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우(소비자학과·19)
정현우(소비자학과·19)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를 향한 관심이 식을 줄을 모른다. 지난 8월 27일에 공개돼 많은 군필자의 심금을 울린 〈D.P.〉에 이어 9월 17일에 공개된 〈오징어 게임〉이 연이어 대박을 쳤다. 게다가 〈오징어 게임〉은 한국 드라마로서는 최초로 북미권 넷플릭스 1위를 달성하는 등 넷플릭스가 정식 서비스하는 모든 국가(83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며 전세계적으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 두 드라마의 흥행에는 많은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로 ‘넷플릭스’의 존재를 꼽고 싶다. 올해 초, 넷플릭스는 2020년에 한국 시장에서 벌어들인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인 5,500억 원을 한국 콘텐츠에 투자한다고 밝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 두 드라마는 넷플릭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정확히 증명해냈다.

탈영병 잡는 D.P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군대의 부조리를 낱낱이 까발린 〈D.P.〉는 기존 한국 콘텐츠 산업에서는 등장할 수 없는 생태교란종이다. 〈D.P〉 이전에 군대의 실상을 드러낸 콘텐츠를 찾으려면 2005년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뿐더러 이 영화마저도 국방부에 가짜 시나리오를 제출해 촬영 협조를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방 TV에서 〈D.P.〉를 볼 수 없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은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데스게임 장르를 채택한 작품으로 장르 특성상 폭력과 살인 묘사가 자연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2008년부터 이 작품을 구상해왔지만, 당시에는 이런 점이 발목을 잡아 한국 정서에 맞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투자를 받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위에 제약을 두지 않는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200억 원 가량을 투자받으면서 마음껏 작업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즉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콘텐츠 창작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역으로 지금까지 기성 미디어 콘텐츠 제작 환경이 얼마나 창작자들에게 열악했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제작비 충당을 위해 PPL을 억지로 삽입해 몰입이 깨지는 것은 다반사였고, 투자자와 방송사의 계속된 간섭으로 실패하지는 않지만 새롭지도 않은 진부한 콘텐츠들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 그간 한국 미디어 콘텐츠 산업 환경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만이 가진 감정과 감수성의 힘에 주목해 한국 시장에 적극적인 투자를 추진했고, 이를 통해 국내 콘텐츠 창작의 막혀있던 혈이 뚫리게 됐다.

반면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플랫폼이 과거 지상파 중심이었던 콘텐츠 시장을 새롭게 재편하는 현 상황이 마냥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본력의 부족으로 콘텐츠 IP(지적재산권) 자체 확보의 어려움을 비롯해 국내 콘텐츠의 자립도가 약화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드라마 제작비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내수시장으로는 제작비를 충당하기가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는 11월 12일에 또 다른 거대 글로벌 OTT 사업자인 ‘디즈니 플러스’도 국내에 들어올 예정인 만큼, 앞으로의 디지털 대전환 환경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글로벌 OTT 사업자와의 조우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은 이들을 아예 외면할 수는 없는 상황임을 인정한 후에 콘텐츠 IP를 완전히 넘기지는 않고 자립의 여지를 남겨두는 선에서 전략적으로 협업해나가야 할 것이다.

정리하자면 콘텐츠 창작자들에게는 자신의 창작 욕구를 마음껏 뽐낼 기회의 땅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콘텐츠 제작자들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싸움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바야흐로 한국 미디어 콘텐츠 생태계의 새로운 막이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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