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원 뉴미디어부장
유지원 뉴미디어부장

예전부터 완벽이나 완전 같은 단어에 형태가 있다면, 그리고 도형이라면 필시 원일 거라고 생각했다. 타원이 아닌 우리가 흔히 아는 정(正)원의 형태 말이다. 이유를 찾자면 다른 도형들과는 달리 한 점으로부터 거리가 일정한 수많은 점들이 이어져있고, 곡선으로 이뤄진 형태가 이상적이라고 느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위치에서 보더라도 형태가 똑같기 때문일지도. 그만큼 어느 것이 완벽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야 하고, 어디서 보더라도 그 기준에 대해 동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그 자체로 딱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그 단어에 높은 기준과 많은 압박감을 눌러 담았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의 이미지는 그러했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미루는 것이 습관인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특히 대학 이전의 생활들을 되돌아보면 성적도 적당히, 인간관계도 적당히. 모든 부분에서 ‘적당히’를 따라갔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신문사 일을 하면서 스스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내가 꽤나 완벽주의자라는 것이었다. 삽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그릴 때, 사소한 부분이라 괜찮다고 넘겼지만 찜찜한 기분이 계속될 때, 남들이 하는 것보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때, 남들은 좋다고 하지만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할 때. 그런 순간순간이 모이고 모여 나 자신이 그 단어를 좇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노력과 정성을 쏟는 것. 겉보기엔 좋아 보이지만 기준선을 넘기기 위해 힘든 것들이 더 많았다. 삽화를 처음부터 다시 그려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고, 괜찮다고 넘겼던 부분들은 다시 볼 때마다 아쉬움, 자책과 함께 계속해서 나를 깎아내렸다. 혼자 일을 다 도맡아서 하는 것은 시작부터 끝까지 ‘어느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고, 남들은 괜찮다고 해도 스스로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는 누구보다 자신을 다독여야 하는데, 오히려 모든 모난 것들이 나를 향해 있었다. 높은 목표를 따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권태감과 피로, 비효율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낳았고 한없이 나를 저 밑으로 내몰았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과 뿌듯함은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끝없이 나에 대한 혐오감이 커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을 바르게 그리기’란 어려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당장 공책을 펴서 원을 그려도 조금씩은 끝이 안 맞거나 한쪽이 찌그러졌거나 위아래가 안 맞는, 마음에 안 드는 모양새들이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이유는 내가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모습들도 결국 그 원을 그리기 위한 연습이고 노력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완벽해지자는 말을 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실망스러운 결과물의 연속이더라도 그것들이 수많은 점들을 이뤄 언젠가는 원을 이룰 수 있고, 혹은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새로운 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하나에 집착하면 어렵겠지만 그런 모습인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는 것을 받아들이자. 나만의 원을 가지고 어쩌면 더 큰, 어쩌면 더 둥근 원을 향해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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