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 신범순 인문대 교수 ㆍ국어국문학과

작년에 나는 지도학생들과 설악산에 엠티를 갔다. 낙산사와 홍련암을 돌아 그 절벽 밑 바닷가 달빛 출렁이는 파도 옆에서 회를 먹었다. 그 밤바다에서 붉은 색조를 띈 특이한 달과 출렁이는 물결소리에 곁들인 회맛이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며칠 전 양양 산불에 낙산사 절 일대가 다 타버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텔레비전에서 그을린 해수관음상을 보게 되니 마치 내 추억의 사진을 태운 듯 씁쓸하다. 이번 불에 타 죽은 나무들을 애도하면서 나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생활하며 인간의 삶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한 나무의 신화, 내가 조금씩 매우 아껴 읽었던 쟈크 브로스의 『나무의 신화』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볼까 한다.

나는 이 책을 선물로 받았다. 강릉에 있는 관동대학교 재직시절 예술적 흥취가 다분했던 한 교수가 나의 떠남을 아쉬워하면서도 시기를 놓친 탓에 이미 내가 서울로 옮긴 몇 달 뒤 학교로 그 책을 부쳐주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책을 뒤적이다 여러 곳에서 나를 꼼짝 못하게 끌어당기는 내용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이 책을 갖게 해 준 그 분이 너무 고맙다.
사실 아직 그 선물에 대해 내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 전해주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 글을 쓰자니 죄스럽기도 하다. 아무튼 이 책 때문에 나는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나라와 동양의 나무 신화를 얼마나 많이 좇아 다녔던가? 그것은 또 궁극적으로는 나무의 신화에 깊이 내재된 샤머니즘의 본질에 대해 나에게 많은 것들을 암시해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따라서 나는 이 저자에 대해서도 고마워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서문에서 생태학적 관심을 표명하면서 자연을 뒤덮은 나무의 소중함에 대해 말한다. 그의 나무 신화학에는 신화 이전의 실용적인 관점인 수목학적 시각이 전제되어 있다.
자크 브로스는 그 생활과 문명의 무수한 변화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상징적으로 압축한 나무의 신화들을 다룬다. 그는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적 사고』에 영향받았음을 암시하면서 이 신화들을 서구 근대를 지배했던 유럽 중심적 사유 혹은 근대 휴머니즘을 이끌어간 합리적 이성의 관점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 같다. 그는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관통하는 시각 즉 근대 이전의 야생적 사유들, 혹은 원시적인 신화들을 미개하고 야만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과는 출발점을 달리한 것이다. 유럽과 중근동 그리고 인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나무의 신화들을 추적한 이 책에서 저자는 미처 신화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수준에서는 잘 알 수 없었던 미세한 이야기들을 찾아내서 그 의미들을 분석한다. 우리는 참나무와 포도나무 그리고 무화과나무 물푸레나무 등에 얽힌 많은 전설과 당대 역사에 대해 알게 된다.
이 책 전체의 주조음이 1장에 소개된 북유럽의 오딘신화이다. “나는 알고 있나니/ 바람에 쓰러진 나무에 매달려/ 아홉 낮 아홉 밤을 보냈네./ 창에 찔리어/ 오딘에게 보내지니/ 나 자신 스스로에게 희생되누나.” 『에다』중의 「하바말」에서 오딘이 울부짖으며 한 말이다. 이 수수께끼같은 말은 과연 무엇인가? 프레이저가 『황금가지』에서 네미 호수 숲 속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밤새 지키며 떠도는 어둡고 야릇한 풍경의 한 사제를 묘사했듯이 쟈크 브로스는 물푸레나무에 자신을 처형시켜 매달리게 하는 오딘을 등장시켰다. 우리 인류가 보내온 저 고대와 선사 시대의 장대한 정신세계의 흐름 속에서 이 두 편의 그림이 내게 매우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비록 아쉽게도 브로스는 인도 이외의 동양 신화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나는 그의 책 속에 있는 주제들이 우리 쪽 신화들을 정리하는 데도 매우 소중한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나무의 신화들 속에서 나무의 생명과 우리 인간 자신의 생명이 어떻게 서로 깊이 삼투하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