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 『사랑의 기술』

“사랑이 뭐 그리 대수인가. 현대 사회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도 바쁜데…” 그러나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 모든 통념을 뒤집어 엎어버린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대수다”. 사랑은 사회를 이루는 요소들 중에서도 가장 기반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 우리는 ‘사랑’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랑받기가 아닌 사랑주기=‘왜 나는 지금 사랑에 빠져 있지 않을까’. 이 질문의 답은 보통 이런 식이다. ‘아직 사랑할 만한 적절한 상대를 찾지 못했어’, ‘한눈에 반할 운명적인 상대를 기다리는 중이야’. 이런 답과 함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그 상대를 만났을 때 사랑받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랑스러워지기 위해 인기를 쌓으려 하고 외적 매력을 갈고 닦으려 한다. 프롬은 이들을 냉철히 비판한다. 이런 식의 태도는 사랑을 계약으로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 사람들은 서로 손해 보지 않는 만족스러운 거래를 사랑에서도 이루려 한다. 재산과 능력 같은 조건을 모두 따져서 자신이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최상의 대상과 사랑에 빠지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이뤄진 관계에서 처음에 존재하던 친밀감이나 기적적 감정은 곧 사라진다. 빈자리는 적대감과 실망 그리고 권태로 채워질 뿐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사람들이 사랑을 하나의 ‘기술’(technē)로서 보지 않는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가진다. 프롬에 따르면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닌 주는 것으로, 발휘해야 할 기술이다”.

 

◇분리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사랑의 기술=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사랑으로 채워져야 할 이유는 인간 실존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확실한 것은 과거, 그리고 미래에 다가올 죽음뿐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불안을 이겨낼 방법을 타인이나 외부 세계와의 결합에서 찾는다. 나 자신이 세계와 분리돼있다면 세계를 파악할 수 없기에 언제 누가 나를 침범할지 모르는 불안에 떨게 된다. 그래서 역사는 이 분리 상태를 극복하려는 시도와 늘 함께해왔다. 처음에 자연과 일체감을 느꼈던 인류는 토템으로서 동물신을 숭배하는 방법을 취하기도 했다. 현대사회로 오며 자연에서 멀어질수록 인류는 분리 상태에서 벗어날 새로운 방법을 계속 찾아내 왔다.

불행히도 인류가 찾은 방법들이 늘 옳았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마약이나 성적 오르가슴에 의존해 분리에 의한 불안에서 벗어나려고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격을 좁히지는 못했기에 분리감을 더욱 커지게 할 뿐이었다. 이에 가장 많이 채택된 방법은 사람들을 집단에 일치시키는 것이었다. 주로 관습이나 신앙을 매개로 한 이 방법은 사람들이 집단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개성을 사라지게 했고 개인을 원자화시켰다. 특이한 사상이나 감정을 가지는 것은 위험해졌다. 이런 사회 안에서 개성을 유지하려는 욕구는 물건에 이니셜을 새기는 것과 같은 아주 사소한 행위들을 통해 겨우 만족된다. 프롬은 그 연장선상에서 “현대 사회의 평등은 일체성*이 아닌 동일성*이 됐다”라고 말한다. 즉 집단과의 일체화를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평등은 개성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프롬은 “진정한 사랑만이 분리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올바른 답안”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고 자신을 다른 이의 도구로 만드는 ‘복종’이나 복종하는 자에게 의존하는 ‘지배’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합일을 이루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통해 사람들은 서로의 개성을 허용하고 유지한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타인에게 자기 자신 속에 살아있는 관심, 이해, 지식, 감정 등을 준다. 내 생동감을 높여서 타인의 생동감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 역시 나에게 생명을 나눠준다. 진정한 사랑 안에서 주는 것은 그 자체가 기쁨이다.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프롬은 “한 사람을 참으로 사랑하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게 된다”라고 한다. 그의 말은 사랑의 다양한 형태 중 하나인 ‘형제애’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형제애는 동등한 자들 사이의 사랑으로, 모든 형태의 사랑의 바탕이 된다. 이는 무력한 인간인 가난한 자와 이방인에 대한 동정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동정은 다른 사람의 처지에 대한 이해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여기서 우리는 이민자 문제를 떠올려볼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형제로 대했던가 아니면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침략자로 대했던가. 난민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요즘, 사랑의 기술을 발휘해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자기애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SNS상에서 자주 언급되는 ‘남 걱정이 제일 쓸데없는 짓이다’라는 말을 ‘자기애’와 연결지어볼 수 있다. 이 말은 기실 자기애가 아닌 이기심에서 비롯된 말이다. 프롬에 따르면 이기심은 자신의 자아를 돌보는 일에 실패한 것을 숨기고 보상을 받으려 하는 마음이라는 점에서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본다. 자신의 개성에 대한 존경은 다른 개인에 대한 존경과 이해로부터 분리될 수 없기에, 이기심은 자기애로 포장돼서는 안 된다.

 

『사랑의 기술』은 주장의 상당 부분을 성경 신화를 통해 설명하는 경향이 있어 특정 부분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또 현재 우리가 고리타분하다고 보는 것들을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도 해서 자칫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프롬은 우리에게 사람과의 관계를 이루는 근간인 사랑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고, 타인과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관해 적절한 조언을 남긴다. 사랑의 기술, 나눠줌으로써 기쁨을 얻는 즐거운 역설에 뛰어들어보면 어떨까.

 

*일체성: 한 몸이나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성질.

*동일성: 두 개 이상의 사상(事象)이나 사물이 서로 같은 성질.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황문수 역

232쪽

문예출판사

2019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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