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징병제를 파헤치다

6·25 전쟁 기간 중 도입된 징병제는 북한과의 갈등이 상존하고 러·일·중 3대 강국에 둘러싸인 특수한 안보 환경 속에서 70년 넘게 별다른 손질 없이 유지됐다. 인구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경제는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시기 징병제는 큰 문제 없이 운용됐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고도성장 사회에서 저성장 사회로, 인구 팽창 사회에서 저출산 사회로 변화했다. 변화한 시대, 그러나 변화하지 못한 징병제는 한계에 봉착하며 요란한 잡음을 내고 있다. 현행 징병제에 어떤 문제가 있고, 대안으로 논의되는 제도는 무엇이 있을까.

 

한계에 도달한 징병제

대한민국 병역제도는 징병제를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다. 상비군 53만여 명의 60% 이상을 징집병이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자원 입대한 장교와 부사관이다. 인구 천 명당 현역 군인 숫자가 11.6명으로 세계에서 12번째로 높은 탓에 병역판정검사의 현역 판정률이 80%를 상회한다. 병사 봉급은 최근 들어 가파르게 상승했으나, 여전히 병장 봉급이 최저임금의 50% 수준에 불과한 저임금 체계가 유지되고 있다. 높은 징집병 비율과 현역 판정률, 낮은 임금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적 징병제’는 여러 측면에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인권 문제는 개선되지 않는데=인권 문제는 한국적 징병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꼽힌다. 구타, 가혹행위, 성폭력 등 군 인권 문제가 근절되지 않는 배경에는 폐쇄적인 병영 환경과 후진적인 인권·성평등 의식과 같은 구조적 원인이 있다. 특별한 폭력 사건을 겪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출퇴근제를 시행하는 모병제와 달리 징병된 병사는 24시간 병영에서 지내는 탓에 기본적인 행동의 자유를 박탈당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징병 대상자의 현역 판정 비율이 급상승해 현역 복무에 부적합한 자원이 대거 현역 입영하는 상황도 인권 문제를 가중시키고 있다. 질병·장애 등 현역 복무가 어려운 사유가 있음에도 입대해야 하는 병사 본인의 인권이 침해됨은 물론, 일부 심리 이상자로 인한 군 내 폭력 행위가 꾸준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4년 선임 병사들이 후임 병사를 집단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이 있다. 당시 주범 이모 병장이 병역판정검사에서 심리 이상자로 분류, 공격성이 강한 것으로 경고됐음에도 현역 입영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큰 논란이 일었다. 

병역 자원 대비 현역 입영 비율 비교
병역 자원 대비 현역 입영 비율 비교

 

사건이 발생한 2014년에는 현역 판정률이 역대 최고 수준인 91%를 기록한 가운데 심리 이상자 2만 6천명, 입대 전 범법자 524명이 현역 입영한 것으로 집계됐다. 철저한 병영 생활 관리와 심리 상담 지원이 필요하지만 군의 비대한 규모로 인해 이마저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황수영 팀장은 “군 복무 환경이나 인권 실태와 상관없이 병력 자원이 계속 공급되기에 군이 인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라며 군 인권 실태가 개선되지 않는 배경을 지적했다. 

◇모두가 손해 보는 징병제=한편 현행 징병제는 남성에게는 역차별의 요소, 여성에게는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부과한 병역법에 대해서는 과거 몇 차례 헌법소원 심판이 청구된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여성은 신체적 특성상 병력 자원으로 투입하기에 부담이 크다’라는 이유로 수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현재의 남성 징병제가 가장 활발하게 학업 및 구직 활동에 전념할 시기인 20대 남성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한다는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양현아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남성 입장에서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박탈당하는 것은 억압이다”라며 현행 징병제의 부당함을 설명했다.

징병제가 남성을 넘어 여성에게도 불합리한 차별을 야기한다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일상에서 성차별을 ‘억울하면 여자도 군대 가라’라는 말로 합리화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남성 징병을 통해 형성된 남성의 희생에 대한 보상 의식이 성차별로 이어지는 것이다. 양현아 교수는 “현행 징병제는 남성과 여성 모두가 손해를 보는 구조”라며 “남성 징병제를 통해 여성은 군대 제도에서 타자화됐다”라고 꼬집었다. 남성만을 징병 대상자로 규정해 여성의 사회적 발언권이 약화된다는 설명이다. 양현아 교수는 이어 “군 복무를 통해 자기 방어와 무력 사용 등 여러 능력을 학습할 기회에서도 여성은 배제된다”라며 현행 징병제에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남성 우월주의적인 문화의 출발점이 군대”라며 “남성만 모인 군대에서 왜곡된 서열주의를 학습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극단적인 남초 집단인 군대에서 학습된 서열주의가 사회에서의 남성 우월주의적 문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경제, 국방, 사회에도 악영향=경제적 손실과 병사 숙련도 저하, 사회적 갈등 유발 등도 문제시된다. 이상목 교수(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는 “병사들의 학력·경력 단절으로 기회비용이 1인당 4,169만 원, 연간 10조 1천억 원에 달한다”라며 “징병제는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경제적 손실을 입히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진호영 예비역연구위원(예비역 공군 준장)은 “짧은 복무 기간으로 인해 병사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라며 “모병제보다 병사의 질이 저하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군 장비가 갈수록 첨단화되며 군인 양성에 필요한 기간이 크게 늘어났지만, 복무 기간 단축으로 육군 병사의 훈련 기간은 5주로 줄어들었다. 이는 20주 과정인 미 육군 보병 훈련의 25%에 불과해, 징집병이 전시에 제대로 된 전투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울러 징병제가 유발하는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도 지적된다. 이상목 교수는 “병역 부담을 두고 남성과 여성, 현역 입영자와 대체복무자, 병역 면제자 사이의 갈등이 심각하다”라며 “이 같은 갈등은 현재의 병역제도가 결코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징병제의 ‘아킬레스건’은 인구 감소=무엇보다 징병제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병역 자원 감소다. 저출산 현상에 발맞춰 국군은 상비 병력 숫자를 줄이고 있다. 2022년까지 상비군을 50만 명으로 줄이겠다는 ‘국방개혁 2.0’에 따라 2010년 65만 명에 달하던 국군 상비군은 2017년부터 약 12만 명을 감축해 2021년 현재 53만 명 수준으로 축소됐다. 문제는 그 속도와 감축 규모가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은 2025년부터 군 징집 인원이 부족해져 2039년에는 무려 8만 7천 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더불어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각종 기관의 전망치를 하회하는 0.84명으로 잠정 집계된 가운데 병력 자원 감소 문제는 더욱더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진호영 연구위원은 “2040년이 되면 군 병력 30만 명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며 “징병제로는 변화하는 인구 구조에 대응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변화하지 않은 병역제도가 인구 감소에 직면하며 이제는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여성 징병제, 현실적 대안으로 보기에는

◇여성 징병제도 피할 수 없는 문제=징병제의 한계가 드러나며 일각에서는 여성 징병제(남녀 징병제)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거 여성 징병제 도입 요구가 주로 남성들의 ‘역차별 정서’에 기인한 것이라면, 최근에는 현실적인 인구 감소에 대응한다는 이유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 징병제가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징병 대상을 여성으로 확대하면 단기적으로 병역 자원을 확보할 수 있지만, 2040년 이후에는 또다시 병력 자원이 부족해진다. 남성과 여성을 모두 징병하고, 여성의 현역 입영 비율이 남성과 동일하다고 가정해도 연간 징집 예상 인원은 2045년 29만 명으로 감소하며, 남성과 여성의 평균적인 신체 능력 차이를 감안하면 병력 50만 명 유지에 필요한 연간 징집 인원 27.4만 명에 미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병역 자원 부족 문제를 유보하는 것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

여군 성폭력 피해가 근절되지 않는 점도 여성 징병제 도입이 어려운 이유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 박정이 객원연구위원(예비역 육군 대장)은 “군 내부에서 남녀 평등 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라며 “여성 의무 복무를 위한 여건이 성숙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양현아 교수는 “군대 내 성폭력 문제나 인권 문제, 징병제 자체의 여러 모순을 그대로 방치한 채 징병 대상에 여성을 참여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여성 징병제를 실제로 시행 중인 국가의 병역 환경이 우리나라와 크게 차이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평화페미니즘연구소 김엘리 소장은 “장기적인 안보 전략의 측면에서 여성 징병제를 논의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라면서도 “여성 징병제를 시행하는 국가들은 대체 복무를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등 징병제의 형태가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2016년 여성 징병제를 도입한 노르웨이는 입대를 위해 설문, 필기검사, 체력검사, 건강검진, 면접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탓에 입영 대상자 6만여 명 중 8천~1만여 명만 현역 입영한다. 상비군 규모 역시 전체 인구의 0.4%인 2만 4,000여 명에 불과하다.

아울러 여성 징병제가 징병으로 인한 청년의 학업·경력 단절을 전혀 해결하지 못한 채 오히려 동일한 어려움을 여성에게 지운다는 문제도 있다. 김엘리 소장은 “여성 징병제는 대단히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며 “징병제가 야기하는 청년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성을 징병할 것이 아니라 청년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징병제가 야기하는 학업·경력 단절 문제는 여성이 군대를 가지 않아서가 아니라, 남성이 군대를 가야 해서 발생하는 만큼 징병제의 구조를 손질하거나 남성의 손실을 직접 보상할 수 있는 대책 등을 마련해 해결해야 한다. 

◇유의미한 여성 징병제 논의는 전무=현행 징병제의 대안으로 부적절하다는 점에 더해, 정치적 부담 역시 여성 징병제 현실화의 걸림돌이다. 정책을 실제로 추진할 수 있는 거대 정당이나 행정 부처가 정치적 부담과 책임을 모두 짊어지고 여성 징병제를 주장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 탓에 실제로 정치권에서 여성 징병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제안되고 있는 병역제도 개선안은 모병제에 가깝거나 현행 징병제를 손질한 형태에 가깝다. 예컨대 박용진 의원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남녀평등복무제’는 현역 군인은 모병제로 모집하되, 남성과 여성 모두를 대상으로 40~100일 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실시해 대규모의 예비군을 운용하는 방안이다. 대조적으로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제안한 ‘여성희망복무제’는 징병제의 큰 틀을 유지한 채 여성도 희망자에 한해 사병으로 복무할 수 있게 하고, 대신 군 복무에 대한 보상을 대폭 강화하는 방식이다. 

쟁점은 다시 ‘모병제 도입’으로

◇모병제, 징병제 대체할 수 있나=모병제 도입을 골자로 한 ‘남녀평등복무제’와 징병제 유지를 골자로 한 ‘여성희망복무제’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병역제도 개선에 대한 논쟁은 다시 ‘모병제 도입 찬반론’으로 이어진다. 모병제 전환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모병제의 특성상 상비군 감축이 동반되기 때문에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가 나왔지만, 징병제를 유지해도 병역 자원 감소로 인해 상비군 감축이 불가피한 현실이 가시화되며 이참에 모병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모병제는 징병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군인의 처우와 군대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같다면 모병제 시행 시 병력 모집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국방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모병제 국가의 인구 대비 병력 비율은 평균 0.4% 수준인데, 이를 우리 인구에 대입하면 모병제로 모집할 수 있는 군인은 약 20만 명에 불과하다. 모병제 도입 찬성 측에서 군 감축 목표로 제시하는 30만 명이라는 숫자와도 큰 차이가 난다. 박정이 연구위원은 “독일과 일본 등 모병제 국가들은 병력 자원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라며 모병제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독일, 영국, 일본 등 냉전 종식 이후 모병제를 도입한 국가들은 심각한 병력 자원 부족을 겪고 있는데, 증가하는 안보 위협으로 인해 상비군을 증원하려 해도 입대 희망자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군인 처우의 획기적인 개선을 동반하는 모병제가 학업·경력 단절로 인한 기회비용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을 넘어 부가적인 효과도 낼 것으로 기대된다. 진호영 연구위원은 “모병제로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대량으로 창출할 수 있다”라고 예측했다. 김대일 교수(경제학부)는 “세금으로 충당되는 군 급여의 인상 효과가 시장 소득이 낮은 계층에 집중돼 소득 불평등이 개선된다”라며 “시장에서의 생산성에 따라 군 입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자원 배분의 효율성도 올라간다”라고 설명했다. 군의 실질적인 전투 능력이 증대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상목 교수는 “소부대 지휘관이 병사 관리가 아닌 교육 및 훈련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라며 “모병 군인은 동기 부여 측면에서도 징집된 군인보다 우위를 점해 개인 전투 능력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라고 덧붙였다. 

인권 문제 해소 측면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군 인권 문제가 모병률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군 당국이 인권 문제 개선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모병제를 도입하면 군 문제가 소수 군인과 그 가족의 문제로 축소돼 군 인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낮아지고, 군의 폐쇄성이 강화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황수영 팀장은 “현재는 대다수 남성이 입대하기 때문에 군 인권 문제가 모두의 문제로 인식된다”라며 “모병제 전환 시 군대가 인권 사각지대가 될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대세는 ‘징병-모병 혼합제’=이처럼 모병제가 징병제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고, 필요 병력을 전부 모병으로 충당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모병제와 징병제를 절충하되 의무병 비율을 줄이는 형태의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황수영 팀장은 “지금 당장 모병제로 전환하는 것은 어렵다”라며 “30만 명 수준으로 병력을 감축하고 간부 비율을 대폭 늘린다면, 의무병을 10만 명 정도로 줄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진호영 연구위원은 “대만은 모병제로 전환하는데 10년이 걸렸다”라며 “일정 기간 징병-모병 혼합제를 거쳐야 완전한 모병제로 전환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점차 완전 모병제로 이행하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적정 병력 규모와 감축 속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진호영 연구위원은 현역 30만 명과 예비군 40만 명을 적정 병력으로, 2030년대 초반을 감축 완료 시기로 제시했다. 지금처럼 유명무실한 예비군이 아닌 전시 즉각 동원이 가능한 실전적 예비군을 편성해 줄어든 상비군을 보완하자는 것이다. 반면 현 시점에서 모병제 도입은 불가능하다고 피력한 박정이 연구위원은 “2040~2050년이 되면 상비군을 35만 명 선으로 감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라면서도 “성급한 병력 감축은 위험하다”라고 강조했다. 전시 북한 지역의 안정화 작전을 위해 일정 규모의 보병이 필요하고, 군 장비를 아무리 기계화·첨단화해도 병력을 감축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 들어 반복되고 있는 해안 경계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력 부족인 바, 신중한 병력 감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병역제도와 함께 ‘군대’가 변해야 한다

◇군대가 바뀌지 않으면 병역제도 바꿔도 소용 없어=모병제와 징병제를 비롯한 병역제도를 둘러싼 논의는 대거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군대 자체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병역제도를 어떻게 개편해야 할지도 중요하지만 군대라는 조직 자체에 대한 혁신이 동반돼야 새로운 병역제도가 기존 징병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군인 처우를 파격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현재의 군인 처우로는 모병제 도입은 물론, 군 당국이 목표로 하는 간부 비중 확대도 달성하기 어렵다. 군의 계획대로 간부 비중을 늘리려면 우선 간부 충원율을 높이기 위한 적절한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 모병제 전환 시에는 보다 적극적인 처우 개선이 가능하다. 진호영 연구위원은 “모병제 전환 시 병사의 최저 봉급이 9급 공무원 수준이 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라며 “병영 생활 역시 선진국처럼 근무 시간에만 일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모병 군인에 대한 각종 혜택도 강화해야 한다. 진 연구위원은 의무 복무 기간을 채운 뒤 전역한 군인에게 공무원, 소방, 경찰 등 국가직 시험에 5%의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과거 문제가 됐던 ‘차별 취급의 비례성’을 고려해 구체적인 가산점 부여 방식을 세심하게 조절하고, 남성과 여성 모두 지원 가능한 간부에 한정해 도입하거나 완전 모병제와 함께 도입한다면 위헌 논란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군인 인권 역시 병역제도 개선과 별개로 옴부즈맨* 제도 도입 등 감시 체계 구축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

군을 성평등 조직으로 바꾸는 작업도 필요하다. 우선 여군 비중을 늘려야 한다. 국방부는 2022년까지 여군 비중을 8.8%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여군 비중이 17%에 달하는 미군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울러 모병제로 전환하지 않더라도 여성이 병사로 자원 입대할 수 있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양현아 교수는 “병사가 전원 남성인 상황에서 여성 간부의 조직 장악력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라며 여성 병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다 많은 여군이 고위직으로 진출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도록 군 내 ‘유리 천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아가 군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와 남성주의적 사고를 개선하기 위한 군의 적극적인 의지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군이 진정한 성평등 조직으로 거듭난다면, 군 내부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군 복무를 통해 왜곡된 젠더 인식이 재생산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재고를 위해, 막대한 인적·물적 자산을 가진 군의 역할을 재난 안보와 사이버 안보 등 비군사 안보 영역으로 확장해 군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 및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군사 안보라는 본연의 역할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군이 비군사 안보를 함께 담당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박정이 연구위원은 “산불 진화에 군 헬기를 투입하는 등 군의 숙련 인력을 사회적 재난 극복에 활용할 수 있도록 통합적인 절차를 마련할 수 있다”라고 예시를 들었다. 군 인력의 전문성 개선도 중요하다. 최근 국가 핵심 연구 시설과 방위사업체, 주요 민간 기업이 대거 해킹당하는 등 사이버 안보상 취약점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역량과 조직을 강화해 미국 사이버사령부처럼 군 내부를 넘어 공공기관과 주요 민간 기업에 대한 전방위적 사이버 방위를 수행케 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이와 같은 변화를 통해 전문화된 지식과 기능을 보유한 고급 인력의 집합체로 변모할 수 있으며, 직업 군인은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에 상응하는 명예와 위상을 가진 직업이 될 수 있다. 

현행 징병제의 한계가 명확한 상태에서, 우리 사회는 병역제도를 어떻게 재기획할 것인가라는 중대한 문제에 직면했다. 새로운 병역제도는 안보를 굳건히 하면서도 형평성에 문제가 없어야 하고, 인구 감소 시대에 지속가능해야 한다. 징병제와 모병제 등 다양한 선택지를 열어두고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아울러 병역제도를 바꾼다고 현행 징병제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병역제도와 국군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옴부즈맨(Ombudsman) 제도: 인권 보호를 목적으로 권리 구제 권한과 책임을 가진 독립 기구를 설치하는 제도.

 

삽화·인포그래픽: 김윤영 기자 kooki1026@snu.ac.kr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레이아웃: 이다경 기자 lid041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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