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재 강사(국어국문학과)
김효재 강사(국어국문학과)

 

우리 글의 명칭은 ‘한글’이다. ‘한글’ 명칭의 작명자와 관련한 여러 설이 있고, 이를 둘러싼 국어학자들의 논쟁도 있다. 그러나 국사학자 정재환은 ‘한글’이라는 명칭의 보급과 정착에 주시경 선생의 유지를 따르는 그 제자들의 활약이 컸다고 한다. 1926년 한글날이(처음 명칭은 ‘가갸날’이었으며, ‘가갸글’은 한글의 또 다른 명칭이다) 제정되고, 신문지상에 ‘한글’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주시경 선생의 ‘조선어강습소’를 거쳐 간 제자들의 공이었다고 한다. 새삼 주시경 선생 제자들의 공을 치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초점은 ‘앎’과 ‘배움’에 있다. 

함석헌 선생은 1919년 3·1운동으로 평양 공립학교를 그만두고 오산학교로 전학했을 무렵을 떠올리며, “거기에서 처음으로 ‘한글’ ‘배달’ ‘한배’라는 말을 배웠”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일제 식민지 시기 공립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것을 당시 대표적인 민족학교였던 오산학교에서는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이후, 식민지에서 ‘국문(國文)’은 더 이상 우리 말과 글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런 것도 모르고 대학까지 다녔다. 부끄럽지만 매년 돌아오는 한글날은 공식적으로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공휴일’ 이상의 의미가 아니었고, 딱히 ‘한글’이라는 명칭의 의미나 유래를 궁금해했던 기억도 없다.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과 제자 원리를 학교에서 배웠지만, 어째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을 ‘한글’이라고 부르게 됐는지, 무슨 뜻인지를 가르쳐주는 어떤 어른도, 선생님도 만나지 못했다.

누가 작명했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내가 ‘한글’이라는 명칭의 의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국어학자 고영근 선생님의 책에 인용된 한산 이윤재의 「한글강의」를 통해서였다. 이런 정보에 대해 낡은 ‘민족주의’적 유산이라 비판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쓰는 이 글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던졌던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새겨놓은 뜻이 있다. 그들이 남긴 것은 어떤 정론적 입장이 아니라, 뜻과 정신이다. 한글날을 맞아 ‘한글’이라는 명칭이 지닌 의미를 되새길 기회를 갖는 것도 의미가 클 것 같다. 1929년 9월 잡지 「신생」에 실린 「한글강의」에 이윤재 선생이 새겨둔 내용을 여기에 옮겨 본다.

한글이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이생기기는지금으로 십오년전에돌아가신주시경(周時經) 선생이 「한글배곧」이란것을세우니 이것이「조선어강습소」란말입니다. 그뒤로조선글을「한글」이라하게되어지금까지 일컬어 온 것입니다. 한글 두 글자의 뜻은 이러합니다. 역사(歷史)를 상고하면 조선 고대민족이 환족(桓族)이며 나라의 이름이 환국(桓國)이었읍니다. 「환」의말뜻은 곳「한울」입니다조선사람의 시조 단군(檀君)이 한울로 불어나려 오시었다는 뜻으로 모도 한울로써 명칭이 된것입니다. 그래서「환」은「한」과같은 소리로 한울의 줄인말이되었고그만「한」이란것이 조선을 대표하는 명칭이 된것입니다. 고대에 삼한(三韓)이란 명칭도 이에서 난 것이요 근세에 한국(韓國)이란 명칭도 또한 이에서 난 것이었습니다. 또「한」이란말의 뜻으로 보아도「크다」(大)「하나」(一)라「한울」(天)이란 말로 된것입니다. 한글은「한」이란겨레의 글,「한」이란나라의 글 곳 조선의 글이란 말입니다. (이윤재, 「한글강의」(1),『신생』2권 9호, 1929.9.)

국문학자 신범순 선생님은 신채호의 『꿈하늘』(1916)에 삽입된 「가갸풀이 노래」를 해석하면서, 문자를 배우는 것이 집 짓는 행위, 곧 새로운 세계의 창조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 바있다. 글자를 배우는 것이 곧 “집을 짓는 행위”에 비견되는 것은 ‘가갸풀이’ 혹은 ‘한글풀이’ 노래의 기본 주제이자 오래된 형식이라고 한다. ‘한글’의 ‘한’에 새겨진 ‘한울’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의지와 존재의 상승을 꿈꾸며 먼 훗자손에게 전해주려던 옛사람들의 큰 뜻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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