 어조 속에 담뿍 담긴 애정과 희망으로 2분 15초 만에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켰던 정지향 작가가 바로 그 인물이다. 2014년에 등단한 정지향 작가는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토요일의 특별활동』, 「핸즈오프」 등의 작품을 펴내며 취업, 사랑, 가족, 폭력 등 청년들의 개인적인 혹은 그들을 둘러싼 환경에서 비롯된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해왔다. 정지향 작가는 청년들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삶 속 조각들을 입체적으로 엮어 세상에 내보이며 한 세대를 기록한다. 그 세대를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글을 읽는 도중 어느새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의 일상 한 부분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청년들의 많은 공감을 자아내고 있는 정지향 작가를 『대학신문』에서 만나봤다.

 

Q.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 등단했다. 대학 생활은 어땠나.

문예창작과는 실용적인 글쓰기 수업이 많다 보니 글쓰기 능력을 기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학과 분위기도 재밌었는데 문예창작과는 예술대와 인문대의 중간에 있는 학과라 그런지, 자유분방한 느낌이 강했다. 친구들과는 서로의 글을 읽는 사이다 보니 꼭 친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서로를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또 같이 작품을 하는 선의의 경쟁자이기도 하니 질투, 동경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오갔다. 이것들이 글의 재료가 되기도 했다. 

사실 그 시절에 대학 생활을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땐 지금보다 더 경험주의자라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장소에 가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교 수업보다 수업 후에 카페나 술집에서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읽은 것들을 얘기하고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얘기하는 게 더 좋았다. 휴학도 많이 했다. 등단작인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도 장편 소설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고 휴학을 한 후 쓴 글이다. 

Q. 등단작인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가 2분 15초 만에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어떤 마음이었나.

사실 그때 데뷔하게 될 줄 몰랐고 아직 그 과정을 밟고 있다고 생각했다. 등단하게 될지 모르는 상태로 덜컥 당선 전화를 받았을 때가 갓 스물네 살이 됐던 1월이었다.

그때는 이야기를 써서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이 두려웠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그의 에세이에서 자신이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를 적은 에세이가 서점에 깔려 계속 세상을 돌아다닌다고 상상하면 한 글자도 쓰기 싫다고 말했다. 등단하고 처음에는 나도 다자이 오사무와 비슷한 마음 때문에 무서웠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직 어리고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몰랐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글을 썼지만, 훈련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런 상태에서 내가 동경해왔던 세계에 무언가를 써 낸다는 것이 두려웠던 때가 있었다. 


 “자연재해를 입어 폐허가 된 것처럼 텅 빈 자취촌 골목 곳곳에 편의점들만 방공호처럼 덩그러니 남아 이십 사 시간 내내 불을 밝히고 있었어. ··· 요조와 나는 방학 한가운데서도 그 동를 어슬렁거리는 애들을 고아라고 불렀고, 거기엔 우리도 포함됐지.”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정지향, 2014)


Q. 거의 모든 작품의 계절적 배경이 여름이다. 그 이유가 딱히 있나.

낡은 비유이긴 하지만 청년을 소재로 글을 쓰다 보니 소설 속에 그려냈던 젊은 시절들이 여름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여름은 덥고 늘어지니까 모든 것들이 명확히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지 않나. 청년들이 모든 것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는 게 아주 뜨거운 여름날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름 소설들을 많이 썼다.

또 내가 여름을 좋아해서 그랬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여름을 좋아했던 게 여름에 대한 묘사들을 많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름을 묘사하면서 여름을 아주 자세하게 바라보고, 여름에 느끼는 감정들을 세세하게 생각하고 난 후 문장으로 옮긴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 여름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됐던 것 같다. 예컨대 겨울의 바람, 공기나 느꼈던 기분 등 모든 것들을 아주 세세하게 자신만의 문장으로 만들었다면 그 이후로는 그간 겪어왔던 두루뭉술한 겨울이 아니게 되는 거다. 글을 쓰는 건 무엇과도 정확하게 사랑하게 만드는 것 같다.

Q.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에서 민영의 음식, 「알레르기」에서 수주와 댄이 나눠 먹는 음식 등 작품 속에서 종종 음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한다. 먹스타그램도 운영하고 있는데 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

소설에 음식을 만들어 먹는 장면을 넣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라면을 대충 끓여 먹는 장면과 공들여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 장면이 같을 수 없고 다르게 표현되지 않나.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분위기나 장소의 느낌을 적어낼 때 음식을 만들어 먹는 걸 보여주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먹는 게 흐트러지면 삶의 전반적인 부분이 흐트러진다고 느낀다. 그래서 밥을 직접 깨끗하고 맛있게 만들어서 먹는 게 좋겠다는 취지로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열었다. 한 끼라도 음식을 잘 챙기고, 과일도 잘 챙기고, 채소도 잘 챙겼을 때 작업도 잘 됐고 삶의 면면들이 편안했다. 지금은 바빠서 잘 올리지 않지만 이런 삶을 추구하려고 한다.

Q. 성 정체성을 고민하면서도 하나의 답을 도출하지 않았던 여성 주인공들을 볼 수 있다. 모호한 상태로 남겨둔 이유가 궁금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특히 여성들이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경험이 많다고 느꼈다. 누군가에 대한 애정이나 동경이 사랑으로 불릴 수 있는지, 혹은 세상이 인정하는 연애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 고민하는 등의 경험 말이다. 그런데 이성애 중심의 사회에서는 성 정체성을 결정해야 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여러 다양성이 차단돼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인물들을 그려냈다. 사실 나는 자신의 젠더와 성 정체성을 넓은 스펙트럼에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퀴어와 비퀴어가 완전하게 나뉘어 있기보다는 넓은 스펙트럼 사이에 어떤 점으로 존재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기에 모호하게 표현했다.

Q. 여성이 겪고 있는 젠더 폭력을 자주 다루는 것 같다, 그 계기가 따로 있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 작가들이 젠더 이슈, 특히 여성을 향한 폭력을 얘기하는 소설을 쓰고 있다. 이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작업하고 있는 게 아니라 몇 년간 겪었던 충격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숨겨져 있던 여성을 향한 폭력들이 세상에서 발화되기 시작했을 때, 함께 공감하면서 그 이야기에 단단함이 생기게 됐다. 말하지 않고 혼자 가지고 있을 때는 힘이 없었던 목소리들이 합쳐지면서 ‘이런 목소리가 내 안에 있었구나’라고 알게 된 거다. 그렇기에 젠더 폭력을 말할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Q. 젠더 폭력 중에서도 예술계 내부의일을 다룬 작품이 많이 보인다.

문학계에서도 심각하게 곪아있던 문제들이 3~4년 전에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때 당시에 내가 동경해왔던, 사랑했던 세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몇몇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와 단단하게 얽혀있었다. 이를 ‘방관하고 감싸왔던 것이 저 세계의 본질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면서 많은 상처와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다른 폐쇄적인 구조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예술계 전반에 걸쳐서 비슷비슷한 일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Q. 그런 상황 속에서도 소설에서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건 예술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앞서 문학계 내부의 젠더 폭력에 상처를 받았다고 했는데 내가 사랑할 문학은 따로 있다고 깨달았다. 기존에 잘못 사랑했던 대상이라면, 그 잘못을 헤쳐나간 다음에 나만의 새로운 본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새로운 문학의 본질을 찾은 상태로 문학을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경험했던 것처럼 소설 속 주인공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런 이야기를 써나갔던 거다.


“그러니까 해명할 수 없는 울음을 울 때 사람은 조금씩 늙는다, 고. 수주는 과연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알레르기」, 정지향, 2018) 


Q. 앞으로 소설로 그려내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때까지 내가 관심 있게 지켜본 부분들, 삶 가까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소설로 써왔다. 

전체를 대표하진 못하더라도 이런 일이 존재했다는 걸 얘기하는 장르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요즘에는 자살생존자*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굉장히 높은 나라다. 그런데 자살을 얘기하는 건 금기시된다. 보통의 애도과정*에선 자신의 슬픔을 충분히 표현하며 주변에서 공감을 받지만, 자살로 지인을 잃는 사람들은 애도과정이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지 않나. 그렇다면 해결되지 못한 슬픔이 어디엔가 고여 있다는 뜻이니 이제는 말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관련된 작업을 하고 있다.

또 앞서 여름을 좋아했다고 말했는데 최근에는 여름이 무섭기도 하다. 기후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며칠씩 정상적이지 않은 비가 내리고,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이 두려워졌다. 당장 탄소 배출을 멈춰도 온난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겨우 기후위기를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맞다는 합의 정도밖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이 더욱 무섭게 느껴져서 기후위기를 소설로 써낼 생각이다.

Q. 소설가로서 최종 목표가 있다면.

글을 계속 쓸 수 있고 그 글을 누군가가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또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의 수상 후기에 썼던 ‘그날의 문장은 그날에만 쓸 수 있다’라는 문장처럼 그때마다 쓸 수 있는, 내가 해야 한다고 믿는 이야기를 지치지 않고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닿을 수 있으면 더더욱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자살생존자: 가족, 친구, 동료, 지인, 유명인사의 자살에 영향을 받는 고인의 주변 사람.

*애도과정: 가족과의 사별 때문에 극심한 인격적인 위기와 정서적 충격을 경험한 가족이 사별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경험하는 슬픔의 과정으로 비탄과정이라고도 함.

 

레이아웃: 이다경 기자 lid041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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