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 『아픔이 길이 되려면』

‘○○사우나 방문자는 코로나19 검사를 받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자와, 연이은 사우나 집단 감염. 한번쯤 방역을 철저히 해야 할 시기에 왜 사우나를 가는지 의문을 품어봤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온수 사용이 어려운 취약계층이나 샤워실이 없는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 등, 누군가는 불가피하게 사우나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이들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노출될 확률을 높인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김승섭은 이와 같이 사회가 개인의 건강과 관계 맺는 방식을 사회역학의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저자는 질병이 발생한 ‘원인의 원인’을 거미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우리의 질병은 역사적·정치적·경제적 토대 위에 세워져 복합적으로 얽힌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데, 이를 ‘원인의 그물망’이라고 한다. 저자 김승섭은 하버드대 낸시 크리거 교수의 연구 「역학과 원인의 그물망: 거미를 본 사람이 있는가?」를 인용하며 그물망을 만든 거미가 누구인지, 그 그물망을 엮어낸 역사와 권력의 정치는 어땠는지를 사회역학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김승섭은 ‘나는 기억하지 못해도, 내 몸은 질병을 기억하는 현상’에 집중한다. 그는 조사 중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겪었냐는 질문에 ‘차별 없음’이라고 답한 여성들보다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변한 여성들의 실제 건강 상태가 더 나빴고, 학교 폭력을 겪고도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응답한 남학생의 우울 증상이 가장 심각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차별받았다고 인지하기보다 차별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심리적으로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원인을 회피하는 현상이 장기적인 건강에는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는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진다”라며 우리 몸은 질병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 병으로 다가온다면=질병은 우리의 일터로부터 비롯되기도 한다.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는 소방공무원과 전공의에게도 이는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이들은 자신의 아픔을 관리하는 데 더 취약하다. 업무 중 부상을 입은 소방공무원 8명 중 7명은 공상 처리*를 신청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기관의 행정 평가상 불이익이 있을까봐’였다. 전공의 역시 장시간 근무와 환자·상급 전공의 등에 의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고, 설문에 답한 전공의 87.2%가 아픈 적이 있다고 답했지만 이 중 진료를 받은 전공의는 30.1%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의 우울증과 피로는 고스란히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피해로 돌아온다. 소방공무원과 전공의가 목소리를 낼 통로가 많지 않고, 이들의 건강은 국민 모두와 연관이 있기에 적절한 제도적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사회 역시 업무로 인해 반복되는 직업병을 해결할 책임이 있다. 가령, 레이온 기계가 일본·한국·중국을 거쳐가는 동안 계속해 이황화탄소 중독자를 낳았으나 이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던 것은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직업병 문제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일부가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이를 직업병으로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삼성은 2015년부터 피해자에게 개별 보상을 하고 있으나, 반복되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구조적 변화가 필수적이다. 이에 저자는 작업장의 위험을 가장 약한 이들이나, 규제가 적은 해외 지역으로 외주화하는 기업에게 사람들이 적극적인 사회적 책임을 물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해 그 구조를 바꿔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주장한다.

 

◇사회에서 비롯된 질병,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되기에=우리의 질병이 사회로부터 비롯됐다면, 사회도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함께 힘써야만 한다. 저자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통해 위험에 대한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야기한다. 그는 피해자가 나타난 뒤에야 그 위험성을 파악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물질을 사용하고자 할 때 이를 사용하려는 기업과 사람들이 그 유해성에 대한 데이터를 제시하고 사회를 설득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새로운 화학물질이 도입되기 전, 적절한 규제가 사회에서 미리 마련될 때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재난에 대한 국가의 책임 역시 중요하다. 그는 매년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는 ‘불평등한 여름’의 비극을 바꾸기 위해 미국 시카고시의 폭염 대처를 참고할 것을 언급한다. 1995년 시카고에서는 한 달간 폭염으로 인해 700명이 넘는 사람이 숨졌고, 역학조사를 통해 사회적 고립 상태에 있던 사람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사망할 위험이 더 높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회적 고립은 불안한 치안이라는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촉발됐고 이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 이에 시카고 시장은 폭염중앙통제센터를 열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냉방쉼터를 세움은 물론, 독거 노인이나 낙후 건물에 사는 거주민의 상태를 공무원이 일일이 확인하도록 했다. 이처럼 당국이 적극적으로 원인을 찾고 대응책을 세운 덕에 이후 시카고에 비슷한 수준의 폭염이 왔을 때 사망자는 110명에 그쳤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서 공고한 공동체를 지닌 미국 로세토 마을의 사람들이 더 건강했다는 연구 결과를 언급하며, 개인이 마주한 질병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 공동체, 즉 사회의 힘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매년 반복되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 안전불감증으로 일어나는 사고, 전염병을 한국 사회는 어떻게 기록하고 어떤 해결책을 찾아 길을 만들 것인지 고민해볼 시점이다.

 

*공상(公傷) 처리: 업무 중 입은 상처에 대한 피해 보상.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320쪽

동아시아

2017년 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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