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빈(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이수빈(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불행이 없다면 행복할까? ‘행복하다’라는 말은 ‘불행하지 않다’라는 말과 같은 뜻일까? 실제로 많은 이들은 지금도 행복을 위해서 불행은 사라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불행에 대한 기피는 때로는 자신의 불행을 다른 사람의 불행과 비교하게 하기도 한다. 자신의 삶에는 없는 불행을 겪는 이를 보면서 안도하고, 자신의 삶은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행복과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비교하는 것만큼이나, 나의 불행과 다른 사람의 불행을 비교하는 일은 삶을 이해하는 잘못된 방식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한 소설가는 오히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단정 짓지 말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행복에 대한 과도한 집착, 불행은 곧 행복의 실패라는 생각이 오히려 우리가 행복으로부터 멀리 도망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이 오히려 나쁜 일이 될 수도, 나쁜 일이 오히려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우리의 삶에 반드시 일어나고야 만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그토록 닿으려 애쓰는 ‘불행 없는 삶’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과도 같은 것이다. 불로초를 쫓았던 진시황이 행복한 결말을 맞지 못했듯, 불가능한 허상을 좇는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운명처럼 맞게 되는 ‘불행한 삶’을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 ‘불행’에 대해 생각하기 쉽지 않다. ‘행복하지 않다’ ‘슬프다’ ‘아프다’와 같은 말들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나의 삶을 ‘행복해 보이도록’ 만들기 위한 수많은 위로가 날아든다. 얼굴도 본 적 없는 누군가의 더 무거운 아픔과 슬픔, 고통이 내 불행의 비교 대상이 돼 순식간에 나의 삶을 행복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런 위로를 받으며 순간적으로 내 삶은 그들에 비하면 행복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지만, 이때 우리는 행복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인생은 즐겁고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갖고 내 인생의 불행을 타인의 불행과 비교하며 슬쩍 외면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같은 인생을 사는 이가 없는데, 어떻게 불행의 경중을 따질 수 있단 말인가. 행복만큼이나 불행도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는 안 되는, 자기 삶의 고유한 과정이다. 불행한 순간에는 내 삶을 행복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슬프고, 아프고, 두렵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고통을 치료하고, 슬픔을 위로받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홍길동도 아닌데 자기 삶의 불행을 불행이라 부르지 못한다면 그다음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먼저 인정해야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꿀 방법에 대해 제대로 고민할 수 있다. 행복은 굴곡 없는 삶이 아니라 ‘아플 때 치료받고 슬플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삶’이다. 자신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방법을 찾아나가면서 스스로 행복해지려 애써야만 비로소 행복한 삶을 발견할 수 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서 행복한 삶을 논하는 이들의 행복은 진실하지 않다. 거짓 행복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모두의 행복이 같은 이미지로 인식된다. 각자의 인생에는 여러 일이 각자 다른 강도로 일어나고, 그 일을 해결하는 방식과 그 일을 돕는 사람들도 모두 제각각인데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같은 행복을 이룰 수 있다는 헛된 꿈을 꾸게 돼버리고 마는 것이다. 단일한 행복은 결국 여러 매체를 통해 퍼지면서 사람들이 점점 더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없도록 만들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무한 경쟁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사람에게 개성이 있는 것처럼, 행복과 불행에도 개성이 있다. 모두가 같은 행복을 꿈꿀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각자의 불행이 불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치료받고, 위로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위해 용기 내어 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때로는 아픔, 슬픔,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기적과 행운이라는 이름으로 인생을 한 땀 한 땀 수놓아 ‘행복한 삶’을 완성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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