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영 기자(사회문화부)
오소영 기자(사회문화부)

 

‘환승’, 연인이 헤어진 후 버스를 갈아타듯 바로 새로운 연인을 만드는 행위를 속칭하는 말이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환승연애〉는 이 용어에서 착안해, 전 연인(X)과 함께 출연해 새 사랑을 시작하거나 다시 옛 사랑을 찾아가는 다섯 쌍의 남녀 이야기를 그렸다. 엄연히 말해 환승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X와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파격적인 소재였던 셈이다. 세간의 뜨거운 관심과 동시에 자극적인 제목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환승연애>가 나에게 실제로 준 자극은 캡사이신같이 기분 나쁘게 맴도는 매운맛보다는, 학창시절 귀갓길에 자주 사 먹었던 다크 초콜릿 맛처럼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여운과 같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출연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추억들이 예쁘게 빛나 보였다. 첫 만남, 첫 데이트 등 X와의 좋았던 기억을 회상하는 그들의 표정은 마냥 밝았다.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헤어지기는 했지만, 달콤한 기억은 여전히 존재했고 이는 시청자들의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새로운 사람과 관계가 진전되는 장면들도 흥미진진했다. 오글거린다는 평가를 받으며 몇몇 시청자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된 멘트, 별로였던 데이트도 그 서투름 덕에 더욱 진정성이 느껴졌다. 마음을 주저 없이 전달하는 그들의 용감함을 보며 소심한 나와 비교도 해봤던 것 같다. 과거의 추억, 현재의 설렘에 두근거려하는 모든 장면들이 달큰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다만 시큰하고 씁쓸한 감정이 공존하는 이유는 출연자들이 느끼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나에게까지 전달됐기 때문일 것이다. 추억이 그대로 현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추억은 추억이기에 빛난다. 시간이 흐른 후, 이미 달라진 나와 상대방을 인정하지 못하고 예전처럼 되기를 바란다면 어긋나고 만다는 것을 〈환승연애〉는 잔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의식적으로 X를 밀어내던 한 출연진은 X가 다른 사람과 관계가 진전되고 나서야 여전히 남아있는 마음을 자각했다. “X의 옆자리가 남의 것이 되니 위기감이 들었다”라고 말한 그는 빠른 시간 내에 전 연인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옛 기억들을 강조하며 좋은 사람이 될 것을 약속했지만, 결국 재결합하지 못했다. 원망과 고마움이 범벅된 채로 그들은 두 번째 이별을 했고, X는 행복을 좇아 새로운 사랑을 찾아갔다. 그렇게 <환승연애>에서 가장 주목받던 전 연인들의 관계는 끝이 났다.

모두가 이어지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아 더 현실적인 결말이었다. 〈환승연애〉는 아름다운 영화보다는 감정의 밑바닥까지 내보이며 절박하게 매달리는 장면까지 여과 없이 담아낸 리얼리티 그 자체에 더 가까웠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자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기억은 달콤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선명해지는 쌉쌀함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하게 만들다니, 어떻게 보면 참으로 잔인한 프로그램이다. 내가 그들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차마 감당하지 못했을 부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3주 동안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한 출연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방송 기간 동안 많이 울고 웃었고, 깊이 배웠다. 나도 그들처럼 후회 없이 마음을 담고 또 흘려보낼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길 바라며, 출연자들에게 응원과 위로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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