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제원 사범대 강사

‘3ㆍ1 서울대인 비상총회’ 이후 총학생회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투쟁에 대해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학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교육투쟁의 대표적인 쟁점인 ▲상대평가제 폐지, 학점취소제 도입 등 학사관리 엄정화 반대 ▲학부대학-전문대학원 체제 전면 재논의 ▲등록금 인상분 반환에 대한 서울대인의 생각을 들어 보았다.


학점 취소제에 대한 짧은 생각(권제원 사범대 강사ㆍ사회교육과)

요즘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본부 점거농성과 관련하여 논란이 많다. 과정 중에 일어난 불상사에 대해서는 이미 말들이 많으니 굳이 덧붙이지 않겠다. 다만 총학측의 요구사항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의 한 명으로서 몇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하나는 교양과정 상대평가제와 관련한 것이다. 필자가 신입생이던 거의 20년 전에도 ‘학사경고 연속 2회면 제적과 동시에 징집’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서조항과 함께 상대평가제가 있었다. 당시 이 제도는 우리들에게 대학생을 학점의 노예로 만들어 민주화 운동에서 이탈시키려는 독재정권의 교묘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1987년 6월의 전설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제도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은 무척 의아스럽다. 상대평가는 대학의 평가가 선발을 목적으로 하지 않음을 감안할 때 교육적 본질을 조금 벗어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공부한 내용과 수준이 아니라, 다른 수강생들의 수준에 의해 내 성적이 매겨진다는 것은 유쾌한 상황이 결코 아니며, 공부 그 자체보다 석차, 즉 학점이 목적이 되는 가치전도 현상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학생회가 이 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학점의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자 하는 건강한 문제의식으로 보인다.

그런데 학생회가 학점취소제를 요구하는 것은 얼핏 이율배반적으로 보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평균학점을 높여야만 하는 치열한 경쟁의 잔혹한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물론 예기치 않게 적성에 맞지 않는 강좌를 수강한 경우 그 불이익을 회피할 수 있는 제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학기 초에 수강 변경이 있고 학기 후반에 수강 취소가 있다. 적성에 맞지 않고, 원하지 않으며, 제대로 수강하지도 않은 과목을, 이런 구제방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나올 때까지 방치한 것은 무책임하다. 그리고 그 무책임에 대한 대가를 회피하겠다는 것은 부도덕하다. 물론 질병이나 기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수강취소도 하지 못한 선의의 피해자도 있겠지만, 이는 수강취소를 학기 마지막 주까지 연장한다거나, 예외규정을 둔다면 보완이 가능할 것이다. 학점취소제는 아무리 곱게 보아도 교묘하고 영리한 학점 관리 수단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금도 학점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은데 이러한 제도까지 도입된다면 단기적으로는 높은 학점을 받을 수 있겠지만 결국 학점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여 그 효과를 상쇄시킬 것이다.

진정한 공부의 본질을 왜곡하고 학생들을 줄세우기 대상으로 만들어 학점에 얽매이게 만드는 상대평가제의 폐지와 자신이 공부한 과정과 내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교묘한 학점관리 방안인 학점취소제를 동시에 요구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총학생회의 현명한 판단과 건강한 대안을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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