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퍼플레이’(Purplay) 조일지 대표를 만나다

OTT(Over-The-Top) 서비스가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여러 OTT 플랫폼이 성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여성 영화를 중심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퍼플레이’(Purplay)다. 퍼플레이는 ‘2021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 14일(목), 국내 1호 OTT 사회적 기업 퍼플레이의 조일지 대표를 만났다.

사진 제공: 조일지 대표
사진 제공: 조일지 대표

 

◇다양한 여성을 그린 영화를 찾아서=퍼플레이는 좋아하는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갈증으로부터 시작됐다. 조일지 대표는 “한 여성영화제에서 본 영화가 인상 깊어 지인에게 추천했는데 막상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은 없더라”라며 “뻔한 여성 캐릭터와 서사 말고 다양한 여성상을 보여주는 영화를 쉽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플랫폼을 만든 계기를 밝혔다. 2019년 온라인 서비스 정식 개시 이후, 퍼플레이는 2021년 3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다.

퍼플레이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한 성평등한 문화 확산’을 목적으로 국내외 여성 영화를 발굴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다. 퍼플레이가 말하는 여성 영화란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젠더 이분법에 도전하는 영화 모두를 가리킨다. 퍼플레이의 서비스작에는 여성 감독의 독립 영화와 단편 영화가 많다. 여성 감독 작품의 비중이 높은 데는 순제작비 30억 이상의 상업 영화에서 여성 감독의 비중이 낮은 한국 영화계의 현실이 반영돼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0년 한국영화산업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핵심창작인력의 비중은 제작비가 높아지는 상업 영화로 갈수록 낮다. 순제작비 30억 이상의 상업 영화로 제작돼야 흥행 확률도 높아진다는 불문율을 고려하면 대중이 극장에서 여성이 핵심창작인력으로 참여한 작품을 만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이가 중요한 까닭은 영화의 성평등 지수를 가늠하는 척도인 ‘벡델 테스트 7’*과도 연관이 깊기 때문이다. 이에 못지않게 여성 서사가 어떻게 그려지는가도 중요하다. 조일지 대표는 “영화 서사에서 남성 인물이 여럿이고 여성 인물의 수나 비중이 적으면 남성 인물들은 각기 다른 남성성과 역할을 부여받음으로써 입체적으로 그려질 수 있지만, 여성 인물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다양한 여성상으로 그려지지 못한다”라고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여성 서사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퍼플레이는 ‘벡델 테스트 7’를 기준으로 서비스작을 제공하고 있다.

 

◇‘월정액’ 아닌 ‘충전형 차감’=퍼플레이는 수익을 어떻게 분배할까? 조 대표는 일반 OTT 플랫폼이 사용하는 ‘월정액 지불’이라는 구독형 방식이 아니라 퍼플레이의 자체 지불 수단인 ‘퍼니’를 충전하고 관람 건별로 퍼니가 차감되는 ‘충전형 차감’ 방식을 택했다. 월정액 방식을 택했을 때 더 안정적인 기업 운영이 가능해짐에도 퍼플레이가 이와 같은 방식을 선택한 것은 투명한 수익 분배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퍼플레이가 OTT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이용자가 영화 관람을 위해 지불한 돈은 퍼플레이와 저작권사가 3:7로 배분한다. 만약 1,000원을 결제했다면 결제 수수료를 제하고 남는 800~980원대의 금액에서 30%는 퍼플레이가 운영비로 가져가고, 나머지 70%는 감독과 배급사가 있는 경우에는 배급사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매달 일정 금액을 내는 월정액 지불 방식으로는 이와 같은 명확한 분배가 쉽지 않다. 조일지 대표는 “대부분의 OTT는 창작자에게 수익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공개하고 있지 않다”라며 “OTT 가입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콘텐츠를 납품하는 창작자의 수익이 가입자 수에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는다”라고 짚었다. 덧붙여 그는 “퍼플레이는 창작자에게 수익의 70%를 돌려주고, 이를 기반으로 여성 감독들이 더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를 지향한다”라며 “수익 배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독형으로 전환할 계획은 없다”라고 밝혔다.

 

◇나의 서사를 영화 속에서 발견하다=사람들은 퍼플레이에서 자신의 고민과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일례로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예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타인의 시선에서 객체로서의 몸’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 사회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이경미 감독의 〈아랫집〉을 대상으로 한 ‘함께 프로젝트 1탄’에 이어, 현재 이영음 감독의 〈까만점〉을 공개하고 상영 수익의 50%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 기부하는 ‘함께 프로젝트 2탄’이 진행 중이다.

퍼플레이의 노력은 ‘퍼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를 통해서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 퍼플레이는 오리지널 시리즈 ‘그려서 만든 세상’(그만세) 시즌2를 공개했다. 그만세는 애니메이션 감독의 작품 컬렉션과 함께 감독 인터뷰 영상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번 시즌2에서는 김승희 감독과 임채린 감독의 작품이 공개됐다. 조일지 대표는 “퍼플레이에서만 볼 수 있다는 단독 공개의 의미에 치중하기보다는, 퍼플레이의 시각을 통해서가 아니면 표현하기 힘든 이야기를 드러내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김승희 감독의 컬렉션으로 선보인 3편의 작품 중 대표작은, ‘가부장적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에게 이혼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관한 엄마와 딸의 대화에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호랑이와 소〉(2019)다. 임채린 감독의 대표작은 사회가 강요하는 성별의 이분법을 여성·남성의 성기와 꽃을 연상시키는 3D 조각들로 표현한 〈Flora〉(2018)다.

 

 

조일지 대표는 “여성 영화를 넘어 성평등 영화와 다양성 영화까지 폭을 넓혀나가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기성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자신의 서사를 영화 속에서 발견하기를, 그래서 그를 통해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퍼플레이의 도전을 응원한다.

*벡델 테스트 7: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고안한 벡델 테스트에 여성창작인력의 비중, 여성 주인공의 존재 여부, 차별적 시선이 담기지 않은 여성 서사에 대한 4가지 조건을 추가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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