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전망을 짚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북 통신 연락선(통신선)을 복원하겠다고 발표한 지 닷새 후인 지난 4일(월), 통신선이 복원되며 남북관계에도 작은 청신호가 감지됐다. 최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전후로 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대학신문』은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로 정체됐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되짚어 보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을 고찰해 봤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정체 국면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올해 1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가 어떤 대북정책을 보일지에 관심이 쏠렸다. 바이든 행정부가 4월 30일에 발표한 ‘세심하게 조정된 실용적 접근법’(calibrated, practical approach)이라는 대북정책 검토 결과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트럼프 행정부의 ‘빅딜’(big deal)의 중간 지점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북한이 먼저 행동을 보이기 전까지 미국은 압박을 유지하며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공을 북한으로 넘긴 채 기다리는 비교적 소극적인 방식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빅딜은 북한이 가지고 있는 모든 카드를 공개하고 나서 이행 방안을 구상하자는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으로, 합의도 단계적으로 하자는 북한의 ‘단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과 부딪히면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는 주요 원인이 됐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이정철 교수(정치외교학부)는 “미국이 구체적인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밝히고 있지 않다”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와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시키지 못하면 북한 입장에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의 두 번째 버전이라는 인식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평정책연구소 정대진 평화센터장은 “미국의 제재 및 외교 병행 원칙과 북한의 선(先)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남북교류·협력, 한반도 평화의 중요한 열쇠

남북 간 신뢰 구축이 한반도 평화에도 선순환 흐름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은 필수적이다. 통일평화연구원 천해성 연구원은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에 종속돼있는 것으로만 인식돼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남북관계가 군사·안보적으로 긴장 국면이더라도 교류와 협력은 지속될 수 있다”라며 남북교류의 지속성을 강조했다. 이정철 교수는 “지속 여부의 불확실성이 큰 중앙정부 주도의 교류를 넘어 지자체 중심의 교류가 활성화돼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현시점에서는 어떤 협력을 시도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대북제재 국면에서는 백신이나 식량 지원 등 인도적 지원의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며, 지원 물량이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이정철 교수는 “백신은 북한 인구의 40~50%에 해당하는 정도, 쌀은 노무현 행정부 당시의 40만 톤 정도는 돼야 북한도 진정성이 있다고 받아들일 것”이라며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없다면 대북제재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상황만 관리하려 한다고 받아들인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인도적 지원으로 현물을 주는 방식을 넘어선 호혜적인 교류 모델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장석환 교수(대진대 건설시스템공학과)는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하천에서 하류를 점유하고 있는 한국이 북한의 상류 물길로 인해 피해를 겪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남북이 댐의 방류량을 협의함으로써 하천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이를 통해 한국이 얻는 이익을 하수처리시설로 북한에 보상할 수 있다”라는 취지의 공유하천 협력을 제안했다. 지식공유사업도 호혜적 교류 모델 중 하나다. 김태균 교수(국제대학원)는 “유엔 회원국이 제출해야 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행 보고서 준비에 북한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제재 하에서도 국제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북한의 노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며 해당 보고서를 남북 간 협의를 통해 공동명의로 제출할 것을 제안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전망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달성을 위한 평화프로세스는 대한민국 행정부가 지난 50년간 이어온 기조다. 그 과정에는 종전선언, 비핵화 협상, 평화협정, 북미·북일 국교 정상화 등의 과제가 남아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한국·북한·미국·중국의 4개국이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들어가는 입구다. 신성호 교수(국제대학원)는 “종전선언을 계기로 북미 간의 신뢰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종전선언 성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많다. 이정철 교수는 “내년 3월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하겠다는 성명 정도는 나와야 북한이 종전선언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종전선언을 하면 휴전협정과 관련성이 깊은 유엔사령부의 지위에도 영향이 갈 수 있다”라며 “한반도 유사시에 유엔사령부 관할 아래 한반도에 관여할 수 있는 일본은 종전선언을 반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대진 센터장은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정치적 이벤트로서 종전선언이필요하다고 인식한다면 불가능한 그림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시작 이후에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신성호 교수는 “비핵화에 관한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실제로 비핵화 과정을 구체적으로 검증하고 실현하는 과정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미/북일 국교 정상화 등의 과제를 해결하며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분석했다. 천해성 연구원은 “북한의 비핵화 과정은 군비 통제 협상과 병행돼야 한다”라며 “북한이 핵 개발 명분으로 자신들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군사 회담은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좁은 의미의 종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점차 확대될 수 있도록 긴 안목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번 통신선 복원을 계기로 유의미한 남북대화를 재개함과 동시에, 미국의 대북정책을 주시하며 미국과 북한의 입장의 간극을 메꿀 수 있도록 한국이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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