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차별금지법 제정 현황과 논란을 파헤치다

우리 헌법은 ‘누구든지 성별·종교·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않는다’라고 명시하며, 이를 세부 법을 통해 구체화한다. 차별금지법은 인종·성별·장애 등을 이유로 경제적·사회적 영역 등 특정 영역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다루는 개별적 차별금지법과 모든 종류를 아우르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2007년부터 3차례에 걸쳐 입법 시도됐으나,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14년간 국회에 계류돼있다. 지난 6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을 넘어서며 해당 법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됐지만 해당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해 법안의 제정 여부는 불투명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과 법 제정을 막는 요인은 무엇일까?

 

차별금지법이 걸어온 길

차별금지법은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권고로, 2007년 12월 처음 국회에 제출됐다. 이후 국회에 7개의 차별금지 관련 법안이 제출됐으나 번번이 논란에 휩싸이며 입법에 실패했다. 현재 국회에 발의돼 논의 중인 차별금지법은 지난해 6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올해 6월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 그리고 올해 8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의 ‘평등에 관한 법률안’과 권인숙 의원의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으로 총 4개다.

국내에서 발의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고용·교육·재화·행정 등 공공성이 매우 짙은 영역에서의 차별에 초점을 맞춘다. 희망을만드는법 조혜인 변호사는 해당 법이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비합리적인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는 최소한의 영역에 초점을 둔다”라며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대해 그것의 합리성을 따져 비합리적인 대우를 고쳐나가는 것이 국가의 책무임을 규율한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차별행위 발생 시 △인권위 조사 및 소송지원 △법원의 차별중지 등 임시조치 △이행판결과 이에 따른 배상금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나아가 인권위를 통해 △피해의 원상회복 등 구제조치 이행에 대한 시정권고 △권고 불이행에 따른 시정명령 △시정명령 불이행에 따른 3천만 원 이하 이행강제금 부과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을지 전망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치계는 여전히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미비해 입법을 서두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등에 관한 법률안’(평등법, 박주민 의원 대표발의)에 대한 국민 반대 청원이 10만 명을 넘어서는 등 반대 여론 또한 거세다. 

 

법 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기본권 침해 가능성에 대해 지적한다. 음선필 교수(홍익대 법학과)는 “평등법 제4조 제6항의 이른바 ‘차별광고’ 규정*을 예로 들며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학문·종교·언론·양심·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음 교수는 “광고 형식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사회적 문제점을 지적·비판하는 행위가 차별로 간주돼 금지될 것”이라며 “이는 학문·양심·종교의 자유를 뒷받침하는 핵심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각자의 권리를 조화하기 위한 법이라는 의견도 팽팽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일방적으로 한 측의 자유권을 침해하지 않으며, 여러 기본권을 양립 가능한 범위에서 보호한다는 것이다. 조혜인 변호사는 “차별금지법은 기득권이 그동안 합리성을 따지지 않고 행한 차별 행위에 대해 재고하자는 것”이며 “업무와 종교가 연관이 없음에도 직장에서 종교를 이유로 차별받는 경우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피해자는 노동권과 종교의 자유를 모두 보호받을 수 있다”라며 해당 법의 권리 보호적 측면을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남녀고용평등법 등 개별법의 존재를 근거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3월 보도된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지난달 보도된 페미니즘에 대한 의견을 물으며 마스크를 벗으라고 요구한 면접에서 나타나듯 개별법만으로는 차별을 막기 어렵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장예정 공동집행위원장은 “남녀고용평등법이 규정하는 ‘모집 과정에서의 성차별’은 채용 공고로 한정돼 면접에는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라며 “이처럼 수많은 차별이 개별법의 테두리 밖에 놓여 구제되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짚었다. 또한 개인의 정체성이 다양해 특정 개별법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례도 빈번하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장애인 여성’이 경험한 직장 내 차별에 대해 장애인차별금지법·파견법·남녀고용평등법 중 무엇을 적용해야 할지 모호해 차별행위의 시정이 어려울 뿐 아니라 사업주가 법의 허점으로 빠져나갈 여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이는 차별을 금하는 영역인 ‘고용’이라는 큰 범위로 분류돼 보호받을 수 있다. 

차별 금지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장예정 공동집행위원장은 “해당 법이 인권위라는 독립적인 기구의 존립 근거이자 그 역할을 간단히 규정하는 조직법에 불과하다”라며 “비어있는 부분이 많아 차별을 효과적으로 시정하는 역할을 하기 어렵다”라고 짚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5조에 따라 인권위의 조사는 국가기관의 기능 수행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진행 중인 재판·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부당하게 관여하면 안 된다. 또한 인권위의 조사를 통해 차별행위로 분류되더라도 권고 결정 등의 구제조치만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유구한 반대 근거는 종교적 교리를 이유로 한 반대다. 지난달 28일 인천시 교계는 공청회를 열어 성적 지향 조항에 대해 “지역구 국회의원과 시민들에게 해당 법안의 문제점을 알려야 한다”라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종교계는 줄곧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비춰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것이 일부 보수 개신교계의 주장이 과대 대표된 것이라고 말한다. 송지우 교수(정치외교학부)는 “보수 개신교계의 이와 같은 성경 해석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성소수자의 권리를 선도적으로 인정하는 서유럽 국가들이 한국보다 개신교 전통이 강하다는 점에서 성서 해석의 다양성이 증명된다”라고 짚었다. 정재현 교수(연세대 신학과)는 성서의 역사적인 상황과 현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문화 상대주의적 태도를 바탕으로 성서를 해석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정 교수는 “성경에 남녀차별·인종차별을 용인하는 구절이 존재하지만 오늘날 그 내용을 그대로 따르지 않듯이 동성애에 대한 부분 역시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라며 “역사 비평적 관점에서 봤을 때 성경에 동성애를 금지하는 구절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차별금지법 논의가 나아갈 방향

이처럼 14년간 포괄적 차별금지법 논의가 이어지면서, 그 방향성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논의의 방향성이 지나치게 성소수자 관련 조항에 편향돼있어 법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뒷전이라는 것이다. 조혜인 변호사는 “동성애에 대한 반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기본권을 제한한다’와 같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일반적 비판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법적·사회적 측면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관한 보다 넓은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먼저, 차별금지법이 규정하고 있는 ‘합리적인 차별’의 정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교육부는 지난 6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학력은 합리적 차별 요소’라는 입장을 밝혀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가 14년째 계속돼왔음에도 여전히 공적 영역에서조차 ‘합리적인 차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음선필 교수는 합리적인 차별의 기준에 대해 “비교대상 간 차이가 가치판단에 따른 것이 아닌 본질적·선천적이거나, 개인의 책임으로 볼 수 없는 불가피한 사유에 기인한 것”이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차별금지법안 제52조와 평등에 관한 법률안 제37조 1항 등이 규정하는 가해자의 입증 책임에 대해서도 보다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안 제52조는 ‘차별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피해자가 주장하면 그러한 행위가 없었다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점은 상대방이 입증해야 한다’라며 가해자의 입증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장예정 공동집행위원장은 “차별을 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피해자보다 직급이 높은 경우가 대다수”라며 “입증 책임의 배분 조항은 이런 불리한 지형을 완화하기 위한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가해자의 입증 책임 조항이 불법행위책임에 대해 원칙적으로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는 민법과 상반된다며,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차별행위가 없었다는 부작위 증명을 하거나 차별의 정당한 사유를 입증하지 못하면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논란이 제기됨에도 해당 쟁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첫발도 떼지 못한 상황이다.

이처럼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데는 14년째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은 국회의 탓이 크다. 조혜인 변호사는 “외국의 경우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판례가 축적돼 차별에 대한 기준을 정립하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기준이 구체화 및 갱신되고 있다”라며 “이에 반해 한국은 논의의 바탕 자체를 만들지 못해 합리적·불합리적인 차별에 대한 대화가 진행되지 못했다”라고 짚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모든 사회 구성원을 도덕적으로 동등한 인격체로 규정해 의미 있는 삶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도모하는 법이다.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 데 법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회는 이러한 이상에 근접하지 못했다. 차별 없는 사회,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위해 이제는 국회가 답할 때다.

 

*차별광고 규정: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분리·구별·제한·배제·불리한 대우를 표시 또는 조장하는 광고행위를 차별로 보는 규정.

 

인포그래픽: 김윤영 기자 kooki1026@snu.ac.kr

 

▼ 링크를 통해 법안 전문을 확인해보세요.

장혜영 의원 안 

http://likms.assembly.go.kr/bill/billDetail.do?billId=PRC_N2K0Y0Y6O2J9K1Y0N4I2J2X1D0Y0A5

이상민 의원 안

http://likms.assembly.go.kr/bill/billDetail.do?billId=PRC_A2N1K0H6R1C6N1S2P4G9X5J9R4V7F8

박주민 의원 안

http://likms.assembly.go.kr/bill/billDetail.do?billId=PRC_D2S1N0F8X0O9W1T6U3A4N5W6I2X5A3

권인숙 의원 안

http://likms.assembly.go.kr/bill/billDetail.do?billId=PRC_L2J1M0V8X3T1R1F5C2I7L5X7L6W5M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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